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찾기 플랫폼, 권유하다

by 센터 posted Jun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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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 대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1970년 전태일 열사가 온몸을 불사르며 남긴 처절한 요구였다. 50년이 지났지만 열사가 남긴 이 외침은 노동자로 첫발을 떼는 절반 이상의 노동자들에게 자신에게 부여된 노동기본권인 것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노동운동, 진보정치, 사회운동 모두가 반성하고 있지만, 올해 안에 기필코 열사가 남긴 숙제를 해내고야 말겠다는 단결과 연대의 날은 서 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절치부심 열사를 소환하고 추모하며 배제된 노동자, 차별받는 노동자, 살아있는 전태일의 삶을 주목하고 있기에 보편적 권리여야 하는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해 힘을 모으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 지난 시간의 반성 속에서 실천계획을 가지고 감옥 문을 나섰다. 정치적 요구를 걸고 광장을 가득 메운 조직된 노동자의 함성과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린 1,700만 촛불의 물결 속에 하루하루 절박하게 살아가는 가장 힘든 노동자들의 요구는 얼마나 담겼던가? 담장 안에서 자문자답하며 보냈던 하루하루는 반성을 다짐으로, 다짐을 실천계획으로 만들게 했고, 출소 후 무모한 도전에 나설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힘든 일 말고 쉬운 길을 권유한 동지들의 걱정은 더욱더 집요한 실천을 하게 했기에 고마운 충고가 되었던 셈이다. ‘해야 한다. 요구한다’는 당위성이 아니라 쟁취하겠다는 행동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더 나아가 노동조합과 이들의 권익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단체들의 연대와 지원만으로는 고착화된 차별지대가 더 넓어지는 현실을 바꿔낼 수 없다는 진단에 당사자들 스스로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이하 권유하다)’ 깃발을 들고 직접행동에 나서는 길을 열자는 전략적 목표를 세웠다. 


규모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와 계약 형식에 따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사용자와 맞서야 하는 프리랜서, 플랫폼,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밖 노동자다. 위험한 일터에서 저임금 불안정 절망의 노동에 내몰린 1,000만이 넘는 노동자에게 시급한 문제는 너무도 많다. 일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산소 호흡기와 다름없는 근로기준법이 보장되는 소박한 요구를 우선 쟁취할 힘을 만들고, 나아가 그림의 떡인 4대 보험 전면적용 등 사회 근본을 바꿔 나가려 한다. 


2.권리찾기.JPG

6월 4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진행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고발접수 및 후속계획 발표 기자회견(@권유하다)


2019년 10월 9일 ‘권유하다’ 창립 후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벅찬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장 많은 논쟁 의제는 개별 노동자 당사자들을 ‘권유하다’로 직접 조직한다는 결정과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고발 운동에 나섰을 때였다. 예비 노동자, 실직자, 퇴직 노동자, 개별 노동자, 작은 사업장 당사자 직접 조직화가 절실하긴 하지만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운동진영 전반에 깔려있었기 때문에 추진 동력을 만드는데 어려움이 많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지만 당사자들이 참여하기에는 사회적 장벽이 너무 높고,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협력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당사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지금은 드러나지 않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첫발을 떼지만 같은 처지에 있는 우리가 많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낼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전국의 노동 청년 학생 장애 종교 노년 인권 비정규센터 및 단체들과 함께할 일들이 많을 것이다. 가치와 주장의 연대를 위해 소중한 경험과 지혜를 배우러 꼭 찾아가겠다. 


