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노동자와 시민, 연대하는 우리

by 센터 posted Jun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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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우리동네노동권찾기 대표

 

 

망설임 끝에 만난 플랫폼 노동

 

2020년 1월 중순, 배민커넥트를 해보겠다고 마음먹고 교육을 신청했습니다. 북부센터에서 긴장하며 1시간가량 교육을 받았습니다. 교육 후 사진 촬영을 하고, 예치금 3만 원을 맡기고 헬멧과 가방도 받았습니다. 교육비로 만 원도 준다고 합니다. “와~~ 시급 만 원이네!” 나중에 입금된 걸 확인하니 3.3%를 공제하고 9,670원이 들어왔더군요. 개인사업자가 되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하지만 바로 배달을 시작하지는 못했습니다. 받은 가방과 헬멧을 착못했습니다. 받은 가방과 헬멧을 착용해보니 밖에 나가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볼 것 같았습니다. 민트색이 생각보다 엄청 눈에 띄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민트색이 있다는 것도 사실 그때 처음···.)

 

사실 이제 와 털어놓는 거지만 진짜 나가지 못했던 이유는 배달 노동에 대한 안 좋은 시선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배달을 한단 말이야. ㅠㅠ’, ‘아는 사람 만나면 어쩌지. ㅠㅠ’. 이런 생각이 꺼내기 힘든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한 달을 망설이다 비 오는 저녁 한 건만 해보자고 마음먹고 나갔습니다. 이런 날은 아는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요. 한 건 하니 제가 자주 가는 대학교 학생식당에서 한 끼 해결할 점심값을 벌더군요. “와~ 별거 아니네. 은근 재밌는걸.” 진짜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배달의 재미(?)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첫 주에 34건, 14만 원을 벌면서 배달 노동의 대장정에 들어서게 됩니다.

 

1.배달2.png

배민커넥트 가방과 헬멧을 쓴 김창수 대표

 

미션 수행하는 재미도 주고 돈도 주는 플랫폼 노동

 

은근 재미있습니다. 지금은 쿠팡의 ‘한집배달’ 제도를 따라 하느라 사실상 없어졌지만, 한 번에 두 개, 세 개 콜을 한꺼번에 잡는 게 가능하던 시절, 대기 창에 있는 콜을 보면서 가게와 도착지의 거리, 조리시간 등을 고려해서 머릿속으로 순식간에 동선을 짜고 실제로 그 시간 안에 배달을 완료해냈을 때의 기분이란···. 안 해본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성취감이랄까요. 게다가 배달료까지 실시간으로 쌓이는 게 눈에 보이면 이만한 동기부여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배달하니까 많이 힘들지~?”하며 위로를 할 때마다 ‘솔직히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속으로만 말했던 때가 많았습니다. 배달커넥트라 불리는 N잡러들이 배달 노동으로 몰리는 이유 중에 자유로운 출퇴근, 최저시급 이상의 수입이 높은 비중을 차지할 거라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저는 플랫폼의 사악한 손아귀에 스스로 들어가게 됩니다.

 

자발적으로 출근하게 만드는 플랫폼 노동의 마법

 

“시간 날 때 한두 시간 가볍게, 퇴근길에 한두 시간 가볍게, 운동 삼아 한두 시간 가볍게, 주말 오후 한두 시간 가볍게.”

배민커넥트를 홍보하는 장면에 나오는 말이죠. 실제로 많은 사람이 퇴근 후, 주말을 이용해서 배달합니다. 그 누구도 앱을 꺼라 말라 강요하지 않습니다. 저만 하더라도 단체 상근을 하다 보니 일정이 매우 불규칙하게 잡힙니다. 그래서 일정 사이사이, 한두 시간 하기도 하고 아침 10시 회의가 잡히면 가는 길에 두 건 정도 배달하면서 가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레 일주일 일정이 잡히면 언제 배달을 할까부터 고민하게 됩니다.

 

사실 이렇게 유연하게 나의 노동시간을 정할 수 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장점입니다. 만약 배달이 아니라 근로계약서를 쓰고 하루에 몇 시간씩 일하는 가게에 들어갔다고 하면 그 시간에는 정작 제가 해야 하는 활동을 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내 활동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 노동하는 것과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그 시간을 피해서 일정을 잡는 건 엄청난 차이입니다.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일하기 싫은 날, 혹은 아프거나 찌뿌둥한 날, 왠지 놀러 가고 싶은 그런 날에 꼼짝없이 일해야 한다면 그 차이를 실감할 것입니다.

