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와 해학이 사라진 예능계의 이면_일본 예능인들의 노동자성과 노동 시장

by 센터 posted Dec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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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직수 센터 정책연구위원



희극 같은 현실과 현실의 희극인들


한국의 탄핵정국과 촛불집회 소식을 연일 이어지는 일본 뉴스 보도를 통해 접하던 중,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한국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풍자하고 있음을 전하며 약간은 신기해하는 반응을 보였던 점이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야말로 ‘코미디’인 것은 사실이지만, 필자가 보기에 일본의 정치와 사회가 그리 선진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일본 주류 미디어의 예능 프로그램들에서는 좀처럼 ‘풍자와 해학’을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일본의 방송연예계, 이른바 ‘예능계’는 독특하게 코미디언들이 주도하고 있다. ‘오와라이 게닌’ 혹은 줄여서 ‘게닌’이라 불리는 이들이다. 이들은 코미디뿐만 아니라 영화와 문학 등 예술계로부터 TV드라마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일본에서 코미디언들이 예능계를 ‘점령’하게 된 것이 그리 오랜 일은 아니다. 1990년대 들어 버블 경제가 붕괴하면서 주요 방송사들은 보다 저렴한 출연료를 들이면서도 일정 수준의 실력을 지닌 탤런트들을 원했는데, 이에 딱 들어맞는 이들이 코미디언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양성소’와 라이브 극장 활동을 중심으로 고도의 경쟁 하에서 생계를 위한 고난과 ‘선발’을 위한 연습으로 단련된 이들이었다. 이에 따라 한편에서는 ‘만담 붐’이 지속되면서 예능계 내에서도 밑바닥에 있던 코미디언들의 문화적 지위가 향상되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코미디언들의 활동범위가 급격히 확장되었다. 1990년대 후반, 일본 문화 개방이 시작되면서 국내에도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소개된 기타노 타케시가 바로 ‘투 비트’라는 콤비의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일본 코미디언들의 예술계 및 예능계 전반으로의 진출 확대를 배경으로 한다.


일본의 정치와 코미디


이처럼 코미디언들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일본에서 왜 이토록 ‘풍자와 해학’을 찾아보기 어려운가? 그 이유로는 일본 특유의 문화적 배경, 미디어의 보수화, 그리고 예능인 노동 시장의 특징을 들 수 있다. 먼저 공적 권위에 대한 비판과 도전을 ‘불편히’ 여기는 일본 특유의 문화적 배경을 들 수 있다. 여기에 ‘분위기 파악’을 중시하는 집단주의 문화도 더해진다. 선후배 관계로 촘촘히 엮여진 예능계 내에는, 혹자의 표현을 빌리면 ‘동조 압력’이 존재하며, 따라서 예능인들도 다양한 관점을 드러내기보다는 세간의 중론을 따라가며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돌출된 언행을 할 경우, 어지간한 인기와 영향력 없이는 ‘살아남기 어려운’ 분위기가 존재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일본 미디어의 보수성을 들 수 있다. 특히 미디어의 보수화는 짧았던 민주당 정권 붕괴와 자민당 재집권에 따른 아베 내각 등장 이후 심화되고 있는데, 그 핵심에는 ‘자주규제’에 따른 권력 견제 및 감시 기능의 약화가 있다. 더욱이 미디어의 중심인 방송국에서, 그 중에서도 중심을 이루는 ‘보도국’부터가 강고한 ‘어용 시스템’을 이루고 있어 심각성을 더한다. 최근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지난 2015년 10월 언론인 기시이 시게타다 씨가 자신이 진행하던 뉴스 프로그램에서 아베 내각 하에서 성립된 안보법을 비판하자 정부 측이 주요 일간지에 전면 반박광고를 게재한 사건을 들 수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인기 방송 진행자였던 기시이 씨는 자신의 방송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일본 내에 직접적인 미디어 규제는 존재하지 않으나, 문제는 이와 같은 ‘자주규제’이다. 이러한 관행은 현장의 기자 및 스태프들이 위축되는 효과와 더불어 강화되고 있다.