코로나 재난 상황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고발 운동’을 잠시 멈추게 했고 가장 먼저 벼랑으로 내몰린 차별지대 노동자 문제에 나서야만 했다. 근로기준법 차별로 고용유지지원금도 못 받는 5인 미만 사업장 문제를 사회적으로 드러나게 함과 동시에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코로나19 긴급휴업 급여를 지급하라는 긴급행동에 나서는 게 우선이라 판단했다. 당사자 제보가 있을지 가슴 졸이며 기다렸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신생 단체의 주장과 제안에 많은 제보와 영세자영업자를 포함한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대형 아울렛 쇼핑몰, 외국계 무역상사 등 사업장 규모 및 지불 능력과 무관하게 근로기준법 11조를 악용하는 사용자가 차고 넘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실태를 확인했고 당사자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더 많은 제보와 고발로 이어져야 보편적 권리가 보장될 힘을 만들 수 있다.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당사자들과 접촉이 더 넓어질수록 더 절박한 문제들이 속속 드러날 것이다. 갑자기 직장을 잃어도 퇴직급여를 받을 수 없고, 고용유지지원금을 확대 지급한다는 뉴스조차 남의 이야기인 사람들, 부당해고 구제와 휴업수당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 사람들, 4대 보험에 가입되어있지 못해 재난 대책 수혜 대상자임을 증명하기조차 어려운 사람들, 평소엔 시간 외 노동 가산수당은커녕 최저시급 언저리에서 공짜노동에 시달렸던 사람들 문제까지 이미 합법적으로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일수록 재난 상황에서 더 많은 고통에 내몰리고 있음이 드러났다.


재난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모두의 위기를 함께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의 시작은 가장 비참한 곳에 있다. 쫓겨날 수 없어 참고 견뎌야 했던 사람들이 용기를 내 법정까지 가더라도 스스로 불법의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기막힌 현실, 5인 미만 사업장이란 이유로 구제 신청조차 해볼 수 없는 현실이다. ‘권유하다’는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의 사업주들을 처벌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차별지대를 우선 방역하여 가장 무서운 바이러스를 제거해 재앙이 되어버린 불평등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내는 직접행동에 나서고자 한다.


높은 지지율, 180석 거대 여당이 맘만 먹으면 촛불의 명령이자 문재인 정권의 대선공약을 이행하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걱정스러운 것은 180석으로도 안 되는 것이 많아서인지 개혁의 의지보다 협치하자는 뉴스만 넘쳐난다는 사실이다. 올해 정기국회를 지나면 위임한 권력의 본심은 드러날 것이다. 실망할 결과를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누가 대신해 주지 않는다는 역사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권리를 빼앗긴 당사자들이 스스로 단결해 이 땅의 주인답게 변화의 중심에 서게 할 것인가? 


노동운동은 급변하는 한국 사회 대중운동 조직의 위상에 걸맞은 선택의 변곡점을 맞고 있다. 근로기준법 밖 1,000만 노동자, 차별과 착취의 이름 1,100만 비정규 노동자, 노동조합 문턱을 넘지 못하는 1,750만 노동자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노동조합으로 단결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모아야 한다. 지구촌의 많은 나라에서 실직자 학생 프리랜서 개별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되고 있다. 노동조합 문턱을 낮추어 조직률을 높여나가고 계급 대표성을 강화해 불평등 세상을 바꿔내려는 몸부림이라 생각한다. 같은 방식으로 다른 결과를 바란다는 것은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낚겠다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기에.


우리는 지금 전 국민 고용보험, 기본소득에 대한 의제 선점 경쟁에 극우 보수까지 가세한 한국 사회를 보고 있다. ‘권유하다’는 노동조합을 하기 어려운 노동자들만 모이는 조직이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노동조합을 이미 만들고 지켜온 조직 노동자들이 더 강하고 아름다운 가치의 연대로 함께 조직사업에 나서 달라는 요청을 할 것이다. 법 제도가 대놓고 차별하는 노동자, 근로기준법 밖의 노동자, 그리고 모두의 권리를 염원하는 시민·노동자들의 힘을 모아내며 다음 단계의 행동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고발운동’을 ‘4대 보험 미등록 제보센터’로 확장하며 본격적인 당사자 조직사업으로 연결해나갈 것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를 비롯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 헌신적으로 권리찾기 네트워크를 만들어온 동지들과 더 가깝고 치열하게 만나겠다. 더 크고 강한 파동을 함께 만들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바이러스를 제압할 백신은 있다. ‘전 노동계급의 단결과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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