 

자기들 맘대로 통보하는 플랫폼

 

그런데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에서 2020년 6월부터 커넥트는 주 20시간(실제는 19시간) 제한을 겁니다. 일주일에 19시간까지만 배달을 할 수 있고 19시간이 넘어서는 순간 콜을 잡을 수가 없게 된 거죠. 표면적인 이유는 과도한 노동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라는데···. 그거야 내가 판단하면 될 일이지 왜 자기들이 맘대로 시간을 정해서 일방적으로 통보하냔 말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배달 정책이 속속 튀어나오게 됩니다. 아침/점심/오후/저녁 시간대별로 정해진 건수를 채우면 주는 프로모션, 일반 배차가 아닌 AI 배차로 설정을 하고 콜을 받으면 높은 배달료를 주는 프로모션, 거기다 작년 여름엔 긴 시간 비가 내리면서 기상 할증과 추가 할증까지 더해서 어마어마한(?) 돈을 벌게 됩니다. 오토바이 라이더가 한 주에 470만 원을 벌었다는 인증샷이 온라인 카페에 올라올 만큼 위험했지만, 한편으론 행복했던(?)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언제부터인가 날씨예보를 계속 확인하면서 눈, 비, 미세먼지, 강풍 등 기상 상황이 안 좋은 날을 확인해서 일부러 그런 날을 피해서 일정을 잡게 되더군요. 시간대별 프로모션도 해야 하니 그 시간대도 피하려고 하거나 건수를 다 채울만한 시간쯤 약속을 잡으려고 합니다. 어느 날 문득 배민에 출근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건 맞지만, 배민이 그러도록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분명 누군가는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건수를 채워 프로모션에 성공하려고 신호 무시하고 자전거 페달을 밟았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비 오는 날에 나가 앞도 보이지 않는 미끄러운 도로에서 힘겨워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커넥트들은 배민 앱에 출근하고 프로모션이 끝나면 퇴근하고 있었던 겁니다. 대단한 플랫폼의 힘이지요.

 

플랫폼 노동의 노예가 되지 말자

 

지난 글(《비정규노동》 148호 ‘내 인생은 배달 노동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에도 썼지만, 인간의 욕심을 자극하는 시스템은 바뀌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말도 안 되는 경험을 했던 적이 몇 번 있었어요. 전달지에 도착하면 보통 자전거에 잠금장치를 하고 건물로 들어갔다 나옵니다. 다만, 3층까진 금방 다녀올 수 있어서 자전거 열쇠를 하지 않고 다녀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간에 쫓기다 보면 정신이 없어서 열쇠를 잠근 줄 알고 열쇠를 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열쇠를 잠그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헛웃음이 나기도 하고, 이런 게 플랫폼에 노예가 되는 상태인 건가 싶기도 합니다.

 

배달하다 보면 진짜 기분 좋을 때도 있거든요. 시원한 맞바람을 맞을 때나, 꽃구경을 덤으로 한다거나, 비를 맞더라도 상쾌한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 기분은 배달에 쫓기면 절대 느끼지 못합니다. 이런 기분으로 일을 하면 배달도 안전하게 잘 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1.배달1.png

고객이 전한 음료와 메모에서 ‘연대하는 우리’의 희망을 본다.

 

플랫폼이 연대의 도구가 될 수는 없을까

 

어느 여름날, 휘경동의 아주 높은 언덕에 자리한 오래된 아파트에 배달을 갔습니다. 지금이야 전기자전거를 이용하니까 쓩~ 올라가지만, 작년만 해도 일반 자전거로 힘겹게 올라가야 하는 높이였습니다. 올라가면서 들릴 듯 말 듯 안 좋은 말도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고객이 1층에 나와 있는 겁니다. 그러더니 저에게 시원한 음료수를 주고 음식을 받아 갔습니다. 그분은 제가 오는 동선을 보고 있다가 집 앞에 오는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왔던 것이죠.

 

배민 앱에는 배달 노동자가 어느 운송 수단을 타고 어디쯤 오고 있는지 볼 수 있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 기능은 당연히 배달 노동자를 감시하는 용도로 만들어졌을 겁니다. 그런데 이 고객에게는 ‘감시’가 아니라 ‘마중’이 될 수 있도록 도왔던 건 아닐까요?

 

배달하면서 가장 기분 좋을 때는 집 앞에 나와서 받아 갈 때, 혹은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수고한다고 음료수 등을 건넬 때입니다. 배달 노동자 카톡방에는 고객에게 받은 음료수, 아이스 커피, 다과 등의 인증샷이 늘 올라옵니다. 자본은 노동자들을 감시하라고 만든 기능이겠지만, 노동자와 시민은 연대하여 서로를 위한 배려와 환대의 기능으로 만들어가면 어떨까요?

 

우리가 플랫폼을 깨부술 수는 없습니다. 불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의 연대가 더 넓어지고, 그런 우리가 이 해괴한 놈을 슬기롭게 사용한다면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을 거라 믿습니다. ‘연대하는 우리’를 넓혀갈 수 있도록 지역에서 오늘도 열심히 전기자전거 페달을 굴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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