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방학 일기

by 센터 posted Feb 2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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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명 시골에서 이것저것 하는 사람

 

 

2021년 12월 31일.

군청에서의 기간제 노동이 끝나는 날이다. 대개의 사람과 달리, 나는 작년 3월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날부터 하루빨리 시간이 지나서 계약 기간이 종료되기만을 기다려왔다. 계약이 끝나면 난 자유의 몸이 되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에 몰입하고 싶었다. 오늘이 오기 전부터 조금씩 짐을 빼 왔기 때문에 마지막 날에는 챙길 게 별로 없었다. 점심을 먹은 후 일찍 들어가라는 담당자 얘기를 듣고 사무실을 돌아다니면서 공무원들과 인사를 하고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아내와 함께 자축의 식사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잠자리에선 올해 일 년 동안 있었던 얘기, 직불금, 내년에 할 일을 얘기하며 잠을 청했다. 그러나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내일이 가슴 설레는 2022년 1월 1일 새해라는 사실보다도 실상 내일부터 시작되는 꿀 같은 방학에 오두막을 짓기로 마음먹다 보니 설레도 하고 긴장도 되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1월 5일과 6일은 그동안 무심하게 잊고 지내던 조광복 형의 집 짓는 현장을 갔다. 자주 찾아서 작은 일손이나마 도와야지 하는 맘이었건만, 집 짓기 시작한 지 8개월이 지나서야 처음 찾았다(술을 마시러 여름날 놀러 온 적은 있었다). 이틀 동안 열심히 도우면 눈에 보이는 만큼의 작업이 이루어지리라는 기대감과 그동안 찾아가지 못한 미안함을 싸안고 10시 반쯤 도착했다. 그런데 광복이 형은 천하태평이다. 오늘과 내일은 오리엔테이션 기분으로 그냥 둘러보면서 할 일에 대한 구상을 해보자고 했다. 또 10시 반은 아직 해 들기 전이라 일하는 건 무리라면서 아점을 먹자고 했다. 나도 그동안 피부 질환으로 고생하면서 세 끼를 먹던 것에서 하루 두 끼로 바꾼 터라 잘 맞았다. 구수한 된장찌개에 잡곡밥, 직접 담은 김치와 막걸리가 맛났다.

 

순식간에 서너 병을 비우고 나서 어슬렁어슬렁 집 짓는 현장으로 갔다. 집은 어느새 벽체도 다 세웠고, 지붕도 근사하게 슁글로 덮었다. 창문도 달려있고 전기도 배선이 되어 있어서 비가 와도 작업을 멈추거나 쉴 만한 일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전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로 벽체에 단열할 때 사용하는 인슐레이션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작업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이것저것 정리를 하거나 마감 작업을 한다고 했다. 우선 시멘트 사이딩이 되어 있는 외벽 틈을 실리콘으로 메우는 작업을 했다. 그런데 광복이 형이 날도 춥고 일도 그리 급한 게 없으니 오늘은 쉬자고 해서 마당에 앉아 막걸리를 나눴다. 한두 병 마시면서 그동안 집 짓던 얘기며, 멧골의 핫한 소식도 나누었다. 자연인이 60세에 아이가 생긴 얘기, 자유가 미국 여성과 연애하는 얘기···. 그러다가 뒷산에 산책을 가자고 해서 막걸리를 싸 들고 나섰다. 마치 이 집에 놀러 오면 누구나 둘러보는 순례코스 같은 뒷산 산책길을 올랐다. 마을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산 중턱에 임도가 놓여있어 힘들이지 않고 호젓하게 뒷산을 둘러 볼 수 있었다. 천천히 걷다가 백운산이 잘 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앉아 막걸리를 마셨다.

 

산에서 내려오니 해가 저물었고 저녁으로 술을 마시다 정신없이 쓰러져 잤다. 다음날은 나나 광복이 형 모두 늦게 일어났고, 점심때가 지나 아점을 먹고 1박 2일의 오리엔테이션을 마쳤다. 난 1월 10일에 다시 찾기로 하고 장수로 왔다.

 

1월 7일은 내가 벼르고 벼르던 오두막집을 짓기 위한 첫걸음을 떼는 날이다. 재작년의 엄청난 폭우는 멧골에도 산사태를 냈고, 산사태는 밭 뒤의 나무들을 휩쓸었다. 그중에 20~30년쯤 자란 낙엽송 십여 그루가 죽었다. 그런데 전화위복이라고···. 죽은 나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터에 오두막집을 짓기로 결심하니 아주 요긴한 재목이 되었다. 굵은 나무는 기둥으로 쓰고좀 가는 부분은 도리나 서까래로 쓰면 좋을 것 같았다. 오두막집에 대한 그림도 그리고, 바닥이나 지붕도 구상하고 여러 가지 작업순서도 생각했지만, 정작 낙엽송을 어떻게 베어야 할지가 가장 걱정이었다. 고민 끝에 엔진톱이 있는이웃 형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 형은 자기가 ‘벌목 전문가’라고 하면서 흔쾌히 응낙해서 함께 나무를 자르러 갔다. 나는 명색이 산림기사지만, 엔진톱을 사용해본 적이 없었기에 주변 나뭇가지를 정리하면서 시다 일을 했다.

