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합창단, 노래로 노동자들에게 말을 걸다

by 센터 posted Sep 3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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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



민주노총, 한국노총 노동자들이 한 무대에 섰다. 그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이 합창은 노동자 투쟁을 격려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소선 어머니를 추모하는 노래였다. 합창단의 호흡은 비감했다. 이소선 어머니의 숨이 합창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말을 걸고 있기에. 이소선 어머니는 숨을 거두면서 한 마디를 남겼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노동자들이여 단결하여 싸워라!”

영결식은 민주노총의 쌍용자동차, 한국노총의 연세의료원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10여 개 사업장 노동자들이 함께 참여해 노래했다. 합창을 지휘했던 임정현 씨는 이렇게 회고했다.

“부랴부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편곡해서 밤을 새가며 연습을 했어요. 합창을 이것으로 끝내기가 아쉬워서 만든 게 이소선합창단입니다. 벌써 4년이 됐네요.”

이소선 어머니의 유지를 책임 있게 받들기 위해 양대 노총의 조직 책임자도 두었다. 민주노총은 금속노조 이장주 문화부장, 한국노총은 이영희 부장이다. 양대 노총의 조직적인 결의는 없었다.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비공식적 매니저지만 합창단 안에서는 공식적이다.


현장-추모식.jpg

이소선합창단은 해마다 이소선 어머니 추모식에 참여한다. 9월 3일 모란공원에서 열린 4주기 추모식(@이소선합창단)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굳이 합창을 선택한 이유를 지휘자 임정현 씨는 “처음에 합창을 했으니까 이소선 독창단하기도 뭐 하잖아요. 악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합창을 하거나 만든 게 없었어요. 문화의 다양성을 노동자들도 즐겨야 합니다. 세상에 있는 좋은 음악을 즐겨 나가고 그것을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말했다.


합창단 구성원들 분포는 민주노총 30퍼센트, 한국노총 30퍼센트, 시민단체 활동가와 미조직 노동자들이 40퍼센트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미 조직화된 노동자들을 끌어안아야 할 때가 됐다는 시대정신을 이소선합창단이 먼저 실현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건범 단원은 한때 학생 운동 지도자였다. 감옥 생활을 끝마치고 시작한 벤처사업으로 100억 원의 연매출을 올리던 잘 나가는 기업인이었다. 그러다 그는 50억의 부도를 내며 파산했다. 이 과정에서 추가로 빚을 내면서까지 직원들의 인건비, 퇴직금을 정산했다. 물론 자신의 재기를 위해서는 은행 빚을 먼저 갚아야 했지만, 그는 그 반대로 움직였다. 우리 사회의 기업인들과는 다르게. “사업은 망했지만, 사람은 건졌죠”라며 이건범 단원은 수줍게 웃었다. 지금은 작가이면서 한글문화연대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김학년 단원은 지하철노래패 ‘소리물결’을 이끄는 사람이다. 현장 노래패를 이끌면서 이소선합창단에 들어온 이유를 “노조 노래패와는 성격이 좀 달라요. 연대 폭이 더 넓다고 할 수 있죠”라고 말한다.


합창단에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만 있을까? 신상명 씨는 합창단에 오고 싶었는데 스스로 음치하고 생각해서 합창단에 섣불리 발을 디디지 못했다. 먼저 합창단원이 된 아내를 자동차로 바래다주다 보니 오디션을 봐야 한다고 해서 입단한 경우다. “실력으로 붙었다기보다는 합창단에서 반주하는 아내 얼굴 때문에 붙여준 거죠”라는 그이의 말에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합창단원이었던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그런 그이가 지금은 합창단 악보를 만든다.

“합창단에 처음 왔는데 안 보이는 악보를 가지고 연습하는 거예요. 필사본이었어요. 누가 악보 만들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지휘자 선생님 말에 뒤져보고 해서 만들게 되었죠."

이소선합창단에 들어와서 가장 좋은 점을 “개인적으로 연대하는 방법을 찾아보면 돈 내는 것 외에는 별로 없어요. 합창을 통해 연대를 하니 보다 많은 사업장을 지원할 수 있어 좋아요”라며 뿌듯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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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단원들은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모여 노래 연습을 한다.(@고현종)


투쟁 현장을 찾아가는 합창단


이소선합창단은 다달이 한 번은 투쟁 사업장에 간다는 방침이 있다. 현재까지는 보통 월 2회를 갔다. 그 외에 중창단이 갈 때와 개인 가수들이 간 것까지 합치면 횟수는 헤아릴 수 없다.

합창은 최소 20~30명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때로는 합창을 하기엔 인원이 부족할 때도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열두 명으로 구성된 중창단을 만들었다. 또한 합창단에 개인 가수들도 몇 명이 있어 필요할 때 이들이 단독 공연을 하기도 한다.


투쟁 사업장 지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을 임정현 지휘자는 “다 기억에 남아요. 삼성서비스센터, 하이닉스, 기아. 그래도 꼽으라면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로 가려다 막혀서 천막을 치고 고립되었을 때 합창단이 함께해서 많은 위로가 된 것 같아 아직도 그 장면이 어른거려요”라며 엘지 유플러스에서는 합창 수준이 높다는 평가를 들었다고 한다. 소리가 너무 맑다며 현장 노동자들이 합창단을 둘러싸고 공연을 마친 것도 기억에 남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

“여러 사람이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옛날부터 그 자체로 감동의 무기였어요. 마이크가 없을 땐 누군가 한 사람이 말을 하면 뒤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같이 외쳤어요. 사람의 힘이 합쳐져서 불렀을 때는 더 큰 감동과 힘이 되요. 현장에 나가면 집회 대오보다 우리 합창단이 더 많을 때도 있어요.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연대죠. 집회 대오 반이 툭 일어나서 반을 위해서 노래하는 걸 상상해 보세요.”


합창단 운영은 회비와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후원회원을 모으고 있지만 사정은 녹록치 않다. 지방에 있는 투쟁 사업장에도 찾아가 연대하고 싶지만, 버스를 대절해서 가야 하는데 취약한 재정 때문에 쉽지 않다. 임정현 지휘자가 가장 아쉬워하는 활동 가운데 하나다.


현장-창단공연.jpg

창단한 지 3년 만인 2014년 9월, 연세대 은명대강당에서 창단공연을 했다.(@이소선합창단)


전태일 45주기를 기리며 정기공연 준비


올해는 전태일 열사 45주기다. 이소선합창단은 10월 24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하는 정기공연을 전태일 열사 45주기 기념 공연으로 기획하고 있다.

“작년에 창작곡이 나왔는데, 올해도 두 곡이 나와요. 고공농성과 쌍용자동차 굴뚝을 생각하면서 단원이 노랫말을 썼어요. 또 한 곡은 세월호 유가족에게 보내는 곡입니다. 그 외에는 안 알려지거나 알려졌지만 잘 부르지 않았던 노래를 중심으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과 소통하는 통로가 되겠다는 이소선합창단. 대한민국의 2,500만 노동자가 한 무대에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를 합창하는 날, 노동자들의 숨이 합창단의 선율을 타고 이소선 어머니에게 답할 것이다.

 “대한민국 노동자 총단결 했어요.”


 *이소선합창단 2015년 정기공연
 전태일 45주기를 기리며‘세상의 모든 전태일에게’


 ▪ 2015년 10월 24일(토) 늦은 5시
 ▪ 서울시청 다목적홀(8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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