일본 예능인들의 노동자성과 노동 시장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능인들의 노동자성과 노동 시장의 특징이다. 일본 예능계를 주도하는 코미디언들 답게 수백여 명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나, 그마저도 수만 명에 이르는 코미디언들 가운데 극소수의 스타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대형 예능 기획사 시스템이 존재한다. 일본의 예능 기획사 시스템은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의 경우 연예인 지망생 청소년들을 이른 단계에 오디션을 통해 ‘걸러낸’ 뒤 집중적인 트레이닝과 자원 투입으로 키워내는 방식이 주류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일본의 예능 기획사들은 인력파견회사에 가깝다. 일본 내에서 재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해진 ‘등록형 파견’과 같은 사업방식이다. 이는 코미디언뿐만 아니라 배우나 아이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리하여 ‘생계형 아이돌’이란 용어가 등장하고, 경악스러운 고용-임금 체계를 지닌 아이돌 그룹들이 존재하며, 종종 아이돌 걸그룹 멤버의 자살사건 등이 일어나는 것이다.


항상 ‘주류’의 목소리와 분위기를 파악하고, 방송사 등 거대 미디어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하며, 따라서 거침없는 풍자와 해학을 삼가는 코미디언들과 예능인들의 경향의 이면에는 ‘한 번 밀려나면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적 현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헌법 9조를 옹호해 온 인기 콤비 ‘폭소문제’(이들조차도 공영방송에 출연하게 되면서 정치사회적 발언은 자제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한다), 마키타 스포츠와 같이 이른바 ‘서브컬쳐’ 팬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이들, 故 야시키 타카진과 같이 겸업(가수)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며 비교적 자유로운 지방방송에서만 활동하는 이들, 극단적으로는 방송 활동을 포기하고 거리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극우파 코미디언 토리하다 미노루 같은 이들의 사례도 있으나 이들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사례이다.


시마다 신스케와 요시모토흥업의 사례


이상과 같은 일본 예능계, 특히 코미디언 생태계의 흐름을 대표하는 이가 바로 콤비 ‘신스케 류스케’의 시마다 신스케이다. 일본의 코미디언들은 그와 같이 콤비로 활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간혹가다 솔로나 트리오가 있는 정도인데, 이는 일본의 코미디가 전통(?) 희극인 만담(만자이)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양대 전통 희극으로는 만담과 라쿠고가 있으나, 여전히 도제 시스템이 존재하는 라쿠고와 달리 만담의 경우 도제 시스템이 붕괴하고 이른바 ‘양성소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 시마다 신스케는 도제 시스템 하의 일본 만담계의 마지막 주자를 대표한다. 시마다 신스케는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 그야말로 혜성같이 등장한 인기 스타였다. 고도 경제 성장이 절정에 이른 뒤 그와 더불어 찾아온 방송연예 부문 팽창과 그에 따른 ‘만담 붐’의 수혜자이기도 하다. 그의 인기가 절정에 이르렀던 1982년, 그는 동료들을 이끌고 소속사인 요시모토흥업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회사 소속 코미디언들의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항의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요시모토흥업은 NSC(뉴 스타 크리에이션)라는 양성소를 설립하며 도제 시스템의 종말을 고했다. 그리고 양성소 시스템은 코미디계를 중심으로 타 기획사에도 급속히 확산되어 갔다.


