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작가가 살아야 웹툰이 산다_하신아 웹툰작가노동조합 사무국장

by 센터 posted Dec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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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문화 콘텐츠다. 하지만 우리는 웹툰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웹툰 창작 노동의 현실을 알아보기 위해 웹툰 스토리 작가이자 웹툰작가노조 사무국장으로 활동 중인 하신아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하신아.JPG

 

웹툰 창작은 노동이다

 

현재 한국 웹툰 시장은 주간 연재 웹툰의 경우 70컷을 표준으로 한다. 독자들의 수요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70컷이니까 하루에 10컷씩 그리면 되겠네.’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주간 연재 70컷이면 실제로는 스토리 콘티를 70컷 짜고, 데생을 70컷 하고, 데생 위에 펜 터치를 70컷 하고, 그 위에 채색을 70컷 하고, 채색 그림자를 또 70컷 넣고, 효과를 70컷 넣는 거예요. 그러면 실질적인 노동량은 일주일에 490컷을 그리는 거죠.”

이렇듯 노동량이 어마어마하다 보니 혼자서 일주일에 70컷을 소화해내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분업이 이루어진다. 글만 쓰는 작가가 있고 채색만 하는 작가가 있고 펜 터치만 하는 작가가 있다.

“제가 97년도에 데뷔했는데 그때 당시 만화를 만드는 공장의 막내였어요. 150페이지 정도 되는 만화가 매일 나와요. 만화책 한 권 한 권이 매일 나온다는 것은 한 사람이 그리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눈만 그리는 사람이 따로 있고 코만 그리는 사람이 따로 있을 정도로 분업화가 되어 있었어요. 이 체제가 조금 더 세련된 형태로 사실상 거의 재현되고 있죠.”

하신아 작가의 말을 듣고 있으니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가 생각난다. 만화공장에서 코만 그리는 사람의 모습과 컨베이어 벨트에서 나사를 조이는 찰리 채플린의 모습이 겹쳐진다. ‘창작 활동은 노동이다!’라는 생각이 뇌리에 박히는 순간이다.

 

분업이 이루어져도 웹툰 작가의 노동량은 여전히 가혹하다. 마감 날짜를 맞추어야 하니 휴일에도 쉬기가 어렵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실시한 ‘2020 웹툰 작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웹툰 작가의 하루 평균 창작 활동 시간은 10.5시간, 주중 평균 창작 활동 일수는 5.8일이다. 이 또한 평균에 비해 지나친 노동량이지만 이는 창작 노동의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은 수치다.

“웹툰 작가는 자는 시간 빼고는 다 일해요.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 계속 작업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잖아요. 깨어 있는 동안에는 단 한 시간도 일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시간이 없어요.”

작가가 마음대로 컷 수를 줄이거나 휴재를 하기도 어렵다. 웹툰 플랫폼과의 계약서에 컷 수가 명시되어 있어서 65컷 이상이 되지 않으면 연재가 불가능하다. 컷 수를 줄이거나 휴재를 하면 독자들이 그만큼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휴재를 자제하기도 한다. 그것이 과연 자발적인 것인지는 의문이겠으나.

“한 번이라도 마감을 같이 해보면 이건 중노동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창작 노동이라는 건 정말 지난한 준비와 성실한 노동 태도가 필요한 작업이고요. 그중에서도 웹툰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웹툰 작가는 노동 형태별로 속칭 내부 작가, 사업자를 낸 작가, 프리랜서 작가로 분류할 수 있다. 내부 작가는 스튜디오나 제작사 안에서 정규직 혹은 계약직 근로자로 일하는 형태다. 사업자를 낸 작가는 기안84처럼 사업자 등록을 하고 보조 작가를 고용해서 일하는 형태다. 프리랜서는 사업자 등록을 하지도 않고 스튜디오나 제작사에 고용되어 있지도 않은 작가들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노동 형태를 취하든 웹툰 작가는 모두 플랫폼에 종속된 노동자라는 것이다. 웹툰 작가는 “상황에 따라 살아남기 위해” 어떠한 한 형태를 취하는 것이지, 세 가지 노동 형태 중 어느 하나에 고정된 것이 아니다. 어떠한 형태로 일을 하고 있든, 모든 웹툰 작가는 노동자이고 플랫폼은 사용자다.

“내부 작가든 사업자를 낸 작가든 프리랜서든 우리는 노동자예요. 이 세 가지 형태는 그냥 법적 형태일 뿐이지, 본인이 CP(content provider) 스튜디오를 차려서 사업자로서 일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플랫폼 밑에 종속된 상황입니다.”

