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개혁이란 가짜뉴스로 ‘민영화’ 음모 숨기는 보수신문
철도개혁이란 가짜뉴스로 ‘민영화’ 음모 숨기는 보수신문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
철도노조가 지난 9월 14일 총파업에 들어가자 보수신문은 ‘시민 불편’만을 강조했고, 더 나아가 “‘민영화’ 가짜뉴스로 국민 발목 잡은 노조 파업은 명분 없다”라며 정부의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철도 파업) 현장 점검에서 “철도노조는 실체조차 없는 민영화라는 허상에 반대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다”며 “검토한 적도 없는 민영화에 대해 정부가 무엇이라고 답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철도노조는 17일 〈논평〉을 통해 “철도노조의 파업을 불러온 부분과는 다른 점이 있다”라며 “이번 파업의 원인은 국토부가 지난 1일 단행한 수서~부산 노선 감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철도노조는 이번 파업의 원인은 ‘시민 편익 확대를 위한 수서행 KTX 운행’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와 보수신문은 겉으로는 ‘철도민영화’를 거론하지 않지만, 이번 국토부의 ‘STR 노선 확대’가 ‘철도민영화’라는 큰 그림을 위한 하나의 조각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보수신문은 겉으로는 ‘경쟁체제’라고 하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철도개혁은 ‘민영화’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9월 1일부터 수서발 SRT의 진주·여수·포항 구간을 왕복 2회 운영한다고 밝혔다. 대신 주중 경부선 SRT 운행을 왕복 40회에서 35회로 축소했다. 국토부의 노선 감축으로 하루 최대 4,920개의 좌석이 줄었다.
이것이 철도노조가 이번 파업의 가장 큰 요구로 시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 수서행 KTX 운행’을 내건 배경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최근 철도를 둘러싼 몇 가지 흐름을 살펴보면 2013년 SR이 출범한 이후 10년 동안 진행된 ‘철도 경쟁 체제’의 본질이 무엇인지가 명확해진다. 철도는 건설과 운영, 관제와 운행, 그리고 유지보수 업무 등이 연결된 거대한 하나의 시스템으로 유지된다. 김대중 정부에서 ‘매각을 통한 철도 민영화’가 실패한 이후 민영화는 이 시스템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2003년 제정된 철도산업발전기본법(철도산업법)에 의해 철도시설 건설및 관리는 국가가 담당하고(국가철도공단), 철도의 운영(일반철도, 광역철도 및 고속철도)은 국가 이외의 자가 담당하게 하였다. 철도산업법 21조 1항은 이 법의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철도산업법에 따르면 “철도 산업의 구조개혁은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국가 외의 자가 영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2013년 6월 국토교통부는 '철도산업 발전 방안'을 발표하며 철도산업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2013년에 주식회사 SR이 설립되자 철도노조는 ‘수서발 KTX를 철도공사에서 분리하는 것은 민영화’라고 주장하며 23일간 파업을 벌였다. 철도노조가 파업을 통해 민영화 문제를 공론화하자 SR은 코레일의 자회사로 출범했으며 현재의 지위는 준시장형 공기업이다. 출범할 당시 SR의 지분은 코레일이 41%, 사학연금공단이 31.5%, 산업은행이 15.9%, 기업은행이 12.5%였다. SR은 올해 7월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신주를 발행했고, 출범 당시 풋옵션(팔 수 있는 권리)이 설정된 코레일을 제외한 외부 지분(58.95%)을 정부가 인수했다. 인수 자금은 3,590억 원이었다.
