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보았던 그곳으로, 위기가 시작하는 곳으로 가네

by 센터 posted Jan 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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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보았던 그곳으로, 위기가 시작하는 곳으로 가네

 

김건수 노동당 당원

 

할아버지가 영정사진을 찍으셨다. 지난 추석 즈음 글자를 읽지 못하셔서 병원에 갔더니 뇌졸중 진단을 받으셨다. 할아버지 나이가 벌써 아흔이 넘었으니 가족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영정사진을 찍은 할아버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그 눈을 보니 마음이 아파 그만 하루를 앓았다. 다친 마음은 낫질 않고, 매서운 추위에 가슴을 할퀴어진 듯 아프다. 추운 날씨에 할아버지가 괜찮을지 걱정되는 마음에 그렇다. 나는 서울, 할아버지는 당신과 나의 고향인 전라남도 순천에 있다.

 

그것이 사랑이건, 사람이건 이별이 처음이 아닌데도 마치 모든 것이 처음처럼 힘들다. 한 사람은 곧 우주라던데, 이렇게 마음이 아픈 것을 보면 정말 한사람이 곧 우주인가 싶다. 우주처럼 아프고, 심연에 빠지는 듯 두렵다. 내년 설에 꼭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싶다.

투쟁도 마찬가지다. 투쟁의 현장은 아픔의 현장이다. 아니 이별의 현장이 다. 일터와 이별하게 된 노동자들, 산재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와 이별한 유족과 동료들, 살던 집과 상가에서 쫓겨나 집과 이별한 철거민들···. 물론 투쟁과 ‘보통의 이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보통의 이별’에서 극복이란 이별을 인정하는 것이고, 투쟁의 이별에서 극복이란 잃은 것을 되찾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투쟁의 현장에서 줄곧 희망을 말한다. 잃은 것을 다시 찾는 것, 그것이 투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쟁의 현장으로 우리를 이끌게 하는 것은 가슴 아픈 그들의 처지와 현실 아니겠는가. 사회가 만들어낸 참사와 비극, 부조리에 희생된 이들의 호소와 절규가 우리로 하여금 투쟁의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한다.

 

사랑하는 것들과 이별하게 만드는 사회다. 그런 시대인 것 같기도 하다. 923 기후정의행진날 ‘923기후정의합창단’이 연단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그 첫 소절이 “위기가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였다. 전지구적인 생태계 파괴, 숲과 나무가 밀리고 잘리며 쫓겨나는 생명과 사람들, 그 결과 몰아치는 재난에 갈 곳을 잃은 ‘기후난민’과 희생자들, 이들 곁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기후위기가 만들어낸 수많은 이별, 죽음이라고 표현해야 더 적합할 생태계를 향한 학살과 파괴적인 재앙 앞에서 우리는 감히 잃은 것을 되찾으리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는 것이 현실 아닐까. 그럴 때 “위기가 불어오는 곳”으로 가겠다는 노래 가사는 어떤 마음에서 나온 것일지. 오늘의 위기의 시대라고 직시하며 회피하지 않겠다는 의지, 위기의 시대가 만들어낸 생명의 황무지에 희망의 나무를 심겠다는 다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한번 잃으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도 있다. 애초부터 기다리지 못할 이별도 있을 테다. 하지만 우리는 눈물 흘리며 쓰러질 때도 있지만, 춤을 추며 노래하기도 한다. ‘923기후정의합창단’의 노랫말에는 이런 말도 있다. “더딘 발걸음에 실망해도, 뒤돌아 갈 수는 없지. 전환을 시작하는 곳 그곳으로 가네”

겨울, 거리에서 투쟁하는 이들에게 가혹한 계절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잃는 것을 되찾기 위한 여정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해가자.

 

*923기후정의합창단은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개사해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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