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 시인
우리는 철탑의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날개 없이도 하늘을 밟고 살아요
등을 돌리면 아무나 와서 내 등을 밀어버릴 것 같습니다
엉겁결에 그어진 하늘선을 밟고 죽을 것 같습니다
퇴근길 창문에서 서녘의 새떼를 자주 봅니다
작은 머리통들이 느닷없이 날아가 나란히 사라지는 걸
왜 자꾸 보게 되는 걸까요?
지평선에서 새들이 멀어지면 깃털이 빠진다고 해요
아주 사라지지 못하는 거죠
내 몸으로 새가 들어온 날
영하의 날씨에도 창문을 반쯤 열어둡니다
하늘 한쪽 해고당한 새들만 모여 사는 곳이 있다지요?
고공농성 간호사가 복직을 약속 받고 털모자를 쓴 친구를 끌어안고 웁니다
기쁨은 아닙니다
몸 안의 새를 내보내는 일은 기쁨의 영역이 아니죠
송전탑과
크레인에서 사는 사람들
몸 안에 들어온 새를 내보내려고 애를 씁니다
중력을 얻으려고 환약을 삼킵니다
경험 많고 침묵이 깊은 새들입니다
갓 날개 달은 새들에게 자리를 내어준 날
별자리는 어둠에게 눈멀지 말라고 촛불 하나씩 쥐어 줬다지요
우리 언제쯤 상공에 맺히는 아침이 다시 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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