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전환과 불안정노동] 프레카리아트: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노동계급

by 센터 posted Mar 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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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카리아트: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노동계급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

 

우리는 핸드폰을 쥐고 산다. 지하철, 카페, 침대 등 시·공간을 가리지 않고 친구와 소통하고, 물건을 사고팔고, 뉴스를 듣고 각종 정보를 검색한다. 사물 인터넷, 빅 데이터, AI, 로봇은 이제 공상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회사경영을 위한 필수품이 된 지도 오래다. 이렇게 우리는 일상이나 일터에서 디지털 기술을 외면하고는 하루도 버티기 힘든, 그야말로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디지털화는 21세기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각광받는다. 빅 데이터로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사업모델을 개발하며, 인터넷으로 전 세계를 연결하고 시장의 무한 확대를 꿈꾼다. 디지털화는 이와 같은 기술적 혁신을 통해 오랫동안 지속된 자본주의 경제의 침체를 극복하고 새로운 번영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낸다. 이러한 구원의 약속이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 미래는 어찌 될지 알수 없으나 지금까지의 경과를 보면 회의적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이를 대변해주는 개념이 바로 ‘프레카리아트 Precariat’다.

 

프레카리아트란 이탈리아어로 ‘불안정한’이라는 의미의 ‘프레카리오precario’와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트 Proletariat’의 합성어로 ‘불안정 노동계급’이란 뜻이다. 이는 2000년대 초반 이탈리아 노동운동에서 처음 등장한 후 국제사회에 디지털화 시대의 새로운 노동계급을 일컫는 개념으로 확산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의 자본주의 사회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노동계급의 중산층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프롤레타리아트’와 같은 계급 대립적 개념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으나,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이제 다시, 그것도 최첨단 기술 혁신이라는 디지털 시대에 산업화 초기에 등장했던 그개념이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화는 도대체 어떤 노동계급을 만들고 있기에 프레카리아트로 지칭될까?

 

디지털 시대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일자리는 이른바 ‘플랫폼노동’이다. SNS, 앱(App) 또는 웹(Web) 기반의 플랫폼을 매개로 노동력이 거래된다. 이는 기존의 업무를 새로운 기술적 도구를 통해 외주화해서 필요할 때만 사용하는 사업전략으로 흔히 ‘주문형’ 또는 ‘온 디멘드 on-demand’ 경제라고도 부른다. 언제 어디서나 연결이 가능한 디지털 기술의 특성을 이용한 노동력 활용전략이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이전략이 노동력을 낭비하지 않고 필요시에만 사용하기 때문에 효율적이라 하겠지만, 노동자에게 이 효율성은 늘 호출만을 기다려야 하는 불안정한 고용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노사관계도 존재하지 않아 불안정성은 더욱 심화된다. 플랫폼 업체는 노동력을 고용하지 않고 고객과 서비스 제공자를 연결하는 ‘중개자’로 간주되어 사용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회피한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용역 위탁 계약을 맺고 건당 수수료를 받는 특수고용 또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이로부터 개수급이 되살아나고, ‘자기 착취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더 많이 일하면 더 많이 벌 수 있고, 그래야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최저임금, 사회안전망에서도 배제된다. 서비스연맹의 조사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들은 그 전(플랫폼노동으로의 전환 이전)보다 임금은 줄어들고 노동시간은 길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배송 관련 노동의 경우 평균 주 50시간을 넘는 것은 보통이다.

 

‘자유’는 플랫폼노동이 내세우는 가장 큰 메리트 중의 하나다.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된다는 것이다. 플랫폼은 어떠한 강요나 통제도 없는 공간이라고 자랑한다. 정말 그럴까? 겉으로는 자유가 있어 보이지만 이는 재산이나 사회안전망이 충분할 때 가능한 얘기지 당장 먹고사는 것이 문제인 노동자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무조건 일을 해야 한다. 서구에서는 플랫폼노동이 부업 또는 알바의 성격이 강한 데 비해 한국은 전업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노동자의 약점을 이용해 열악한 임금과 노동조건을 강요한다. 노동 통제도 문제다. 플랫폼노동은 사람의 직접적 통제는 보이지 않지만 알고리즘의 은폐된 지휘 감독하에 놓여있다, 고용 및 보수, 평가 및 업무 배분의 뒤에는 AI가 보이지 않게 작동한다. 그래서 더 개입하기 어려운, 교묘한 노동 통제가 일어난다.

 

일과 생활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자본 측에서는 모바일 노동이 활성화되면서 노동자들이 시·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 근무 시간과 장소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 일과 생활의 조화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노동 통제가 사적 영역까지 침투하면서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상사는 언제 어디서나 업무를 지시하고 그 결과를 받을 수 있어 근무시간과 여가시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끝 없는 노동’이 펼쳐진다.

공짜노동도 감수해야 한다. 프리랜서의 경우 플랫폼에 올려진 한 과제에 대해 여러 사람이 참여하지만 결국은 한 사람만이 선택되어 보상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결과 중심’의 경쟁으로 프리랜서들은 일이 끝난 뒤 빈손으로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배송, 방문점검원들은 고객의 부재로 인해 대기해야 하는 ‘공짜시간’도 발생한다.

노동의 질적 저하도 문제다. 생산직이나 사무직이나 가리지 않고 디지털화는 전문인력이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빅 데이터와 AI로 대체하려 한다. 이리 되면 노동자는 단지 사이버 공장에서 돌아가는 한기계의 톱니바퀴와 같은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실제로 웹 기반의 ‘마이크로태스킹 microtasking’은 저숙련 단순노동을 양산한다. 전문직 사무업무를 잘게 쪼개 단순하게 만들어 개수급 방식으로 불특정 대중에게 제공한다. 때문에 이를 ‘크라우드 노동 crowd work’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들은 언제나 대체 가능한 단순노동 인력이며, 개별 노동의 결과는 기계적으로 집약, 조립되어 전체가 된다. 마치 공장의 컨베이어 시스템이 가상 세계로 옮겨진 듯해 ‘디지털 테일러리즘’ 또는 ‘인지적 삯일’이라고도 부른다.

 

이 모든 것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노동계급인 ‘프레카리아트’가 경험하는 일들이다. 자본의 장밋빛 전망과는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문제는 비정규직 증가, 업무의 시·공간적 ‘탈경계화’로 인해 노동의 불안정성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프레카리아트는 과거의 프롤레타리아트보다 더 문제가 크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래도 엄연한 ‘노동자’였다. 노조를 만들어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정치적 투쟁을 통해 사회적 안정망도 확대할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이른바 ‘중산층화’도 가능했다. 그러나 많은 프레카리아트는 노동자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집단적 이해관계를 대변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화, 파편화되어 있다. 때문에 지금의 상태에서 더 나아질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두면 그들의 불안정성은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고 그대로 대물림될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보다 조직화가 필요하다. 노조가 이들과 연대하여 정치세력화를 꾀해야 한다, 사실 지금도 노조법 2·3조 개정, 초기업·산별교섭 활성화, 보편적 복지를 위한 ‘일하는 사람 기본법’ 등 프레카리아트의 권리보장을 포괄하는 입법투쟁을 하고 있으나 별 효과가 없다. 힘이 없기 때문이다. 제도적 개선을 위해서는 노조가 프레카리아트의 조직화에 힘써야 한다. 동시에 지식인그룹과 시민사회와의 폭넓은 연대를 통해 노동의 불안정성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면서 자신의 권력 자원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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