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문의 봄,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봄

by 센터 posted Apr 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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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편집국


벚꽃엔딩이 들려온다. ‘벚꽃연금’이라 불리기도 하고, ‘벚꽃좀비’라 불리기도 하는 이 노래는 봄이 다가온다는 증표다. 이에 맞춰 대한문 앞 화단에도 새싹이 자라기 시작한다. 중구청은 얼마 전 흉물스러워 보이던 대한문 앞 화단을 정비했다. 비만 오면 토사가 넘치던 흙을 새로 덮고, 임시방편으로 둘러놓은 밧줄이 아닌 새로운 블록들을 곳곳에 깔았다. 4월이 되면 대한문 화단에 알록달록한 꽃들이 피고, 푸른 나뭇잎들이 넘실거릴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대한문 화단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겨울이다. 새싹이 자라고, 봄 냄새가 돌건만 그 자리에 깊이 새겨있는 야만과 폭력의 흔적은 쉽게 걷히지 않는다.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를 침탈하고, 집회시위의 자유를 짓밟았던 기억들이 지워지지 않는 한 대한문은 시대의 아픔을 담은 슬픔의 공간이다. 쌍용차 사태의 해결을 위해 찾았던 무수히 많은 이들의 염원이 이뤄지지 않는 한 대한문은 안타까운 추모의 공간일 수밖에 없다. 그 어떤 꽃도, 그 어떤 장식도 대한문에 드리운 겨울을 드러낼 수 없다.

지난 3월 9일, 1년 넘게 대한문 분향소를 지키던 이들이 당시 들었던 영정을 들고 대한문 앞에 섰다. 대한문에 분향소를 처음 차리던 2012년 4월 5일과 지금, 바뀐 것은 희생자의 숫자와 고통의 크기, 그리고 흉측한 화단뿐이다. 쌍용차 투쟁 7년, 26명 희생자들은 여전히 고개 숙이고 있고, 187명 해고자들의 눈물은 담을 수 없어 흘러넘치고 있다. 봄을 맞고 싶어도 맞을 수 없기에 이들의 겨울의 시간은 현재진행형이다. 대한문에, 굴뚝에, 그리고 전국 곳곳에 정리해고의 아픔이 담겨있기에 이 사태의 해결 없이, 봄을 맞을 수 없는 노동자들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다. 3월 9일, 대한문에 모인 이들은 지난 12월 13일 굴뚝에 올라 80일 넘게 굴뚝농성 중이던 두 노동자를 응원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쌍용차의 봄을 당겨오겠다며, 70미터 굴뚝에 올라간 두 노동자를 응원해 줄 것을 호소하기 위해 모인 시민사회단체들이었다.


티볼리는 말하면서 26명의 희생자는 침묵하는 쌍용차


쌍용차 회사는 티볼리를 출시하면서 경영이 정상화되면 해고자를 복직시키겠다고 밝힌바 있다. 그리고 지금, 쌍용차 티볼리는 1만 대 이상 계약됐고 차가 없어서 팔지 못하는 지경이라고 한다. 연간 판매 목표도 1만 8,000대에서 3만 5,000대로 늘려 잡았고, 평택공장은 지난달부터 매주 토요일 특근과 함께 매일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씩 잔업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함께 곳곳에 변화의 계기들이 보인다. 김득중 쌍용차 지부장과 이유일 사장,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이 지난 1월 14일 만남을 가졌고, 1월 21일 3자 회동 이후 쌍용차 노사교섭이 시작되기도 했다. 평택 쌍용차 공장과 굴뚝,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마음속 겨울을 지우고, 봄을 맞을 수 있다는 신호들이다. 그러나 이후 진행된 교섭에서 사측은 여전히 ‘회사 정상화’가 우선이라며, 26명의 희생자 명예회복과 해고자 복직의 실마리를 풀지 않고 있다. 지금도 고통 받고 있을 26명의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에 대해 여전히 아득한 수사만을 늘어놓는다.

회사가 어떤 안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회사가 이 교섭에 임하는 태도다. 희생자들에 대해 ‘진심으로 안타깝다’고 말하던 회사는 여전히 26명의 희생자 명예회복을 어떻게 담을지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속한 지역공동체의 삶을 돌보고 그들을 신뢰하는 것’이 기업의 문화라는 마힌드라와 쌍용차는 26명의 희생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지역 공동체의 삶을 생각한다면 교섭에 나오는 태도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쌍용차 26명의 희생자와 187명의 해고자는 지역 공동체 구성원들이다. 희생자와 그의 가족, 주변인, 187명 해고자의 가족들과 주변인 모두가 지역 공동체 구성원이다. 그러나 쌍용차 사태 이후 이들은 ‘쌍용차 해고자’라는 딱지가 찍혀 곳곳에서 고생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지역 공동체 밖으로 밀려나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회사가 교섭 자리에서 최우선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것은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방안일 것이다. 희생자와 유가족, 187명의 해고자가 견뎌왔던 지옥의 터널을 어떻게 빠져나오게 할 것인지에 대해 머리를 맞대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회사의 입은 닫혀있고, 차디찬 겨울의 시간은 흘러간다.

경계-쌍차 희망행동 기자회견.jpg


교섭을 위해 굴뚝농성을 중단했건만


3월 11일, 김정욱 쌍용차 사무국장은 굴뚝농성을 시작한지 89일 되던 날 스스로 굴뚝농성을 해제하고 내려왔다. 굴뚝농성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기도 했지만, 힘이 남아 있을 때 최종식 쌍용자동차 신임 대표이사와 만나 쌍용차 사태의 돌파구를 열어보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3월 23일, 홀로 남아 있던 이창근 실장도 굴뚝에서 내려왔다. 내려오기 전날 “교섭은 잘 진행 중이고 그 가운데 제가 굴뚝에 올라 있는 것이 자칫 원활한 교섭 진행에 걸림돌이 되지 않나 싶다”고 입장을 밝힌 이창근 실장은 “회사와 동료들을 믿는다”고, “의심 없이 믿고 나니 땅 밟을 용기가 생겼다”며 땅을 밟았다. 쌍용차 사태 해결, 그 하나만을 염원했기에 할 수 있었던 결단이다.

70미터 굴뚝을 사다리를 밟으며 올라갔을 두 노동자의 아찔함, 그리고 또다시 그 길을 내려왔을 두 사람의 마음에 이제 회사가 화답해야 한다. 회사는 대립과 갈등, 소통과 상생이라는 두 선택지 앞에 서 있다. 굴뚝이 보이는 철조망에 마음을 담은 자물쇠를 달았던 시민들의 마음, 티볼리 붐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한 “김정욱, 이창근이 만드는 티볼리를 타고 싶다”는 시민들의 열망은 언제든 분노로 튈 수 있다. 이름 모를 시민에서부터 이효리와 같은 유명인들까지 함께 했던 마음이 소통과 상생으로 향할 것인지 아닌지는 회사가 결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간은 많지 않다.

얼마 전 쌍용차는 3월 24일 주주총회를 통해 신임 대표이사를 선임했다고 한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대립과 갈등의 각을 세우면서 사태를 키워온 이유일 사장이 물러난 것이다. “노사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원하는 마힌드라와 이 사장 사이의 간격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는 업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또다시 변화의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이유일 사장 체제 하에서 공장 안과 밖 모두가 고통 받아 왔다면, 이제는 그 시간을 끝내야 한다. 쌍용차 해고자들에게 모아졌던 수많은 양심들의 인내심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이제 7년의 겨울을 끝내고,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봄을, 쌍용차에 드리워진 겨울을 들어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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