 

사회적 안전망, 그리고 노동에 대한 적절한 대가

 

웹툰 업계는 ‘뒤집힌 압정형’ 구조다. 압정의 얇은 촉은 극히 소수에 불과한 ‘스타 작가’를 의미한다. 바닥에 깔린 압정의 머릿밑에는 스타 작가를 꿈꾸며 웹툰 업계에 도전하는 수많은 작가들이 있다.

“모두가 방탄소년단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모두 방탄소년단을 꿈꾸면서 아이돌에 덤비죠. 그러면 ‘너는 나중에 방탄소년단이 될 사람이니까 지금은 참아!’가 되죠. 웹툰 업계의 상황이 이렇습니다. 0.1%의 성공한 작가를 바라보면서 궁지에 내몰리는 거예요.”

모든 노동자는 안전하게 일하면서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압정 머릿밑에 있는 웹툰 작가들도 노동자다.

“도전하는 압정 밑이라고 해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고용보험에서 소외되면서 살아야 하나요? 웹툰 작가들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사회적 안전망의 보호와 자기 노동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도전도 할 수 있어요.”

 

예술인 고용보험이 도입됐지만, 여전히 많은 프리랜서 웹툰 작가들이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채색 어시스턴트 같은 보조 작가를 고용하고 있으므로 고용주이고, 고용주니까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술인 산재보험은 예술인복지재단을 통해서 웹툰 작가 본인이 원하는 경우 가입할 수 있다. 하지만 하신아 작가는 웹툰 작가들이 노동으로 인해 생긴 질병을 산재로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산재보험 당연가입을 국가가 나서서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웹툰 작가 중에) 근골격계 질환 없는 사람이 없고요. 스트레스가 많아서 호르몬계 질환, 그리고 악플에 시달려서 정신과 질환도 많아요. 근데 이러한 질병에 대해서 작가들이 자기 탓을 해요. 내가 책상에 앉아 있어서 아프다고 생각하는 거죠. 책상에 앉아 있게 만드는 그 구조 자체에 대해서는 개인이 생각하기가 어려운 거죠. 아파 죽겠는데 그거까지 어떻게 생각해요? 악플도 내가 무시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악플이 몇만 개가 달리는데 어떻게 무시합니까.”

 

현재 웹툰 업계에는 ‘MG(미니멈 개런티) 제도’라는 수익 배분 시스템이 보편화되어 있다. MG란 작품의 판매 실적이 어떨지 모르니 플랫폼이 작가에게 판매 수익금을 미리 가불해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 대가로 플랫폼은 작가에게 가불한 금액의 200~300%를 요구한다. 예를 들어 5:5로 수익을 배분하는 MG 계약에서 작가가 이번 달에 100만 원을 MG로 미리 받았다면, 작가는 이번 달에 200만 원의 수익을 내서 플랫폼에 갚아야 한다. 따라서 연재를 하면 할수록 빚이 쌓이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별의별 MG가 다 있어요. 이번 달에 MG를 못 갚으면 못 갚은 금액을 다음 달로 이월해서 갚는 ‘누적 MG’는 당연하고요. 이렇게 누적된 MG는 연재가 끝난 다음에 2~3년 동안 이 작품을 계속 팔아서 작가가 진 빚을 갚아요. 그렇게 하고도 MG가 안 갚아지면 해외 판권, 굿즈 판권, 영화 판권 등의 판권료로 끝까지 채워야 해요. 이게 ‘통 MG’입니다. ‘브랜드 MG’는 CP 회사 내에 4명의 작가가 있으면 이 4명의 작가를 묶음으로 파는 거예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의 MG를 갚아주고 있는 거죠.”

 

이러한 MG 제도 아래에서 웹툰 작가들은 벼랑으로 몰린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MG 제도에 대한 그 어떠한 제재 조항도 없다. 하신아 작가는 미국처럼 최소한 누적 MG는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말한다.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하신아 작가는 웹툰 작가 노조 활동을 하는 이유를 묻는 말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후배 창작자들이 웹툰 업계가 이 모양 이 꼴이 될 때까지 선배들은 도대체 뭐했냐고 물었을 때 제가 할 말이 있었으면 좋겠거든요. ‘내가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고. 내가 진짜 열심히 노력했는데 이렇게 됐다.’ 이렇게 변명이라도 하고 싶은 거예요. 사실 제가 ‘알라바이’를 만들려고 노조를 하는 것 같기도 해요.(웃음)”

 

웹툰을 넘겨보는 우리의 손가락은 가볍고 경쾌하다. 하지만 웹툰 한 컷 한 컷에 숨겨진 노동 이야기는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웹툰 작가가 살아야 웹툰이 산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웹툰 작가들과 그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웹툰작가노동조합에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임경진 센터 청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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