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제외된 최저임금법, 스페인에서 살아남기

by 센터 posted Jan 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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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제외된 최저임금법, 스페인에서 살아남기

 

 

김해슬 여성인권활동가, 스페인 노동자

 

현지인 친구에게 스페인에서 일자리를 찾고자 하는 한국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부탁했다.

“Chungo 충고 .”

친구 입에서 나온 한국어, 심지어 꽤나 고급 한국어 단어에 깜짝 놀라 그단어를 어떻게 아냐고 물어보니 충고는 스페인어로 ‘어려움’이란다. 덕분에 새로운 스페인어 단어를 배웠다.

 

스페인 경제는 정말 어려울까. 스페인 경제는 2007~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았고, 관광업이 주요 산업인 만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럽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2020년 경제성장률이 11.3% 대폭 하락했다가 최근 들어 회복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2022년 기준 전체 실업률 13.0%, 청년 실업률 29.6%로 여전히 유럽 내에서 실업률이 매우 높은 국가 중 하나다.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의 관광업 회복과 2022년 노동개혁을 통해 회복하고 있는 스페인 경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고물가 등의 새로운 과제를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 왜 워킹홀리데이를 스페인으로 왔냐고 묻는다면, 한국에서 일하다 지친 몸과 마음을 지중해 해변에서 쉬면서 회복하고 싶었다. 한 푼도 못 벌어도 좋으니 아름다운 볼거리와 맛있는 먹거리가 넘치는 스페인에서, 시에스타 문화가 있다는 스페인에서 하루하루 여유 있게 살아보고 싶었다. 2주 여행으로 계획하던 스페인 방문은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읽어볼수록 한달살이로, 결국 일년살이로 늘어났다.

 

스페인에서 일하고자 하는 외국인 청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비자는 현지 스폰서가 필요한 노동 비자 외에 워킹홀리데이 비자와 디지털 노마드 비자가 있다. 2018년부터 시행된 스페인 워킹홀리데이 모집 인원은 연 1,000명이고, 만18세에서 30세 사이라면 연중 신청이 가능하며 1년 동안 스페인 체류 및 노동이 가능하다. 디지털 노마드 비자는 스페인 외부에 있는 회사에 고용되어 있지만 스페인에서 원격 근무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비자로 회사가 아니라 자영업자도 활용 가능하며, 스페인 최저임금의 2배 이상의 금액을 재정 증명해야 한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스페인보다 임금이 높은 해외 기업 재직자들이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활용하여 높은 임금과 적은 생활비를 누리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바르셀로나는 한국 교민이 많이 살기도 하고 2023년 기준 인구 26.3%가 외국인인 국제도시다.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볼 수 있는 바르셀로나 거주 외국 인의 출신 국가는 이탈리아, 콜롬비아, 파키스탄, 중국 순이지만, 이탈리아 국적자 중 30% 정도가 아르헨티나 출신이므로 통계로 보이는 것보다 중남미 출신이 많다. 같은 스페인어 언어권인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이 많은 만큼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스페인어를 내세워 현지 기업에 취업하기 어렵다. 하지만 FDI Intelligence 선정 외국인 투자 유치 전략 부문 유럽 도시 1위를 자랑하는 바르셀로나답게 영어를 사용하는 글로벌 기업과 스타트업이 많아 영어 능력을 살려 취업 기회를 노릴 수 있다.

 

언어보다도 스페인에서 일자리 찾기를 하며 마주한 가장 큰 어려움은 스페인 기업이 대학교 또는 대학원에 현재 재학 중인 학생을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직무 내용과 필요한 역량 등을 열심히 읽다가 맨 마지막에 학생 신분만 지원 가능하다는 문구를 보면 맥이 빠졌다. 스페인 기업이 굳이 학생 인턴을 찾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스페인에서는 학교와 기업이 협약을 맺으면 학생들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대변해주기도 하나, 흔한 경우는 아니다.

