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그래가 나선다

by 센터 posted Apr 14,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글 | 오진호 센터 기획편집부장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대한 여론은 과거의 노동 정책과 달리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 압도적이다. ‘장그래’라는 말을 둘러싼 정부와 노동부의 팽팽한 맞대결은 정부 정책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어떠한지를 느낄수 있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보수언론은 이 법을 ‘장그래법’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자 인터넷과 SNS에는 “장그래가 정규직 시켜달라고 했지 비정규직 연장해달라고 했냐?”며 비난이 쇄도했다. 원작자인 만화가 윤태호 씨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대해 “고통을 연장하는 게 기회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는 건 좀 무리가 있다”고 입장을 밝히며 “어쩜 이렇게 만화와 전혀 다른 의미의 법안을 만들면서 ‘장그래’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하며 황당함을 표현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장그래 양산법’, ‘장그래 죽이기법’이라 주장한다. 정부가 ‘장그래 프레임’을 잡아가는 것에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장그래와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연결시키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듯하다.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가 출범한 바로 다음날 고용노동부는 영화 〈국제시장〉의 황정민과 장그래 역을 맡았던 임시완을 모델로한 신문광고를 냈다. 시민사회단체들의 장그래 논란에 장그래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배우 옆에는 ‘비정규직 차별과 남용이 없는 사회, 우리 청년들이 더욱 일할 맛 나지 않을까요?’라고 써있다. 비용과 인프라가 풍부한 고용노동부의 이 광고는 많은 곳에 게시될 것이고, 많은 이가 임시완과 장그래,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연결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웹툰 원작자는 반대하고, 배우는 찬성하는 이 이상한 구도.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고통을 연장하는 법안’이면서 동시에 ‘일할 맛 나는 사회를 만든다’는 이 구도는 어느 방향으로 향할까. 이를 둘러싼 시민사회단체들과 고용노동부의 힘 대결에 따라 결정이 날 것이다.


최저임금을 광고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아이돌 그룹 멤버인 혜리가 출연한 ‘알바몬 CF 영상-최저시급, 인격모독편’은 게시된 지 한 달 만에 조회 수가 200만 건이 넘었다. 한국인터넷콘텐츠서비스협동조합은 이 광고에 대해 “즉각적인 광고 배포 중지와 소상공인 전체에 공개사과”를 요구했고, 알바몬에 항의하는 ‘사장몬’(정직한 자영업 사장님들의 모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한 아이돌 멤버의 힘만으로 만든 힘은 광고의 화법, 현실과의 공감에 있지 않을까 싶다. 지루하게 최저임금과 부당노동행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마저도 안 주면, 히잉~”이라고 서운해 하고, 임금을 주지 않는 사장에게 앞치마를 똘똘 뭉쳐서 힘껏 던지고 “때려치세요”라며 보는 이들에게 통쾌함을 주는 방식이 수많은 비정규직과 ‘통’한 것이다.

비정규직 종합대책, 열정페이, 블랙기업 등 한국사회에 노동의 목소리가 많이 커졌지만 현실의 비정규직들은 여전히 침묵한다. 알바천국이 20~30대 구직자 1,2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인턴 열정페이 현황’을 보면 65.2퍼센트가 인턴근무 시 보수가 적고 일이 힘들어도 기꺼이 참아야 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턱없이 미흡한 노동조합 조직률과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노조 가입보다 순응을 택하게 하고, 스스로 권리의 주체로 나서는 것을 막는다. 그렇다보니 대다수 비정규 노동자들은 알바몬 광고에 통쾌하고, 장그래에게는 공감하지만, 열정페이는 감수한다는 어그러진 현실에 처해 있다.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그리고 국민 투표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 개혁과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맞서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가 출범했다. 운동본부는 360개 이상의 단체들이 함께 출범한 메머드급 대책기구다. 이렇게 거대한 대책기구가 출범할 수 있었던 힘은 두 가지에서 나온다. 하나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비정규직 종합대책과 노동시장 구조 개악의 심각성이다. 35세 이상 비정규직 사용기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 55세 이상 파견 허용 업종 전면 확대, 직무·성과급 중심 임금 개편, ‘저성과자’ 해고 가이드라인 마련을 핵심으로 하는 정부 안은 가계부채가 1,000조 원을 넘고, 저성장이 예정된(정부예측 3.8퍼센트) 시대를 숙련된 노동자를 쥐어짜서 돌파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박근혜 정부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노동시장 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생존 전략”이라며 “노와 사는 상생의 정신을 바탕으로 3월까지는 반드시 노동시장 구조 개혁 종합대책을 도출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밝혔고, 노사정위원회 전문가 그룹은 이미 정부의 안과 유사한 ‘공익위원 안’을 제출한 상태다. 3월까지는 노동시장 구조 개악 합의를 마무리하고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상반기에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다.

다른 하나는 작년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진 대응 흐름이다. 2014년 10월 26일부터 언론에서 심상치 않은 소식들이 들려왔다.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등 정부 관계자들이 비정규직 사용기간 확대, 파견 허용 업종 확대, 직업소개소 양성화, 시간선택제 일자리 양산 등을 추진 중이라는 언론보도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10월 30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에 50여 개 시민사회단체는 다급하게 11월 4일 ‘비정규직양산법안저지긴급행동(준)’을 결성하고 두 달 동안 집중적인 사업을 벌였다. 기자회견, 세 차례의 집회, 신문 광고 등 부족했지만 빠르고 유의미한 사업들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 성과들을 바탕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운동본부를 구성할 것을 위한 내부 논의가 시작되었다. 논의된 내용들을 바탕으로 2015년 2월 4일, ‘비정규직 늘리고 쉽게 해고? 장그래가 나선다-2015년 비정규직 운동 워크숍’을 진행했고,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집중을 받았다. 결국 이 성과들을 모아 3월 18일(수)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출범식을 가졌다.

경계-장그래살리기.jpg


투표함을 상상할 시간, 국민에게 묻자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는 핵심사업으로 ‘100만 국민 투표’와 ‘장그래 대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이 중 100만 국민 투표는 조직과 미조직을 망라하여 비정규직 종합대책과 최저임금에 대해 묻겠다는 캠페인이다. 알바몬 광고에 통쾌해 하지만 열정페이는 감수하는 이들의 속마음을 듣는 시간이며, 편파적인 문항 설계로 국민을 우롱하고 사기 치는 정부에 맞서 진짜 당신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듣는 질문이다. 혹시 우리와 같은 생각이라면 함께 한 발짝 나아가보자는 손내밂이다. 땅바닥을 기며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절박한 기도를 했던 오체투지 행진을 했던 이들의 절박함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대통령과 정부, 국회에 대한 청원과 호소가 아니라 우리가 결정하겠다는 직접적인 의사 표현이다.

국민 투표 운동이 시작되면 곳곳에 다양한 사연이 담긴 투표함들이 놓일 것이다. 경비노동자 문제에 관심 있는 이들이 아파트에 설치하는 투표함, 어묵과 핫도그를 파는 노점상에 설치된 투표함, 무궁화호 열차카페에 설치하는 투표함, 병원노동자들이 환자들에게 묻는 투표함, 프랜차이즈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동식 투표함, 공단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투표함 등. 갖가지 사연과 이야기가 투표함으로 모이고, 그 결과는 새로운 희망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장그래의 목소리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낼 것이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