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전환과 불안정노동] AI 배차와 배달노동자

by 센터 posted Mar 14, 202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AI 배차와 배달노동자

 

박수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AI, 알고리즘과 같은 기술이 도입되면 일이 더 안전하고 쉬워질까? 배달노동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소 엇갈린다. 우아한청년들(배민)은 2021년 AI배차 도입의 효과로 2021년 4월 기준 평균 배달 시간은 15% 감소했으며, 고객 안내시간 준수율은 13%p 향상되었다고 밝혔다. 반면 노동자들은 알고리즘의 도입 이후 일하는 과정에 대한 감시와 지시가 강화되고, 수입을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Covid-19를 거치며 배달노동자 규모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사고도 크게 늘었다.

 

기술도입의 결과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라이더유니온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배차 알고리즘이 노동조건 및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은 2023년 9월 5~7일 3일 동안, 매일 16~20시에 진행했고, 총 74명의 배달노동자가 참여했다. 5~6일에는 알고리즘 배차의 효과, 7일에는 과속을 하지 않을 경우의 변화를 관찰했는데, 그중 첫 번째 실험에 집중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실험은 배달노동자를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누고, 각자 다른 조건에서 일을 한 뒤에 그 결과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두 그룹은 나이, 소득, 경력의 평균값에는 차이가 없었다. 실험그룹에는 39명이 배정되었는데, 이들은 배차 알고리즘이 주문을 제시하면 모두 수락하며 4시간 동안 일을 했다. 비교의 기준이 된 다른 그룹에는 35명이 배정되었는데, 이들은 평상시처럼 어떤 주문은 거절하면서 일을 했다.

 

이 실험에서 소득은 실험시간(16~20시) 동안의 총소득을 시간으로 나눈 시간당 수입과 건당 배달료 두 가지로 보았다. 소득의 경우 배달앱에 정확하게 정보가 나타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측정이 용이했다. 노동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는 배달거리를 선정하였다. 배달노동에서 ‘배달거리’는 배달노동자들이 치러야 하는 비용, 배달에 소용되는 시간, 피로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요소이다. 그런데 배달앱에서는 이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특히 노동자의 현재 위치에서 상점까지 이동하는 픽업거리는 현재 거리가 측정되지도 않고, 이에 대한 보수도 책정되지 않아 무급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라이더유니온은 배달노동의 기준으로 ‘픽업거리를 포함한 실제 이동거리’가 사용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오토바이 계기판의 총이동거리를 측정했다.

 

주요 결과: 소득과 노동강도

배달의 경우 식사시간과 아닌 시간의 주문량, 배달료 차이가 크기 때문에 비피크시간(16~18시)과 피크시간(18~20시)을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아래는 시간당 소득과 운행거리의 중간값이다. 중간 값은 여러 값을 크기에 따라 일렬로 정렬했을 때 중간에 해당하는 값이다.

예를 들어 1,2,9의 평균값은 4이지만, 중간값은 2이다. 아래 표를 보면 시급, 건당배달료 모두 시간대에 따라서 소득의 차이가 크고, 알고리즘 배차를 모두 수락할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많은 거리를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캡처dd.JPG

 

이번 실험결과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시간대에 따라 결과가 크게 엇갈린다는 점이다. 평상시처럼 배달을 한 그룹의 경우 피크시간에 배달 수가 줄어들었음에도 소득은 크게 늘어, 물량이 많은 시간을 전략적으로 효율성을 높이는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물량이 많지 않은 시간에는 이러한 전략을 구사할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노동량이 더 중요해진다. 다음의 두 그림은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박수민_지도1.png 박수민_지도2.png

          평소처럼 운행(통제그룹)                                    알고리즘 배차 100% 수락(실험그룹)

 

 

이 그림은 같은 날 강남 지역에서 배달을 수행한 두 배달노동자의 동선이다. 왼쪽은 평소처럼 거절을 하며 일한 경우이고(통제그룹), 오른쪽은 AI배차를 모두 수락하며 일한 경우이다(실험그룹). 이날 통제그룹의 노동자는 4시간 동안 16개의 배달을 하고 93,760원의 수입을 올린 반면, 실험그룹의 노동자는 음식 14개를 배달하고 71,620원을 벌었다.

 

이 그림에서 주목할 것은 두 노동자의 이동반경이다. 휴대폰 기종의 차이로 다른 앱을 사용한 탓에 화면 구성이 다소 다르지만, 왼쪽의 경우가 한결 좁은 구역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AI배차를 모두 수락한 노동자의 동선은 사당 근처에서 봉은사 근처까지 넓은 지역으로 퍼져있다.

 

이동반경은 배달노동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전업으로 배달을 하는 노동자들은 해당 지역의 상권, 교통체계 등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고, 이를 토대로 배달을 수락하거나 거절한다. 또한 오토바이로 계속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지리적 익숙함은 안전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실험을 진행하는 동안 모든 배차를 수락하는 그룹의 배달노동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한 가장 큰 두 가지 문제 익숙하지 않은 지역에서 운전을 해야 하는 것의 어려움과 상점에 음식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것이었다. 배달노동자들은 금전적인 보상뿐 아니라 심리적, 물리적 안전과 같은 다양한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해 배차를 수락할지, 거절할지를 결정한다.

 

이 실험의 목적은 알고리즘이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노동자의 데이터로 직접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고려해야 할 또 하나의 요인은, 플랫폼 기업에서 시시때때로 진행하는 프로모션이다. 플랫폼 기업은 여름이나 겨울 같이 수요에 비해 노동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에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여러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수입이 줄어드는 것이 확실한데 그 정도가 예측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설사 비오는 날 일하는 것이 훨씬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프로모션을 외면하기 쉽지 않다. 알고리즘이라는 신기술이 노동조건, 산업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그리고 신기술의 도입이 모두에게 긍정적인 경험이 되기 위해, 자기착취적 프로모션 전략, 앱의 디자인, 소득과 노동강도에 미치는 영향, 안전 등의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한 평가틀이 필요하다.

 

 

?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