 

링크드인에 올라오는 스페인 기업의 공고를 보면 주40시간 풀타임으로 일할 학생 인턴을 찾으면서 아무 보수도 지급하지 않거나, 교통비와 점심비를 챙겨주는 회사에서는 월 200~300유로, 많이 주는 회사에서는 월 500~800 유로를 지급한다. 공고에는 월급 정보가 없고 서류 통과 후 면접 단계에 가서 말해주는 회사들도 많다. 인턴 기간은 주로 6개월 정도이기 때문에 학생 인턴들은 풀타임으로 근무하면서 최저임금의 반 토막 또는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반년을 살아남아야 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시에스타 하면서 널널하게 살 것같았는데, 이민자나 사회초년생들은 투잡을 뛰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았다.

 

바르셀로나에서 유학 직후 취업 준비를 하는 게 아니라 워킹홀리데이로 온 한국 청년들은 한인 식당, 한인 관광 가이드 등에서 근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스페인어와 한국에서 쌓은 경력을 살려 현지 기업에 취업하기도 한다. 세계 여느 도시처럼 IT 관련 직종은 바르셀로나에서도 인기가 있기 때문에 연봉과 워라밸을 맞바꾸어 지내거나 디지털 노마드 비자 등을 통해 둘 다 챙기는 IT 관련 종사자들도 있다.

 

청년들의 주거 환경은 어떨까. 바르셀로나의 경우 룸메이트 수에 따라 다르지만 방 하나에 저렴하면 월 200~300유로, 제법 괜찮은 상태의 방은월 500~600유로 정도다. 혼자 쓰는 스튜디오의 경우 월 900~1,200유로 정도 든다. 2023년 2분기 기준 바르셀로나 주민들이 지급한 평균 월세가 1,123.56유로인데 반해 2023년 스페인 최저임금은 월 1,080유로(14개월)라서 대부분의 사회초년생들은 집세를 아끼기 위해 룸메이트들과 함께 산다.

 

스페인의 높은 실업률과 어려운 경제 상황이 사회초년생에 대한 열악한 대우로 이어진 게 아닐까 고민했다. 쓴 만큼 정직하게 빠져나가는 통장 잔고에 마음이 아파 일자리를 찾아보고, 씁쓸한 스페인 임금에 좌절하던 중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럽의회 인턴으로 근무하는 또래 청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쌀쌀한 브뤼셀 저녁 날씨에 다들 코트를 여미고 공원 한가운데 서서 종이컵에 음료를 나눠 마시고 있던 인턴들은 대부분 유럽 각국에서 온 석사생이었는데, 바르셀로나보다 훨씬 물가가 높은 브뤼셀에서 월세를 내면 빠듯할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었다.

 

다른 유럽 국가도 사회초년생이나 인턴에 대한 대우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걸 깨닫고 그나마 내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여건을 갖춘 바르셀로나에서 사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지중해 해변, 파에야나 타파스처럼 맛있는 음식, 높아지고 있긴 하지만 비교적 저렴한 물가, 온화한 날씨, 친절한 사람들. 거리를 거닐다 바로 알아볼 수 있는 가우디 건축이나 미술관처럼 문화생활이 다양하다는 점이 바르셀로나에서의 삶을 채워주고 있다. 외국인이 많은 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서로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갈 수 있어서 좋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내 삶을 지켜주는 또 다른 점은 사회보장번호가 있으면 공공 의료 시스템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일하며 몸이 많이 상했는데, 아프면서 몸도 마음도 고생할 때 더 힘들었던 건 그 와중에 병원비 걱정까지 해야 하는 거였다. 바르셀로나의 경우 CatSalut이라는 카탈루냐 공공 의료 시스템으로 병원에서 사회보장번호와 개인의료카드만 있으면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덕분에 병원비 걱정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약국에서 처방약에 대한 비용만 냈다.

 

그래서 지금은 바르셀로나에 더 있고 싶다. 보수는 높지 않지만 여유 있는 문화가 편안하다. 처음 스페인에 왔을 때 실수를 해서 민망해하면 “Tranquila”, “No pasa nada”라며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심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조금만 실수해도 주눅이 들 때가 많았지만 스페인에 온 뒤로 실수를 해도 좀 뻔뻔해졌다. 한국에서 일하며 아낀 돈 덕분에 여기서 조금 여유 있게 생활할 수 있고, 낮아진 임금은 여기서 나아진 정신 건강을 위해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노동력의 가치. 내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앞으로의 시간도 행복하게 잘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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