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도 여행도 자유롭게_고명우 회원

by 센터 posted Aug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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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우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조직쟁의차장


고명우 회원은 센터 활동가들과 함께 ‘술책’이라는 독서 모임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모임이 열리기 위해서는 최소 인원이 참석해야 한다. 그런데 금요일로 모임 날을 옮기고 나서부터 한 번도 모이지 못했다. 금요일에 자주 출장을 가는 구성원이 두 명 있다. 출장이 아니어도 금요일에 여러 약속이 많음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다시 모임 날을 바꾸면 되지 않는가? 맞다, 그도 원하는 바이다. 그런데 모임 날을 바꾸기 위해서는 모임이 성사되어야 한다. 그는 대면 표결을 고집한다. 모임을 열기 위해서는 모임이 성사되어야 한다니, 참 모순적인 상황이다. 그가 묘수를 두길 바라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책으로 배운 학생운동


그는 실존주의적 고민을 가지고 철학과에 입학했다. 학교 공부보다는 개인 공부, 독서에 빠졌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세상은 왜 이런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철학, 종교학, 심리학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 책이 아닌 사람을 만났다. 그가 대학에 입학한 2005년은 학생운동이 거의 사그라든 때였다. 고학번 선배들을 중심으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선배들에게 이런저런 고민을 상담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이 너무나도 멋있어 보였다고 한다.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사회과학 공부를 시작했다. 군대에서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전역을 하고 보니 선배들은 고시니, 회계사니 하면서 제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그는 홀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대자보도 붙이고 유인물도 뿌리고. 직접 보고 배운 바가 없어 책에서 배운 운동을 흉내 냈다. 민간 기숙사, 학내 민간 마트, 학내 청소 노동자 최저임금 투쟁, 생활임금 등 다양한 이슈에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혼자 하는 운동은 쉽지 않았다. 학회, 독서회 등 여러 모임을 만들었지만 대부분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됐다. 어떻게 조직을 운영·관리해야 하는지 몰랐다. 학생들의 지지조차 받지 못하니 힘이 빠졌다. 


학생운동에서 노동단체까지


그는 우연찮게 외부 단체를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학내에서 함께할 동지를 만들었다. 운동에 탄력이 붙었다. 시간이 흘러 학생회장으로 당선됐다. 당시 이명박 정권 끝 무렵이어서 그런지 운동권 학생회가 부흥하는 시기였다. 그런데 때는 왔으나 실력이 부족했다. 사람도, 경험도, 역량도 없었다. 소수의 스타에 의존하는 학생운동이 전개됐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소진됐고 여러 갈등이 생겼다. 그 역시 졸업을 앞두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상태였다.  


졸업 후 그는 장애·빈민 운동을 시작했다. 애초에 큰 뜻을 품고 노동운동을 시작한 것도 아니었고, 활동하면서 상처도 많이 받은지라 노동운동을 계속할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새로 시작한 일은 오래가지 못했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알던 이들과 여전히 교류할 일이 많았다. 과거 해소하지 못했던 갈등이 다시 터져 나왔다. 게다가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했다.


그는 운동을 그만두고 지방으로 내려가 물류 회사에 입사했다. 2년이 흘렀다. 지친 몸과 마음을 치료했고, 돈도 어느 정도 모았다. 다시 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로 올라갔다. 운이 좋게도 서울노동권익센터(이하 권익센터)에 곧바로 취업했다. 노동 분야에서 활동한 경력이 도움이 된 듯했다. 그는 권익센터 기획협력팀에서 2년 3개월 정도 일했다. 역설적이게도 다른 시민단체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괜찮았던 급여, 복지 등이 그로 하여금 떠날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권익센터에서의 생활과 사고방식에 익숙해지면 향후 다른 단체에서 활동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조직 개편 시기에 맞춰 자연스럽게 퇴사했다. 


결국 다시 노동


그는 권익센터를 나간 뒤 해외 자원 활동에 지원했다. 미얀마의 오지로 가서 1년 동안 상주하며 태양광, 전기, 수도 등을 설치하는 활동이었다. 해외 빈민운동은 그가 꼭 해보고 싶던 일 중 하나였다. 그런데 미얀마로 출국하기 2주 전에 문제가 생겼다. 부모님의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진 것이었다. 그는 고민 끝에 미얀마 행을 포기했다. 편찮으신 부모님을 남겨두고 전화도 제대로 터지지 않는 곳으로 갈 수 없었다. 평생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부모님이 호전되려면 2년 정도 걸린다고 의사가 말했다. 당장 일할 곳이 필요했다. 문종찬 소장(당시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 추천으로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이하 비정규센터)에 들어갔다. 


그는 작년 3월부터 11월까지 비정규센터에서 활동했다. 계약직으로 전국 아파트 경비 노동자 공동사업단 실무를 맡았다. 현재는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공공운수노조) 조직쟁의실에서 일한다. 노조 쟁의 지원, 현장 조직 및 관리 등이 그의 담당 업무다. 노조에서 일하면서 과거보다 책임감이 더 커졌다고 한다. 노조는 당사자 단체다. 예전에는 연대로 현장에 갔다면 이제는 책임지는 입장에서 현장으로 가는 것이다. 


여행하며 깨달은 것


그의 삶을 반추했을 때 알 수 있듯이 그는 떠도는 것을 좋아한다.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여행을 좋아한다. 대학교 1학년 때 그는 좋아하던 선배를 따라 서울에서 해남까지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힘들었지만 여행을 마치고 나니 대한민국에 대한 이해가 바뀌었다고 한다. 그는 이사를 자주 다녔다. 20~30군데 정도 된다. 그의 머릿속에는 여러 점이 찍힌 대한민국 지도가 있었다.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 이 점들이 선으로 연결되었다. 도시와 도시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등에 대한 질문에 답이 생겼다. 그렇게 도시와 시골, 지리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고정관념이 조금씩 깨졌다. 


여행하면서 조금 더 자유롭게 살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조그만 땅에서 정해진 코스에 따라 살아가는 게 답답해 보였다. 여행하면서 자유로운 사람을 많이 만났다. 자전거로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는 도중에 한 독일인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휴학계를 낸 뒤 독일에서부터 태국까지 자전거를 타고 2년에 걸쳐 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7년 동안 자전거 여행을 하는 50대 부부를 만나기도 했다. 그들은 아마 죽을 때까지 여행을 할 것 같았다. 그는 무엇인가에 얽매여 살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자유, 조금씩 비우는 삶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공공운수노조에서 일하다 보면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거워진 만큼 자유롭기 힘든 건 아닐까? 그는 농담 섞인 목소리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어쩌면 나이를 먹으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변한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그의 신념을 듣다 보니 그가 여전히 자유로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학생운동을 할 때 SNS에 많은 글을 썼다고 한다. 그때마다 반응이 곧바로 왔다. 그러다 보니 거만해졌다. 내가 잘해서 인정받는다고 자만했다. 하지만 한참 시간이 지나 그때를 돌아보니 스스로가 글보다 작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글처럼 살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는 스스로의 글에 한계를 지었다. 허풍 떨지 않는다. 그런데 그러면서 오히려 더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글을 쓸 자유보다 글로 인해 얽매이는 삶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는 마음을 비워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과 맞닿아 있었다. 자유를 향한 고집을 놓고 생각을 비운 현재, 그는 오히려 더 자유로워진 것이 아닐까? 궁금증과 일종의 바람을 안은 채 인터뷰를 마쳤다.                                                                        


배병길 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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