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전화 한 통, 청년 구직자는 속수무책

by 센터 posted Oct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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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은 청년유니온 위원장

 

 

채용이 확정된 상태를 ‘채용 내정’이라고 한다. 채용 내정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보통은 문자, 전화, 이메일, SNS, 구두로 합격 통보를 받게 된다. “합격입니다”라는 직관적인 언어가 아니더라도 모든 채용 과정을 통과했거나 출근일이 지정되면 채용 내정이라고 볼 수 있다. 다수의 청년 구직자들은 ‘합격 소식을 접했을 때’가 가장 채용 확정에 가깝다고 보고 있었다. 이는 청년유니온이 8월 26일 발표한 ‘청년 채용 취소 사례 및 제도 개선 토론회’ 결과 보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채용이 내정되었더라도 갑작스레 취소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3% 가까이가 채용 취소에 대해 듣거나 이에 대한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특히 응답자의 82%는 코로나 확산 이후 채용 취소가 증가했음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토론회.jpg

청년유니온이 8월 26일 스페이스 노아에서 진행한 청년 채용 취소 사례 및 제도 개선 토론회 “사람도 반품이 되나요?”(@청년유니온)

 

채용이 확정되기까지 구직자가 거쳐야 하는 과정은 험난하지만, 회사 측이 채용을 취소하는 데는 큰 힘이 들지 않는다. 회사 측은 전화나 문자 한 통으로 채용 취소를 통보한다. “합격이 취소되었다”라는 직접적인 말이 아니더라도 구인자는 여러 수를 쓰며 채용을 취소한다. 채용 공고에는 확인할 수 없었던 과정(추가 면접, 과제 등)을 추가해 기준에 못 미쳤다며 탈락시키기도 한다, 사전에 구두로 제시되었던 조건(연봉, 상여금 등)보다 낮은 수준을 제시하며 채용 내정자가 거절하면 채용을 취소하기도 한다. 출근일을 확정해도 안심할 수 없다. 출근 날을 기약 없이 지연시키다 취소하기도 한다.

 

채용 취소에는 다양한 변명이 있다. 윗선에서 결재 승인이 나지 않아서, 전임자가 돌아오거나 채용 인원의 T.O가 조정이 이루어졌다며 취소한다. 코로나로 인해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사업계획 혹은 인원 축소로 채용이 취소되었다는 이유를 대기도 한다. 하지만 회사 내부 사정이라며 알려주지 않거나, 시스템 오류라는 어처구니없는 설명을 한다. 실제로 청년유니온에 제보된 채용 취소 사례를 보면 채용 취소에 대한 사유를 듣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구인자는 단순히 합격 결과를 취소하는 것이지만 오랫동안 취업을 준비하고 합격 소식을 듣고 들떴을 청년 구직자에게 채용 취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합격 소식을 접하고 다른 회사의 면접이나 채용 지원을 하지 않은 경우는 취업할 기회를 잃은 것과 마찬가지다. 이직자의 경우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입사할 날만 기다리다가 채용이 취소돼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되었다고 한탄했다. 합격한 회사와 가까운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겼으나 소용이 없어져 버린 예도 있다. 예상치 못한 수입 공백으로 단기 아르바이트를 뛰거나 대출을 받아야만 했던 사례도 있다.

 

채용이 취소된 청년 구직자들은 극심한 상실감과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자신을 물건 취급받았다고 여기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합격 통보를 받고 가족과 지인들에게 다 알리며 축하 인사도 받았는데 합격 취소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하나 곤란해진 상황도 발생한다. 무엇보다 다시 취업 준비할 의욕을 상실한다. 합격 번복에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청년들은 망연자실하며 취업 준비를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우울해진다. 채용 취소를 직접 경험한 채용 취소 사례 제보자들은 채용 취소 통보 후 정신적 충격, 자괴감, 괴로움, 우울, 허탈, 불안함, 자존감 하락, 억울함, 분노, 창피함, 어이없음, 공황장애 등의 감정을 느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들이 받은 피해를 보상받을 길은 찾을 수 없다.

 

채용 취소 처벌에 관한 법 제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채용 취소는 해고에 준하게 보며 비슷한 수준의 법적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단계부터 채용인지 법적 범위가 명확하지 않고, 채용 취소가 법적으로 문제 된다는 사실을 회사 측도 구직자도 잘 알지 못한다. 그 사실을 알고 법적 조치를 하더라도 회사 측에 가해지는 제재나 피해 보상 의무는 큰 의미가 없어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더욱이 채용 취소로 큰 상실감을 겪은 구직자가 본인이 받은 피해에 대해 문제 제기하려고 의지를 내기엔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맥락에서 채용을 취소한 회사 측에 법적으로나 도의적 책임으로 어떤 제재나 책임도 주어지지 않으니 채용 취소는 무법지대나 다름이 없다.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에서 채용 취소에 대한 청년 구직자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채용 취소 시 부당해고로 다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건 30%에 불과했다. 또 50%는 채용 취소 및 지연을 당했을 때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할 것 같다’고 응답했다. 커뮤니티나 가족 또는 지인에게 알리는 등과 같이 대처를 하지 못함과 비슷한 수준의 소극적인 응답은 30.3%였다. 회사 측에 항의하거나 법적 절차를 밟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한다는 응답은 29%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도움을 요청한다면 54%가 ‘공공기관 법률 서비스’를 통해 도움을 받겠다고 답했다.

 

응답자 58%가 채용 취소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채용 취소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채용 취소 발생 시 이에 대응할 공공기관 법률 서비스가 체계적으로 갖춰져야 하며, 구인자 및 기업에 채용 취소를 하지 않게끔 법적인 제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 번째, 공채 시즌에 맞춰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채용절차법) 위반 사항에 대한 집중 실태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채용절차법에는 제4조(거짓 채용 광고 등의 금지), 제8조(채용 일정 및 채용 과정의 고지), 제10조(채용 여부의 고지) 제도가 있다. 그러나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구직자들은 불합리한 일을 감내해야 했다. 채용 과정에서 구직자가 겪는 피해는 다양한데 이에 대한 상황 및 추이 파악이 전혀 되지 않은 실정이다. 실태조사를 통해 채용절차법 위반으로 구직자가 겪는 피해 유형을 파악하고 그 다음 단계인 대책 마련으로 나아가야 한다.

 

두 번째, 구직자가 채용 취소로 입은 피해를 회사 측으로부터 보전받을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휴업수당에 준하는 수당을 지급하게 하는 등 회사 측으로부터 금전적 피해 보상의 의무를 지게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제도 개선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통상적으로 합격 통보를 근로계약의 성립이라 보았던 것을 법 제도화(명문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마지막으로는 회사 측에 채용 취소 시 법적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내용의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 채용 취소 사례 제보를 살펴보면 회사 측은 너무나 가벼운 이유로 채용을 취소한다. 정당한 사유를 제시하지도 않으며 취소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는다. 불합리한 채용 취소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주어야 한다.

 

끝을 알 수 없는 취업 준비 생활과 합격 여부에 전전긍긍하는 불안한 구직자에게 채용 취소는 구직자를 다시 낭떠러지로 밀어 넣는 것과 다름없다. 기업은 채용 결과를 쉽게 번복해서는 안 되며 채용 취소 시 이에 대해 법적,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채용 취소에 대한 대응은 노동시장으로 이제 막 진입하려는 청년 구직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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