 

총 여덟 그루를 베기로 하고 여섯 그루를 잘랐을 때였다. 다섯 그루를 자르면서 나무가 넘어지는 틈새에 톱날이 끼기도 하면서 뭔가 조짐이 이상했다. 그것을 보면서 이웃집 형에 대한 전문가다운 느낌이 의심으로 바뀌고 있었는데 마침내 일곱 번째 나무를 자르면서 사달이 났다. 나무가 기울어진 방향이 내가 지난여름 관수 시설을 설치한 물탱크 방향이었기에 넘어뜨리는 방향을 틀어서 넘겨야 했다. 그런데 벌목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수구를 잘못 내면서 나무가 물통으로 넘어져 버렸다. 나는 수구 방향에 의문이 생겨서 “수구를 왜 이 방향으로 자르냐”라고 물었지만, 그 형은 걱정하지 마라면서 수구의 방향을 물통 쪽으로 냈다. 결국 지지직~ 하면서 나무가 넘어졌고, 통나무는 그대로 물통을 박살 냈다. 잠깐 이게 현실이 아니길 바랐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고, 물통의 물은 줄줄 넘쳐흘렀고, 나와 이웃 형은 서로 아무 말도 안 했다. 난 서운했지만 표현하기 어려웠고 그 형은 미안함에 아무 말도 못 했다.

 

대충 일을 정리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살면서 이런 게 참 애매한 경우였다. 도와준다고 돕다가 일을 그르칠 때. 참 난감하지만 어쩔 것인가). 그날은 거기서 정리를 마쳤고, 다음날 난 혼자 가서 손톱으로 나무를 3~4미터 길이로 자르고 가지를 모두 정리했다. 그래도 이제 본격적으로 껍질을 벗기고 치목하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표.jpg

1월 10일은 함양 광복이 형네 집 짓는 현장으로 다시 갔다. 여전히 자재가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고, 또 해가 들지 않았다는 핑계로 우린 아침을 들면서 점심때까지 막걸리를 마셨다. 오후에는 간단히 할 일을 찾았다. 지붕 아래 처마 끝에 공기가 바람을 타고 들어가서 천장의 공기와 순환되도록 하는 벤트 작업을 했다. 천장 공기는 외부와 순환이 되면서 모기나 벌레는 출입을 막는 작업인데 벽이나 창의 방충망과 같은 역할이다. 이것도 조금 하다 보니 자재가 부족해져서 일을 더 하지 못하고 멈췄다. 광복이 형이 “읍내 가서 자재를 사면서 순대국밥을 먹자.”라고 하기에 둘이 읍내를 나갔다. 자재를 사고 나서 늘 다닌다는 국밥집에 가서 저녁으로 순대국밥에 막걸리 한잔을 마셨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국밥집에서 운전 때문에 술을 마시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며 집에 남은 술들을 다 비웠다. 긴가민가한 밤이 지나고 아침에 눈을 뜨니 간밤에 눈이 내렸다. 날도 춥고 급한 것도 없고, 천생 일하기는 틀렸다고 했다. 그래서 아침을 들며 또 한잔하고···. 결국 3일을 찾아왔지만, 눈에 띌 만큼의 작업은 하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에 인슐레이션 들어오면 주말에 와서 꼭 도와주겠다고 하고 장수로 왔다.

 

1월 14일부터 본격적으로 오두막 짓기에 돌입했다. 아침 9시에 도시락을 싸 들고 멧골로 가서 음악을 틀어놓고 양손 낫질을 하면서 나무껍질을 벗겼다. 하루에 서너 토막을 벗겼는데 일주일쯤 걸렸다. 첫날 일하고 나니 어깨가 뻐근해서 다음날 쉬고 그렇게 며칠 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그리고 기둥 놓을 자리에 주춧돌을 놓았다. 네 귀퉁이에 말뚝을 박고 작업실로 사각형을 짠 다음 주춧돌 놓을 위치를 대충 다지고 거기에 시멘트를 비벼놓았다. 나름대로 뿌듯하게 생각하고 작업 상황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전문가들의 조언이 잇따랐다. 겨울이라 땅 녹으면 꺼질 거라는 얘기도 있고 좀 더 단단하게 다지고 큰 돌을 놓아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주춧돌이 너무 작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 덜컥 겁이 났다. 정말로 봄에 땅이 녹으면 기울어질 것 같았다. 지난번 애써 비벼놓았던 시멘트를 두드려 깨고 개울에 가서 겨우 굴릴 정도의 큰 돌을 주워 와서 다시 주춧돌 작업을 했다. 이제 기둥 나무 끝부분을 열십자로 파내고 거기에 결합하는 대들보나 도리 작업을 해야 할 차례다. 나무가 좀 마르고 주춧돌도 자리를 잡을 수 있게 설을 쇠고 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올해는 지난해보다 빨리 산림과에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다. 아니 왜 이렇게 방학이 짧아진 거야? 두 달은 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럼 평일에는 출근해야 하니 이젠 주말에만 시간이 난다. 벌써 2월도 중순이 다가온다. 갑자기 일에 대한 조바심이 난다. 그래도 올 6월엔 근사한 오두막에 앉아서 동지들과 수박 한 통 쪼개 먹으면서 담소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또 나를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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