요시모토흥업이라는 예능 기획사는 2010년 한국에 법인을 설립하고 모 케이블TV 코미디 프로그램에 솔로 코미디언 진나이 토모노리를 출연시켜 국내에서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요시모토 흥업은 1912년 오사카에서 출발하여 도쿄와 전국구로 확장해온, 일본에서도 가장 큰 규모로 가장 긴 역사를 지닌 예능 기획사이다. 요시모토의 코미디언 양성소인 NSC는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 왔으며, 특히 1980년대의 ‘만담 붐’과 1990년대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융성을 계기로 코미디언 지망생들이 급증하며 성장을 거듭해 왔다. 최근 기준으로 NSC에는 매년 1,200명 정도의 지망생들이 지원하며, 특별한 선발 절차 없이 입학하여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다. 최초 1년에 한해 입학생들로부터 500만 원 정도의 수업료를 받고 기초교육을 실시하면서 연습생들을 요시모토흥업 소유의 라이브 극장 무대에 세운다. 연습생들은 첫 무대에서 1분 남짓의 짧은 콩트나 만담을 피로한 뒤 관객 설문조사 결과에 따라 A에서 C까지의 세 등급으로 분류되는데, A등급은 3분, B등급은 2분, C등급은 1분의 공연시간을 배정받게 된다. 이를 반복하며 1년이 지난 뒤 불과 수십 명만 남겨진 A등급 연습생들을 프로로 데뷔시킨다. 물론 이 가운데에서도 전업 코미디언이 되는 것은 수 명에 불과하다. 더욱이 스타가 되더라도 출연료는 방송사가 거의 일방적으로 정하며, 소속사 측이 50퍼센트 이상, 많게는 80퍼센트 이상을 취한다. 요시모토흥업이 일본에서 이른바 ‘블랙 기업’ 취급받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스타가 되지 못한 절대 다수의 코미디언들은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가난한 생활을 지속하거나 다른 직업을 찾는다. 가끔씩 방송에 출연하며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경우라 해도 소속사로부터 받는 급여는 몇 십만 원을 넘지 않기에 아르바이트가 필수인 것이다. 그래서 갑작스레 인기를 얻어 스타가 된 코미디언들이 방송에 출연하여 “월급이 수십 배 올랐어요”와 같은 멘트를 하는 것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시마다 신스케는 노동조합 결성 주도 등을 통해 도제 시스템에 따른 신분적 질서 타파에 큰 역할을 하였지만, 동시에 이처럼 냉혹한 시장경쟁 시스템 강화에 한 몫을 한 이이기도 하다(그는 만담에 있어서도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대중적인’ 스타일을 확립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때문인지 요시모토흥업 노동조합도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였고, 노동조합 운동이 예능계 전반으로 확산되지도 못하였다. 그의 주도로 2001년 최초로 개최된 ‘M-1 그랑프리’는 이후 십여 년에 걸쳐 ‘만담 붐’을 절정으로 이끈 토너먼트 형식의 경연대회이다. 수천 명이 지원하는 예선을 걸쳐 8~9개 콤비가 진출하는 결승전은 매년 연말이면 생방송으로 방영되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곤 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새로운 코미디언들이 스타덤에 오르게 되면서 ‘한방의 인생역전’을 꿈꾸는 코미디언들과 연습생들은 더더욱 늘어났다. 이른바 ‘열정페이’나 ‘열정착취’가 일본에서는 거대한 비즈니스 시스템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공교롭게도 2011년부터 2014년까지 ‘M-1 그랑프리’는 중단되었는데, 이는 2010년, 주최자인 시마다 신스케가 폭력단(야쿠자)과 교제한다는  스캔들이 터지면서였다. 결국 시마다 신스케는 은퇴를 선언했고, 최근까지 간간이 복귀설이 나도는 정도이다. 물론 그는 비난받아 마땅하나, 그가 밝힌 폭력단과의 교제 배경은 꽤나 흥미롭다. 인기 절정이던 1980년대, 그는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황실을 비꼬는 발언을 하였고, 이를 계기로 우익단체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받았다. 이에 따라 ‘보호’가 필요하게 되어 폭력단과 접촉해 상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이런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해당 프로그램이 간사이 지방방송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에는(현재에도 마찬가지일지 모르지만) 자유분방한 풍자와 해학이 어려운 배경으로 우익집단의 심기를 건드리면 신변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있었던 것이다.


