프랑스 퇴직연금 개혁과 노동조합

by 센터 posted Apr 27,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손영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문위원

 

 

사상 최대 시위를 촉발한 프랑스 퇴직연금 개혁

 

프랑스에서는 올해 1월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가 지난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했던 퇴직연금 개혁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3개월이 넘도록 프랑스 제5공화국 이후 유례없이 많은 군중이 참여하는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개혁이 다시 추진된 것은 정부 기구인 퇴직연금진로위원회Conseil d’orientation des retraites의 보고서로부터이다. 2022년 9월 위원회는, 2070년 퇴직연금 규모는 GDP의 14.7%를 차지할 수 있고, 이는 퇴직자들의 생활 수준을 15~25% 낮추게 될 것으로 전망하며, 현재의 연금 제도 개혁의 시급성을 제기했다. 보른 총리는 “우리는 세금이 오르는 것도, 연금이 줄어드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그러려면 더 오래 일을 해야 합니다”라고 밝혔다. 정부는 연금 수령 나이를 현행 62세에서 해마다 3개월씩 2030년까지 연장하여 64세로 점차 늦추고, 연금 100% 수령을 위한 기여 기간 기준을 현행 42년에서 해마다 3개월씩 2027년까지 연장하여 43년으로 늘이는 방안을 채택했다. 동시에 최저연금 수령액을 현행 최저임금의 75%에서 올해 9월부터 85%까지 인상하여 연금 수령에 따른 사회적 격차를 줄이겠다는 정책도 제시했다.

 

특히, 이번 개혁은 원칙적으로 민간 노동자뿐만 아니라, 공무원을 포함하는 공공 노동자 등 모든 퇴직자를 대상으로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의 종류에 따라 수령액이나 가입 기간이 천차만별이던 37개 연금 체제를 점진적으로 통합하겠다며 “누구나 1유로를 기여하면 지위나 시기에 상관없이 그에 따른 동일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천명한 공약을 추진했다. 특별 체제로 운영됐던 공무원,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이에 대해 격렬히 반대했고, 결국 해당 개혁은 법안 시행 이후 신규 채용되는 종사자부터 적용되도록 정책을 내놓았다.

 

세계_표.jpg

 

하지만 노조와 여론은 격앙됐다. 12년 만에 처음으로 8개 주요 노조총연맹이 반대하고 나섰으며, 의회에서도 생태사회민중연합(NUPES), 국민연합(RN), 자유·독립 해외영토의회그룹(LIOT) 등 좌우 정당 그룹이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무엇보다 1월 진행된 BFM TV 여론조사에서 80% 프랑스인이 개혁 내용에 대해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곧바로 시위 참여자 규모로 나타났다. 1월 19일 열린 첫 번째 전국 시위에서 경찰 추산 112만 명, 노조 추산 200만 명으로 1995년 이후 가장 많은 시위자가 참여했으며, 1월 31일 두 번째 전국 시위에는 경찰추산 127만 명, 노조추산 250만 명으로 새로운 기록을 갱신했다. 반대 목소리는 3월에도 줄어들지 않았다. 3월 7일 ‘프랑스를 멈춰라’는 슬로건으로 개최된 전국 시위에서는 경찰 추산 128만 명, 노조 추산 350만 명이 참여했으며, 운송(프랑스철도, 파리지하철공사), 정유소, 핵발전소, 화학, 항만 등 주요 산업에서 파업을 단행하기 시작했다.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출 것인가, 적자 해소를 위한 세금 인상인가

 

개혁 내용에 대한 비판도 거셌다. 좌파 정당(불굴의 프랑스, 사회당, 녹색당, 공산당)은 연금 수령 연령을 60세로 낮추고, 연금 100% 수령을 위한 기여 기간 역시 40년으로 줄일 것을 주장했다. 이들은 연금 제도 적자분에 대해 ‘더 많은 조세’로 해결하길 바랐다. 또한, 극우 정당도 이번 개혁에 반대 입장을 개진했다. 국민연합(옛 국민전선)은 연금 개혁에 반대하며 이에 대해 국민투표에 부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좌파 정당과는 달리 노조가 주최하는 시위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한편, 최저연금 수령액에 대해 미카엘 제무르Michaël Zemmour 교수는 이 조치는 최소 30년 이상의 연금 가입 기간을 전제로 하는데, 최소 30년 이상 가입자들 대부분은 최저연금 수령액 수준을 넘어서며, 개혁 이후에도 가입 기간을 충족하지 못해 약 25%의 퇴직자들은 1,200유로 미만 수준 연금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낮은 연금자에게 최저연금 수준을 높여 격차를 줄인다는 정부 정책은 ‘거짓 약속’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제롬 게지Jérôme Guedj 사회당 의원은 해당 조치가 2024년 퇴직 예정자 전체 중 1만 3,289명만 적용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헌법 49-3조를 통한 도입과 새로운 단계

 

지난 3월 16일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가 헌법 49-3조에 따라 의회 토론 없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법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퇴직연금 개혁 논의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어 3월 20일 프랑스 하원에서 제출한 총리 불신임안이 부결되면서 정부가 제출한 연금 개혁안은 효력을 갖게 됐다.

 

프랑스에서 연금 개혁이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미 1993년부터 지속해서 연금 적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금 수급 연령과 연금 기여 기간을 늘려왔다. 비록 1995년은 대중들의 저항 때문에, 2020년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개혁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2003년(공공부문 기여 기간 40년으로 연장), 2010년(연금 수령 시기 60세에서 62세로 연장), 2013년(보험료율 0.3%p 인상, 기여 기간 연장) 등 지속해서 진행됐다. 오늘날 지속 가능한 퇴직연금 제도 운영은 노령화와 청년 인구 감소를 맞이하는 모든 국가에서 중요 과제가 됐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연금 논의는 노동조합이 나서서 미래 퇴직자의 대변인을 자처하며 가장 중요한 행위자로 행동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의 퇴직연금 제도 문제는 연금 고갈 위험과 동시에 소득대체율이 지속해서 떨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소득대체율을 유지 혹은 상향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프랑스의 연금 보험료율이 27.8%(2020년 기준), 소득대체율은 60%(중위소득 기준) 수준이라면, 우리나라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9.0%,소득대체율은 42.5%(2028년 40% 전망)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연금 고갈문제뿐만 아니라, 소득대체율 제고라는 어려운 과제를 동시에 부여받고 있다.이미 65세까지 연장한 수급 개시 나이를 더 상향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향후 보험료 인상을 대체율 제고와 함께 설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무엇보다 이해관계자들의 지혜와 협의가 중요할 것이다.

?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