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과 연구 사이_정보영 회원

by 센터 posted Sep 0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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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이 정보영 회원,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 인터뷰어 강인수 센터 상임활동가 

 

햇볕 짱짱한 평일 오전 신촌 거리는 한산했다. 젊은 층이 북적거리던 풍경만 생각했는데 낯설었다. 몇 달 전 한 번 가본 적 있는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이하 신문연) 사무실을 기억을 더듬어 찾았다. 네비게이션으로 길 찾는 건 여전히 익숙하지 않아 몸의 기억에 의존한다. 처음 간 날은 골목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는데 다행히 단박에 찾았다. 신문연은 젊은 연구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문화연구, 사회학, 미디어학,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며 사회적인 메시지를 만들려는 학술 공동체이다. 그곳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며 독립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는 정보영 센터 회원을 만났다.

 

20207, 첫 만남

보영 씨를 처음 만난 건 20207월이다. 격월간 비정규노동9, 10월호를 기획하기 위해 모인 기획편집위원회 회의 자리였다. 그 당시 보영 씨는 청년유니온 정책팀장이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청년유니온에서 반상근으로 활동도 겸하고 있었다. 온몸에서 긍정 에너지가 뿜뿜 튀어 나왔다. 연령대가 상대적으로 높은 기획 편집위원들 속에서 낯가림 없이(?) 적극적으로 의견도 내고, 내내 웃는 얼굴로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센터 기획편집위원으로 활동한 기간은 일 년 정도로 길지 않았지만, 보영 씨의 밝은 에너지가 오래도록 남았다.

 

그 이후에도 원고 요청 등으로 가끔 연락했지만 만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대학원 박사 과정 공부하랴, 연구 프로젝트 하느라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 정도만 들었다. 그러다 신문연에서 2년 만에 우연히 만났는데 어제 만난 것처럼 다정했다. 그 당시에도 신문연에 속해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청년유니온 활동가로만 인식해 크게 관심을 두지 못했다.

 

다양한 연구자들의 모임, 신촌문화정치 연구그룹

알음알음 알게 된, 공부하는 친구들이 모여 우리끼리 뭐라도 해보자고 해서 모인 게 신문연이에요. 대학원 공부하면서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게 심리적인 외로움이거든요. 대학원생들은 혼자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돌파구가 될 수 있는 관계가 잘 없어요. 또 인문사회 계열 대학원생은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아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런 문제도 같이 고민하고 해소해보자는 취지로 2019년에 만들었어요.”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하면 힘이 된다. 같이 공부하고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 응원도 한다. 서로 다른 연구를 하지만, 다른 영역에 관심을 두고 왜 그 연구를 하게 됐는지 궁금해하고 고민하다 보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으로 내 연구 주제도 바라보게도 된다.

너무 재밌어요. 비슷한 현상을 두고도 전공에 따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다른 이론의 근거로 해석하니까 확실히 시야가 넓어지는 게 있어요.”

공부가 재미있을 수 있구나, 새삼스럽다. 한때 나도 공부가 재미있을 때가 있었다. 그 흔한 자격증 하나 없는 내 삶에 뭐라도 하나 만들어보자 마음먹고 공부했을 때, 목적이 있어서였는지 혼자 하는 공부도 재미있었다. 그러니 사람들과 공유하며 내 안에 갇히지 않는 시선을 경험한다는 건 또 다른 재미일 것이다.

 

사회학을 만나다

보영 씨는 처음부터 사회학에 관심을 두진 않았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는데 재미가 없었다.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가지고 전달하는 것이 언론의 기능이라고 여겼고, 토론하며 수업할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학과 수업은 그보다는 기술적인 것을 가르쳐서 아쉬움이 컸다. 사람들이 미디어를 보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영상 촬영 실습이라 든지 글쓰기 수업 등을 하는데 자신과 안 맞는다고 느꼈다. 좋아하는 선배들이 사회학 수업 듣는 것을 보고 보영 씨도 그이들을 따라 복수 전공으로 사회학 수업을 들었다. 자신이 기대했던 대학 공부와 가까워진 것 같았다.

