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죽음인가요?

by 센터 posted Jul 2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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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시헌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15학번, 레드카드 단원



편집자주 : 지난 6월 12일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투쟁 승리를 위한 연대 한마당에서 ‘비정규직 없는 세상과 총파업 승리를 위한 대학생 공동행동’ 레드카드 서울대 실천단 단원인 이시헌 학생이 낭독한 편지글이다.


경계를넘어2.jpg


함께하는 선배님들께


저는 대학생활을 이제 막 한 학기째 앞두고 있는,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은 1학년생입니다.

딱 한 달하고 이틀 전, EG테크 노조의 양우권 열사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뉴스로 소식을 접했던 저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 아직도 이런 ‘악랄한’ 기업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법에 따라 정당하게 복직된 노동자를 현장 밖 사무실에 따로 앉혀 따돌림시키고, 1년 간 아무런 업무도 주지 않으면서 딴 짓 못하게 카메라로 감시하고, 이런 횡포를 고발하려고 사진을 남기자   ‘기밀 유출’이라며 징계하는 이런 개 같은 집단이 어쩜 그리도 뻔뻔스럽게 고개를 쳐들고 있는지 정말이지 분했습니다.


그런 제가··· 너무 순진했던 걸까요. 저는 열사의 죽음이 곧바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완종이라는 자가 ‘뇌물 리스트’를 남기고 죽자 온 세상이 떠들썩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때 언론은 ‘죽는 자가 거짓말할 리 없다’며 리스트 파문을 연일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포스코라는 거대 기업의 한 노동자, 너무도 영웅적이었던 양우권 열사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죽는 자가 거짓말할 리 없다’는 똑같은 기준을 EG테크엔 적용하지 않으며, ‘열사의 일기는 허위 사실’이라는 터무니없는 변명을 눈감아주었습니다.


선배님, “나는 친박이다!”하고 자상스럽게 외친 부패 기업인의 말은 들어주면서, “포스코와 박지만의 야비한 탄압을 견딜 수 없다”고 한 평범한 노동자의 절규엔 왜 관심조차 주지 않는 걸까요? 저들은 성완종의 한 마디가 나올 때마다 부르르 떨면서 왜 열사의 죽음엔 떨지 않는 걸까요?


다음 날 저는 학교에 갔습니다. 세상은 열사의 죽음에도 예전과 같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제게 충격을 준 이 사건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런 반응도 없어 보였습니다.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 선배가 말했습니다.

 “아, 이렇게 한 분이 또 가시는구나···.”

이 말을 듣고 저는 ‘헉’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악질적인 살인을 그저 ‘또 하나의 죽음’으로 생각할 수 있지? 솔직히 서운하고 당시엔 약간의 실망감도 들었습니다. 열사들의 수없는 죽음에 선배님들이 이젠 무뎌졌나 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선배님들이 포스코와 박지만을 규탄하는 대자보를 붙이는 모습을 보며, 학생회관 앞에 분향소를 차리는 모습을 보며, 또 집회에 앞장서서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차츰차츰 깨닫게 되었습니다. 작은 일이라도 실천과 행동을 보이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은 저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죄 없는 노동자들의 죽음이 해마다 반복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연속을 막기 위해서라도, 동지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 분들과 함께 더 열심히 싸워 저들을 굴복시켜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선배님을 따라 처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아직 모르는 게 많지만, 살인기업이 아무런 책임도 안 지는 이 현실은 분명히, 분명히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열사 정신의 계승을 다짐하며

서울대학교 새내기 이시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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