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이력

by 센터 posted Jun 3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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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래 이력

 

칸츄로 테이크미 홈 투더 플레이스. 아비롱 웨스트버지니아 마운티 모모 테이크미 홈 칸츄로

순간 애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거 뭐야. 대체 뭔 소리야’. 속으로 뿌듯함을 느끼며 뜻도 모를 노래를 무사히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사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웨스트 버지니아가 미국 어디쯤에 붙어 있는지 모른다. 또다시 쏠리는 눈길들, ! 저 새끼 잘난 척하기는··· 돌아보니 자그마치 41년 전, 중학교 1학년 소풍 추억의 한 장면이다.

영문학을 공부한 형님 덕에 영어를 일찍 접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형이 가르쳐준 미국 컨트리 송 가수 존 덴버John Denver 노래 Take Me Home, Country Roads(고향으로 나를 데려다줘), 나의 노래 이력은 여기서 시작된다.

 

중고등학생 때 음악 수업을 좋아했다. 물론 선생님이 젊고 예쁜, 거기다 나를 잘 봐주시기까지 하던 분이라 더 그랬지만. 날이면 날마다 국영수(국어·영어·수학)만 되풀이되던 시절 음악 시간은 일종의 자유, 휴식이었다. 왠지 노래를 부르고 나면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그 시절 어떤 노래를 즐겼는지 사실 기억이 안 난다.

 

나는 88학번이다. 1987년 민주항쟁 영향으로 1~2학년 시절 교정에는 학생운동의 여운이 짙게 배었다. 한 달 한두 번 최루탄 가루를 뒤집어써 눈물 콧물 흘려야 했고, 아주 가끔이었지만 시위대 맨 뒤에서(겁도 많고 용기도 없어 앞에 나서는 건 상상도 못 했다) 구호를 외쳤던 기억도 새롭다. 정치나 사회 문제에 관심은 적지 않다 생각했지만,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학생운동 투쟁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심한 성격 탓에 친구도 못 사귀고 동아리 활동도 잠시 하다 그만두었을 때 당시 유행하던 대중가요가 가까운 친구가 되어주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했다.

 

20~30대에는 그룹 동물원, 박정운 노래를 좋아했다. 그때는 주로 카세트테이프로 음반을 발표했는데, 동물원 음반은 거의 다 샀다. 이제는 가사도 가물거리지만 내가 기억하는 동물원의 대표곡은 거리에서, 혜화동,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 아침이면, 우리가 세상에 길들기 시작한 후부터. 마음속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가사들, 과하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리듬이 내 취향에 맞았다. 몇 년 전 오래된 짐 정리를 하면서 그 시절 모았던 테이프를 몽땅 다 버렸다. 내 청춘이 이렇게 넘어가는구나 하는 슬픈 생각에 잠시 우울했다. 박정운 하면 오늘 같은 밤이면먼 훗날에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두 곡 모두 오랜 세월 나의 노래방 18’, 요즘 말로 최애곡이었다. 있는 대로 목청껏 두 노래를 연이어 부르고 나면 왠지 즐기지 않는 술도 술술 넘어가고, 쌓인 스트레스도 시원하게 풀렸다. 내 노래방 18번 목록에는 나미의 슬픈 인연, 나훈아의 홍시도 있다. 십여 년 전 고향 친구가 부른 홍시를 듣고 난 후 노래방에 가면 항상 이 노래를 찾는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정말 정말 많이 울었다.

40대에 들어선 2012년이다. 우연히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글씨기 강좌를 듣고, 마음 맞는 분들과 후속 글쓰기 모임 쉼표하나를 함께했다. 마침 회원 중에 동갑내기가 있어 친구 먹자 했고 그를 통해 이른바 민중가요를 접했다. 그 중 바위처럼, 전화카드 한 장, 청계천 8세 노래가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다. 사실 그전에 민중가요 하면 안치환의 노래 정도만 알던 터였다. “칠흙 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청계천 8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한동안 먹먹했다.

 

앞서 소개한 대로 영어 노래를 일찍 접한 사연도 있지만, 50대에 들어선 언젠가부터 팝송 듣기를 즐긴다. 영어 공부의 한 방편이라는 나름의 이유도 있다. 1970~80년대 유행한 올드 팝도, 비교적 요즘 노래도 좋다. 그렇게 좋아하게 된 노래는 Jason MrazI’m Yours, Whitney HoustonOne Moment In Time, Ed SheeranPerfect, Ed SheeranSuper-market Flowers, James BluntMonsters. 재작년 회사 업무로 심신이 지쳤을 때 처음 만난 I’m yours는 수백 번도 넘게 들었다. 가사가 어렵고 많아 따라 부르기 어렵지만 제이슨 므라즈의 많은 노래는 큰 위안이 되었다.

 

또 한 곡 가장 최근 내 마음에 들어온 노래가 영국 가수 제임스 블런트의 Monsters. 유튜브를 보다 알게 된 노래를 처음 듣고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I’m not your son You are not my father. We’re just two grown man saying goodbye”, “I know your mistakes and you know mine” 무슨 의미일까? 난 당신 아들이 아니고 당신도 내 아버지가 아니다. 한동안 여러 생각에 잠겼다가 한참 지나 머리가 끄덕여졌다. 나만의 해석이겠지만 어렴풋이나마 어떤 의미인지를 알 것 같았다. 그새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졌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을 대신 표현하고, 어둡던 내 감정을 밝게 만들어주는 건 뭘까? 그럴 때면 먼저 소개한 노래들이 떠오른다. 고향 부모님이 보고 싶으면 홍시Monsters를 읊조린다. 먹고사는 문제나 골치 아픈 세상사에 지칠 땐 바위처럼One moment in time을 들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가끔 찾아오는 우울함을 떨치려면 제이슨 므라즈를 찾는다. I’m yours>와 그의 다른 노래들이 마음을 다시 환하게 보듬어준다. 20대 내 청춘의 감성을 다시 돌아보려면 동물원의 노래들이 있다.생각해보니 동물원노래를 들은 지 정말 오래다. 예전 사무실이 있던 서울 시청역에 가면 항상 속으로 노래하던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 그리고 친구들이 보고 싶을 때 듣던 혜화동. 아마 오늘 저녁 이 노래들로 그 시절 나만의 기억들을 떠올려볼 것 같다.

 

이응덕 센터 글쓰기 모임 ‘쉼표하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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