 

보영 씨는 먼 미래에 대한 계획을 잘 세우지 않는 편이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꼭 되고 싶은 것도 없었는데 우연히 사회학을 공부하게 되고, 자신과 잘 맞고, 재미를 느끼다 보니 사회운동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 진학은 그렇게, 어찌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맞는 길로 접어든 셈이었다. 세상이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에 초점을 맞춰 사회학 공부를 하다 보면 회의에 빠질 수도 있는데, 사회운동 연구는 세상이 어떤 계기로 바뀌고 좀 더 나아질 수 있게 하는지를 연구하는 공부라 더 재미있었다. 그런데 사회 운동 경험이 없다 보니 한계를 느끼게도 되었다. 그때 청년유니온을 만난 것은 보영 씨 인생에 소중한 경험이었다.

 

청년유니온, 청년과 노동 사이

보영 씨는 석사 과정 논문을 쓰면서 청년운동에 관심을 두게 됐다. 대학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운동 단체에서 활동하다 현장에서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있어 온 경우가 많았다. 반면 보영 씨는 활동 경험은 없고 단지 사회학 공부가 재미있어서 대학원에 갔다. 그래서일까. 석사 논문 주제를 정하지 못해 한동안 방황했다. 그때 교수님 지도로 이런저런 자료를 찾다 청년유니온 사례를 보고 신기했다고 한다. 수능 시험을 끝낸 후 3일 일하고 짤린편의점 아르바이트 경험도 떠올랐다. 청년유니온 운동이 마음에 와닿았고, 이곳을 현장으로 삼아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이후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청년유니온에서 같이 활동해보자는 제안이 왔고, 신문연 활동도 겸하고 있어 반상근으로 정책을 담당하게 됐다.

청년유니온에서 활동하다 보니 뜨문뜨문해도 주기적으로 오시는 분이 있으면 그렇게 고맙고 반갑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시작했는데, 나오라는 말 안 해도 제가 자꾸 찾아가니까 같이 일해보겠냐고 해서 선뜻 활동을 시작하게 됐죠.”

 

청년유니온은 드나듦이 많기도 해서 좌충우돌하며 활동을 이어가기도 했지만, 서로 터놓고 논의할 수 있었다. 청년이면서 노동운동을 하는 조직의 정체성 혼란은 없을까. 보영 씨는 둘 다 놓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단체 형태를 물어보는 이들도 많았다. 발끈해서 노동조합이죠라고 얘기할 정도로 노동조합의 정체성은 강하지만, 양대 노총 중심의 노동조합에서 청년유니온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청년의 정체성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노동운동계에서는 젊은 친구들이 반짝반짝 뭘 해보는 곳으로 인식한다면 청년운동 내에서는 제일 오래되고 규모도 큰 단체거든요. 같은 노동운동을 한다고 해서 원하는 바가 같은 건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 어떨 때는 양쪽으로 싸우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어요. 뜻이 다 같아서 연대하는 건 아니잖아요? 완전히 뜻이 같으면 같은 조직에 있겠죠.”

 

나도 프리랜서 노동자

보영 씨가 한창 활동했던 시기, 청년유니온은 최저임금에 주휴수당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그 생각이 유효한지 궁금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도 주 15시간 이상 일하면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청년유니온이 세상에 각인시켰다는 자부심도 강했다. 하지만 주휴수당을 안 주기 위한 꼼수도 많아졌다. 미꾸라지 같은 사용자도 있게 마련이다. 최저임금 담론을 한참 나누다 최근 이슈인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 문제까지 이어졌다. 정책을 담당했던 활동가로, 이젠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는 활동가로 진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각종 프로젝트에 결합하면서 활동하고 있는 보영 씨도 프리랜서 연구자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노동을 위해 프리랜서로 일하는 노동자도 많다. 하지만 출근지가 명확히 있고, 업무 지시가 정확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데도 계약만 프리랜서로 하는 경우도 많다. 일종의 위장 프리랜서다. 프리랜서 일자리에 진입한 사람들은 주로 인맥을 통하거나 플랫폼에서 일감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노동의 가치를 측정하기 어렵다. 자신을 보호할 장치도, 숙련을 쌓고 노동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길도 모호하다. 기존 제도에서 포괄하지 못한 노동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직종별 표준계약서, 표준임금 단가를 만드는 것이다. 다양한 노동 형태가 늘어나는 만큼 노동운동의 대응 방식도 다양한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왔던 일을 계속하는 건 어렵지 않다. 새로운 의제를 발굴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건 어렵고 막막하다. 하지만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운동은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보영 씨는 지금,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이 더 큰 시기라고 느낀다. 하지만 현장에 계속 발 담그고 있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 바람대로 그 균형점을 잘 찾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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