한편, 한국의 경우 예능계 일반에서는 조기선발 집중육성 시스템이, 코미디계에서는 공영방송을 중심으로 한 희극인 공채시스템이 주류를 이룬다. 물론 과거에는 한국에도 일본처럼(식민지 시기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만담 콤비 형태로 활동하는 코미디언들이 적지 않았으나, 현재 한국에서는 코미디언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방송사 희극인실의 일원인 경우가 많고, 경력이 쌓이고 인기를 얻으면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형태이다. 따라서 한국의 코미디 프로그램들은 집단 콩트 형식의 코너들로 채워지며, 이로 인해 최근 들어서는 형식상의 단조로움이나 소재의 고갈 등 많은 비판을 받곤 한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풍자와 해학은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 코미디의 여전한 강점이다. 이조차도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방송사 희극인실의 상대적 독립성 및 자율성 강화는 선배 희극인들의 노력에 힘입은 것이었다. 일례로 수년 전 김학래, 김형곤 등 ‘선배’ 개그맨들이 모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희극인실을 방문한 노태우에게 “정치 풍자해도 되겠냐”고 요구하였고, 이에 “좋다”는 답변을 듣자마자 3김 풍자, 재벌 풍자 등의 코너를 기획했다고 밝힌 바 있다.


대중음악계와 영화계도 사정은 마찬가지


일본 코미디계의 ‘등록형 파견’ 방식과는 다르다 하더라도 대중음악이나 영화계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2016년 초 장수 아이돌이자 최고 인기 아이돌 그룹인 스마프(SMAP, 1988년부터 활동)의 해체 소동이 있었다. 그 핵심에는 ‘쟈니즈사무소’라는 대형 예능 기획사의 지배력 행사가 있었다. 매니저의 해고, 그리고 이에 반발한 그룹 멤버들의 기획사로부터의 독립 시도와 내부 분열 등이 연일 스포츠신문 1면을 채웠다. 그리고 한국에도 잘 알려진 스타 기무라 타쿠야는 철저하게 회사 편에 섰다. 마치 수십 년 전 요시모토 노조 결성 당시 시마다 신스케와 달리 철저히 회사 편에 섰던 올 교진(콤비 ‘올 교진-한신’의 일원)처럼 말이다.


영화계에서는 지난 2015년 배우 오구리 슌이 배우노동조합 결성을 호소하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젊은 배우이지만, 2016년 타계한 유명 연극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의 수제자 중 한 명으로서 예능계에서 영향력이 큰 편이다. 그런 그조차도 ‘목숨을 걸어야 될까 말까 한 일 같다’는 식의 언급을 하는 등 고전하고 있다. 일본배우연합 등의 기성 단체도 존재하지만, 배우들의 권리 보호에는 한계가 크며, 노동자성과 노동실태는 여타 예능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에서는 1960년대까지 영화사와 전속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후 일본 영화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대부분이 프리랜서 형태를 취하게 되었으며, TV방송의 팽창과 더불어 거의 대부분이 기획사 시스템에 편입되었다. 물론 1990년대 이후 개별적인 소송 등 문제제기는 꾸준히 이루어져 왔고, 이에 따라 기획사 측의 지휘명령관계를 인정한 1994년 도쿄지방법원의 배우 사용종속성 인정 판결 등이 나오기도 했다. 1996년에는 노동성의 노동기준법 연구회가 <예능 관계자 노동자성 판단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기존 법원의 사용종속성 판단을 인정하면서, 업무 특성상 그 수행 방법이 일정정도 재량에 맡겨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휘명령 관계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재확인하기도 하였다. 당연히 배우들 사이에서는 다른 직종에 비해 오히려 시간적 구속은 더 강하며 기획사에 대한 경제적 종속성도 상당하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웃음과 눈물의 대가


한국이든 일본이든 노동자와 시민들의 일상은 ‘웃픈’ 현실들로 넘쳐나지만, 현실을 꼬집으며 함께 웃고 함께 슬퍼하기 위해 ‘노동’하는 공연예술인들이 자유롭게 활동하기 위한 대가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크다. 평가에는 가차 없으나 인정에는 인색한 한국 사회나,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큰 각오가 필요한 일본 사회나, 나의 웃음과 눈물이 다른 누군가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다는 인식의 부족은 물론, 공연예술인들의 기본적인 시민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의 부재라는 면에서는 꼭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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