이에 대해 철도노조 최명호 위원장은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에서 “59%의 SR 지분은 한국철도공사에 매각하기로 돼 있다”면서 한국철도공사가 SR의 지분을 100% 가질 경우 한국철도공사와 SR의 통합을 우려해 정부가 국유재산법 시행령 개정이란 편법을 통해 SR에 특혜를 줬다고 주장했다. 국토교통부는 ‘민영화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언제라도 정부 지분 매각을 통해 SR 을 민영화할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SR의 미래가 최근 YTN 사영화와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이번 국토교통부의 ‘SRT 확대’가 철도의 운영과 관제·시설유지·보수 업무를 분리해 ‘쪼개기 민영화’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국민일보는 지난 9월 15일 “정부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철도 시설유지·보수 기능을 코레일에서 떼어내 조직 규모를 축소하는 게 핵심이다”고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총파업에 돌입한 철도노조에 대한 강경 대응 차원으로 풀이된다”고 ‘개혁’의 배경을 분석했다.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올해초 ‘철도안전체계 심층진단 및 개선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했는데, 코레일이 맡은 철도 관제와 시설 유지·보수 업무를 심층 진단해 근본적인 안전체계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추진됐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해 “현재 철도 산업 개편 방안의 검토 과제는 코레일에 위탁된 철도 유지·보수, 관제 업무를 국가기관인 철도공단으로 옮길 수 있는지가 핵심”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올해 4월 민간기업인 현대로템이 SR이 신규 도입하는 고속철도차량(EMU-320)의 도입과 함께 정비 사업을 수주(1조 860억 원)한 사실로 미뤄볼 때 ‘쪼개기를 통한 외주화(민영화)’의 길이 열렸다고 평가하는 것이 맞다. 현대로템은 2016년에 철도차량 유지·보수 업무를 위해 뉴질랜드에 HR Mechanical Service Limited를 설립함으로써, 철도차량 생산뿐 아니라 유지보수 사업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현대로템은 2021년 사업보고서에서 철도 차량 제작 공급뿐 아니라 “E&M 분야의 신호, 통신, 전력, PSD 등 철도시스템분야를 비롯해 운영 및 차량 유지보수, 개조, 부품공급 등 철도서비스 분야로 사업영역을 더욱 확대해 나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철도노조는 17일 논평을 통해 “기존에 철도공사에 위탁했던 SRT 차량 정비 일부와 SR 고객센터 업무를 민간에 넘긴 것에 대해서는 해명이 필요하다”고 요구한 바 있다.
철도의 운영과 관제, 시설유지·보수업무 분리를 통한 ‘쪼개기 민영화’는 더불어민주당 조웅천 의원이 발의한 철도산업발전기본법 개정안에서도 확인 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위원회에 상정된 조응천 의원의 개정안은 ‘시설유지·보수업무를 철도공사에 위탁한다’는 제38조 단서조항을 삭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최명호 철도노조 위원장은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에서 “운영과 유지·보수업무가 분리되면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기 때문에 열차 운영과 유지·보수 업무는 일원화해야 한다고 정부와 노사 간 합의에 의해 만든 조항”이라며 “이걸 삭제하면 유지·보수업무는 분할되는 거고 국토부가 마음대로 용역회사에 업무를 외주화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이승우 민주노동 연구원 연구위원은 “일원화된 조직 구조가 붕괴한 이후, 영국 철도 시스템에 는 120여 개의 회사가 난립했고, 안전 관리 주체는 모호해지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빚어졌고, 기업들은 비용 절감과 이윤 추구에 몰두했다”라며 “운영과 시설의 완전 분리가 가져올 미래는 참담하다”고 주장했다. 이승우 위원은 “해트필드 사고 당시, 4명이 사망하고, 70여 명이 부상했는데, 사고 구간 35m 이상 선로가 300여 개 조각으로 쪼개졌다”라고 밝혔다.
