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 플랫폼 노동자 ‘보호’ 법안인가

by 센터 posted Jun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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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종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실장

 

 

플랫폼 노동은 노동자에게도 선택권을 준다. 일하는 시간을 조절하고, 좀 더 수수료가 높은 회사를 선택한다. 과로까지 노동자의 선택이 된다. 하지만 그 선택이 노동자의 자율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노동자는 일을 해야 한다. 노동을 지속하기 위해 플랫폼 사의 알고리즘을 따를 수밖에 없고, 기업의 방침에 종속된다. 플랫폼 노동자가 늘어나고, 플랫폼 사의 독점이 심화할수록 수수료는 일방적으로 결정된다. 플랫폼 노동자에겐 임금 교섭 기회도 없고, 최저임금이라는 기준도 없다.

 

기술의 발전은 자본에 효율적인 쪼개기 노동의 기회를 열어주었다. 인터넷을 활용해서 노동의 필요와 공급을 연결하고 성과물을 취합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었다. 일을 시키지만, 시킨 사람이 누구인지 교묘하게 감출 수 있게 했다.

 

최근 카카오에 대한 사회적 비난은 이런 플랫폼 노동 시스템을 그대로 보여준다. 불과 몇 년 전 카카오 대리는 다른 대리업체에 비하면 20%라는 낮은 수수료로 대리기사를 모집했다. 기사들도 이용자도 순식간에 카카오 플랫폼으로 모였다. 카카오 대리는 업계에서 일정한 점유율이 확보되자 최근 카카오는 대리기사를 대상으로 월 22,000원의 유료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대리기사의 선택권을 넓힌다고 하지만 대리기사로서는 더 좋은 콜을 받기 위해 이 프로그램에 가입해야 한다. 사실상 수수료 인상인 셈이다. 대리뿐 아니라 카카오 택시의 경우도 비슷한 방식으로 수수료를 인상해 택시 기사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지난해 전국대리운전노조는 카카오에 교섭을 요구해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에서도 카카오가 대리운전 기사들의 사용자임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카카오는 여전히 교섭에 나오지 않고 있다. 끝까지 플랫폼 뒤에 숨어 사용자임을 감추려고 한다. 지금의 태도를 보면 법원의 판단으로 카카오가 교섭에 나온다고 한들 새로운 플랫폼 계약 형식을 만들어 노동법을 회피하려 애쓸 것이다.

 

플랫폼 노동은 기업에 더없이 좋은 기회다. 기업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노동법을 회피하는 새로운 플랫폼 노동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는 점점 늘어가는데, 현행 노동법은 이들을 보호하기엔 한계가 있다. 플랫폼 노동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대책이 절실한 이유다.

 

2.기자회견.jpg

2020년 12월, 일자리위원회 앞에서 열린 플랫폼종사자특별법 추진 규탄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기자회견

 

이런 사회적 우려 속에 지난해 12월, 정부는 사람 중심 플랫폼 경제를 위한 ‘플랫폼 종사자 보호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플랫폼을 이용해 노무를 제공하는 광의의 플랫폼 종사자는 179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7.4%에 달했다. 이중 실제 일의 배정 등에 영향을 미치는 플랫폼 노동자는 22만 명인데, 배달 노동자가 가장 많았다. 지역형 플랫폼 노동자가 77%로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한국 플랫폼 노동의 특성으로 짚었다.

 

정부 대책 발표의 연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이 플랫폼 종사자 보호 법안을 발의했다. 정부에서 오랜 논의 끝에 내놓은 법임에도 정작 당사자들은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과연 이 법이 플랫폼 노동자들을 구분해서 보호할 수 있는지 의문이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투쟁이 시작되면서 이들도 하나둘 노동자로 인정받고 있다. 타다 드라이버의 부당 해고 소송에 대한 중노위 판정이 있었고, 카카오 대리의 교섭 요구에 대한 중노위 판결이 있었고, 배달 노동자의 노동자 인정 판결이 있었다. 플랫폼 사가 플랫폼 노동자의 진짜 사용자임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노동계에서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플랫폼 종사자 보호 법안이 오히려 노동자성을 감추고 제삼지대에서 반쪽짜리 노동자인 ‘플랫폼 노동자’라는 새로운 영역을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정부도 이런 노동자들의 우려를 알고 있어서 해당 법에 “플랫폼 종사자가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고용보험법」 등에 따른 근로자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해당 법률을 이 법에 우선하여 적용하되, 이 법이 유리한 경우 이 법을 적용함”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이 법 또는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등의 적용과 관련하여 고용노동부 장관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고용노동부에 자문기구를 둘 수 있음”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배달 노동자, 대리 노동자 등 현재 플랫폼 노동자에게는 어떤 법이 적용되는가에 대한 질문에 정확히 답을 하지 못한다. 이 법이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데에 법조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 같은가 하는 의문에는 답하지 않는다.

 

정부가 이런 우려를 해소해 주어야 진짜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이 된다. 우려를 해소하는 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노조법을 개정해 노동자, 사용자 개념을 확장하면서 플랫폼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방법이다. 이미 노동계에서는 특수형태 고용직 노동자, 간접고용 노동자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으므로 노조법을 개정해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하지만 재계와 보수의 눈치만 보는 정부와 여당이 이런 법안을 처리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힘든 조건이다.

 

둘째,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AB5 법과 같이 강력한 오분류 방지 제도를 만드는 방법이다. AB5 법안은 노동자와 독립 계약자를 분류하기 위해 ABC 테스트를 적용한다. 테스트 조항은 “(A) 업무 수행의 계약과 수행에 고용 기업의 통제가 없어야 한다. (B) 기업의 통상적인 업무 과정을 벗어난 업무를 수행한다. (C) 수행 업무와 동일한 성격의 독립적인 직업 또는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다.”로 기업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증명하지 않는 한 노동자를 독립 계약자가 아닌 해당 기업의 직원으로 분류한다. 정부가 발의한 플랫폼 종사자 보호 법안에도 오분류를 막기 위한 조치로 고용노동부 장관의 자문기구를 두고 있는데, 권한도 실효성도 의심되는 자문기구가 미국의 AB5 법의 오분류 제도를 대신할 수는 없다.

 

셋째, 유럽연합의 ‘2019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근로 조건에 관한 지침’과 같은 방법이다. 플랫폼 노동이라는 별도의 영역을 만들 것이 아니라 모든 고용 형태에 대해 공정한 노무 계약을 보호하는 규정을 만드는 방식이다. 유럽연합은 해당 지침을 통해 모든 단시간 노동, 간헐적 노동에 대한 보호 조치를 마련함으로써 플랫폼 노동자도 함께 보호하고 있다.

 

첫째 방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정부는 두 번째, 세 번째를 섞어서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을 만들었다. 결과는 이도 저도 아닌 노동자의 의심만 사는 법을 발의하고 말았다. 필수 노동자 보호, 가사 노동자 보호,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 등 정부가 잇달아 특정 시기, 특정 직종에 대한 노동자 보호법을 내놓으면서 이런 식의 법 제정이 옳냐 그르냐는 논란도 있다. 필자는 언젠가 노조법을 고쳐야겠지만, 현재 정치 조건에서 열악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다른 방식의 모색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사자가 싫다고 하는데도 기어이 법을 발의해놓고 전체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법인데 당사자들이 잘 모르고 반대한다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불신은 정부의 입법 과정에서 생겨났고, 현재 법 조항에 담겨 있다. 지금이라도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플랫폼 노동자들을 제대로 보호하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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