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노동] 허울뿐인 필수 노동자, 아이돌보미

by 센터 posted Oct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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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주 아이돌보미

 

 

서울에서 9년째 아이돌보미를 하고 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누가 대신 키워줄 사람이 없다 보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경력단절에 대한 안타까움이 너무나도 컸다. 아이들이 다 크고 할 일을 찾던 중 지인이 아이돌보미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게 딱 맞는 일이라 생각했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자기 일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할 수 있도록 우리가 엄마 역할을 해주고, 나도 노후 준비를 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7.기자회견.jpg

공공연대노동조합 아이돌봄분과는 2020년 10월 15일 국회 앞에서 아이 돌봄 국가책임제 실현 등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급은 최저시급이지만 교통비도 있고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기에 재미있게 활동을 하였다. 하지만 주던 교통비도 예산이 없다고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등 처우가 조금씩 좋아지는 게 아니라 점점 나빠졌다. 맥 빠지게 활동을 하던 중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일상생활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아이돌보미도 크나큰 변화가 찾아왔다. 이용자가 재택근무를 하게 되니 당연히 우리는 일할 곳이 없어지고, 한편으로는 학교, 어린이집을 가지 않다 보니 긴 시간을 일하는 사례도 있는 등 여러 가지 형태가 나타났다. 아이돌보미는 기본급 없이 이용자가 신청한 시간에 각 가정에 방문한다. 그러다 보니 급여가 들쑥날쑥하고 안정적인 급여는 생각할 수도 없다. 질병으로부터도 위협을 느끼며 일을 하게 되었다. 혹시나 감염이 될까 봐 걱정도 된다. 센터에서는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하고 근무하라고 하지만 긴 시간 아이들과 뛰어놀고 목욕도 시키는데 땀으로 범벅이 되어 숨이 차오른다. 우린 혹시나 감염에 노출될까 걱정이 돼서 집과 이용자 가정만 왔다 갔다 한다. 하지만 이용자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주말 동안 여행을 갔다 오기도 하고, 근무시간에 친구나 친척들을 불러 집에 모여 놀기도 한다. 나는 불안하지만 말도 못 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일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고통은 아이돌보미 스스로 지고 가야 한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선에서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데도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예방접종비도 삭감했다. 기자회견을 하고 시의회 등을 방문해 항의하고서야 겨우 예산을 편성 받기도 했다. 또한, 코로나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줌으로 수업을 하다 보니 수업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돌봐주어야 하고 학습지, 숙제도 챙겨야 하는 등 업무가 과중 되다 보니 피로도가 높아 하루하루 지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센터에서는 방역물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이중고에 시달리며 근무하고 있다. (참고로 내가 속한 센터는 방역물품 지급을 잘하고 있다.)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센터마다 방역물품도 차별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우릴 필수 노동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 허울뿐인 필수 노동자다. 감염으로부터 위험을 감수하고 책임감으로 일하고 있지만, 기본급이 없다 보니 월 60시간을 일하지 못하면 4대 보험, 주휴, 연차, 법정수당 등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여전히 1년 단위로 계약서를 작성하다 보니 고용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2022년에는 광역지원센터를 운영한다고 하지만 여성가족부의 미비한 준비로 지금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현실은 이러한데 필수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고 실현 가능한 것들을 예산에 반영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참으로 암울한 현실이다. 우리 사회는 누구나가 돌봄을 받고 돌봄을 하는 위치에 있기에 필수 노동자가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노동자가 천대받지 않고 일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도록 우리 사회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지켜주고 배려해야 하지 않을까. 기본 생활이 유지되도록 최소한의 기본급은 유지되어야 하고 질병에 노출되어 근무하기 때문에 방역물품만이라도 제대로 지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으므로 우리가 누군가를 돌보는 필수 노동자라 생각하고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함께한다면 지금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 밝은 세상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한 가지 간절한 소망은 아이돌보미는 민간위탁이 아닌 국가가 책임지고 운영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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