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김으로 부르진 말자 하고도

by 센터 posted Nov 2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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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김으로 부르진 말자 하고도

 

김승길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활동가

 

나는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라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의 운동(노동운동이든 민주화운동이든)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청년운동을 했던 이들이 모여 2017년에 발족한 역사가 길지 않은 단체이다. 지난 9월 부산 회원들이 인천에 놀러 와서 인천 회원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술을 참 많이도 마셨다. 활동에 대해 얘기하고, 지역에 대해 얘기하고, 그러다 아무런 맥락도 없이 갑자기 술잔을 부딪치며 ~’ 대신 투쟁을 외치고는 그 노래를 불렀다. 나는 가사를 잘 몰라서 유튜브로 가사가 나오는 영상을 틀고 주먹을 휘두르며 불러댔다. 마치 그 노래를 많이 불렀던 과거가 있는 것처럼 행세했던 부끄러움은 술이 깬 내일 나의 몫이었다.

 

그 노래를 처음 불러보았던 건 6년 전 대학생 때였다. 나는 대학에서 토론 동아리와 노동인권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고 운동이라기보다 동아리 활동 성격이 강했다. 겨울이었을까. 학내 토론 동아리 뒤풀이가 끝나고 술집 앞 길거리에서 그 노래를 부른 게 처음이었는데, 옛날 운동권에 있었던 선배들이 부르는 노래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동아리원 중 아버지가 노동조합에 있었던한 후배가 아무런 맥락도 없이(아마도) 갑자기 부르기 시작하자 그 노래를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몇몇이 둥그렇게 모여 한 손으로는 어깨동무를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주먹을 휘두르며 불러댔다. 나에게는 꽤 강한 인상이었는데 학내 운동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내게 책이나 이야기로만 듣던 운동권의 문화를 실제로 끄집어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디 가서 내가 학생운동을 했다고 하진 않지만, 당시의 경험은 내가 학생운동 끄트머리에 있었던 것처럼 얘기하기 좋았다.

 

그 이후로 술자리에서 투쟁을 외치거나 그 노래를 부르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어쩌다 간혹 부를 때면 양심은 조금 남아서 이게 맞나 싶었다. ‘그 노래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시대적 배경 속에서 불리게 되었는지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본 적도 없는 운동권 선배들이 불렀을 노래를 운동 경험이란 걸 갖지 못한 내가 감히 부를 수 있는 노래인가. 대학 때 짧은 노동인권 활동도 지금의 청년활동도 활동으로 있는 것이지 학생운동 또는 시민운동이라고 말하기에는 민망한 구석이 많다. 나는 활동가라고 스스럼없이 소개하는데 시민운동가라고 할 수 있나? 조금 양보해서 형태는 다를지라도 현장성을 충분히 갖고 있는가? 나의 활동을 운동이 아니라고 하는 이들도 각자 나름의 전선에서 투쟁을 하고 있다곤 생각하지만 나는 과연 어떤 전선에 있는가? 나는 당당히 그 노래를 부를 수 없다.

 

갈망하는 사회에 대한 염원으로 그 노래를 불렀을, 2000년대 초중반까지의 운동권 선배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왜 나는 그런 선배가 없었는지 어딘가에 묻고 싶고 나는 후배도 아닌데 왜 선배라 부르며 그들을 찾는지 나에게 묻는다. 술자리에서 투쟁을 외치고 그 노래를 부르는 건 어쩌면 지금 나에게 연결되지 않는 시민사회 선배들에 대한 원망이자 갈망일 수 있다. 더 솔직하게는 그들과 연결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나는 선배들의 노래를 알고 있고, 어딘가 남아있는 학생운동 문화를 조금이나마 접했다는 이상한 자부심까지 들어있다. 그런데 뭐 사실 투쟁이나 그 노래와 같은 언어가 꼭 어떤 행동들의 언어여야만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스스로 활동을 운동이라고 규정짓지 않더라도 모두가 자기 나름의 전선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투쟁을 외치거나 그 노래를 불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정신으로 갖고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맨정신일 때 하지도 못하는 것을 왜 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그 언어들을 가져오나. 그러면 안 되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한다. 나 스스로가 현장에 있다는 확신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적어도 본인에 대해 이러한 확신이 있어야 덜 부끄럽고, 좀 더 당당히 부를 수 있을 거다.

위와 같은 확신이 있기 전까지는 부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럼에도 술김을 빌려 부르고 싶다. 이 글을 쓰면서 많이 들었고 이제는 가사도 외웠다. 더 나은 사회를 바라는 동료들과 손을 맞잡고 부르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 마음이 원망인지 갈망인지 또는 염원인지 소망인지 아직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주 상상하게 될 것 같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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