철도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자 조선일보는 기획면을 만들고 [사설] 〈방만 철도노조 파업을 전면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에서 “SRT가 운행을 시작한 지 7년이 돼 가는데 이제 와서 이를 파업의 이유로 내거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다”며 “SRT와 서비스 경쟁하기 싫고 편한 철밥통이 되고 싶다는 것이 이번 파업의 진짜 이유일 것이다”라고 파업의 의미를 왜곡했다. 매일경제도 두 차례에 걸친 사설을 통해 “경쟁체제는 서비스 개선 등 긍정 효과를 가져왔다”며 “그런데도 통합 운운하는 것은 철밥통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 보수신문이 주장하는 ‘경쟁 체제의 효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는 2022년 12월 20일 ‘철도 공기업 경쟁체제 유지 또는 통합’과 관련해 판단을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철도산업 ‘거버넌스 분과위원회’는 2년 가까이 철도 경쟁 체제를 두고 찬반 논의를 한 끝에 “코로나19 때문에 경쟁체제가 정상 운영된 기간이 3년(2017∼2019년)에 불과해 분석에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거버넌스 분과위원회 평가 결과 “철도 공기업 2개가 운영됨으로써 인건비, 설비비, 판매관리비 등에서 발생하는 연 최대 406억원(분과위 평가 결과)의 중복비용이 앞으로도 누적될 전망이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경쟁체제 덕에 KTX 마일리지 제도가 부활했고, SR 열차 운임이 10% 인하되는 등 이용자 편의가 늘어난 점도 있다”고 강조했지만, 한겨레는 “SR 열차 운임은 2013년 국토부 철도산업위원회가 SR에 고수익 노선을 떼어주면서 결정한 운영조건이었다”고 반박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지난해 오봉역 사망, 영등포역 탈선 사고 등 근래에는 안전사고도 빈발해 불안이 커지고 있다”면서 “노조는 자구 노력과 철도 안전 체계 구축에 동참하기는커녕 엉뚱한 요구 사항을 내걸고 2차, 3차 파업도 예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며 ‘노조 흠집내기’를 위한 왜곡 보도이다. 지난해 11월 오봉역에서 입환 업무를 하던 30대 수송원이 열차에 치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올해에만 4명의 철도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했다. 철도노조는 오봉역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기자간담회를 통해 “오봉역은 평소 화물열차를 조성하기 위해 차량을 연결 및 분리하는 곳으로 통상 3인이 한 조를 이루어 작업해왔으나, 사고 당일 2인 1조로 작업하다 참사를 당했다”라며 국토부와 기재부에 안전 인력 충원을 요구했지만 묵살당했다고 주장했다. 철도노조는 “기재부는 부채비율이 높고 적자가 심하다며 철도공사를 재무위험기관으로 지정하고 인력을 줄이라고 한다”며 “정부야말로 사고 원인의 진짜 몸통이다”고 주장했다. 인력 감축의 결과는 시설, 전기, 차량정비 등 안전업무의 외주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사고 위험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번 철도노조 파업의 주요 요구 중 하나는 ‘4조2교대 시행에 따른 인력 충원’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신문은 ‘방만 운영과 부실화로 코레일의 적자가 심각해졌다’고 주장하지만 철도노조는 “고속철도가 SR 경쟁 체제로 바뀐 이후 연평균 약 2천억 원의 적자로 돌아섰으며, 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약 1조 원의 적자가 발생한 것이다”고 반박했다.
매일경제는 “정부는 파업 이후 철도 유지·보수 부문 분리, 인력 축소 등 코레일 개혁을 추진한다고 하는데,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고 정부에 주문했으며, 한국경제도 [사설] 〈철도 경쟁 체제 무너뜨리려는 노조 파업, 명분 없다〉에서 “정부가 파업 이후 철도 유지·부문을 분리하고 사측의 방어권을 무력화하는 노조 편향적 단협을 손보는 등 미뤄온 개혁에 칼을 빼 든다고 하는데, 차질 없이 추진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국민일보는 [사설] 〈명분 없이 시민들의 발만 묶은 파업··· 철도개혁 서둘러야〉에서 철도노조의 통합 운영 주장에 대해 “경쟁을 거부하고 독점 체제에 안주하면서 통합 노조의 영향력을 키우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정부에 “철도 개혁에 박차를 가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철도개혁은 ‘쪼개기’를 통한 민영화에 다름아니다.
겉으로는 ‘언제 민영화한다고 했느냐’며 “가짜뉴스로 철밥통 지키려 한다”고 비난하지만, 노골적으로 정부에 ‘철도개혁’이란 가짜뉴스로 ‘민영화’를 주문하는 당신들이야말로 ‘원스트라이크 아웃’, 퇴출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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