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바닥에 온 지 7년쯤 됐을까
본점으로 지점으로 많은 동료들이 들어왔다
또 나가는 동안 지문이 사라져버렸다
손에 물 닿고 불 닿고 하는 게 일이니
손이 미끌거려 비닐을 펼칠 땐 검지에 물을 묻힌다
뭐든 묶어 냉동실에 쟁이는 게 일이다
코로나팬데믹이 절정일 땐 종일 서서 10시간을 비볐다
화구의 매연과 전표와의 싸움은 묵은 때 청소로 대체된다
환갑을 앞두거나 지나거나 종이박스 위에 쭈그려 엎드려
냉장고 안 성에를 깨는 여사님들 신세한탄을 듣자하면
십수 년 경력 다 소용없는 모두 최저시급 종사자로
나 같이 젊은 놈을 타박한다 자격증 따서 진급해라
진급이란 평생 윗사람 뒤치다꺼리나 하는 일이니
턱 괴고 앉은 어린 점장 넋두리 또 듣노라면
쓸쓸한 뉴스를 보는 것 같아서 일이란 게 어차피
지문쯤은 없어도 될 서로 검지에 물이나 묻혀 하루를
때운다는 것이다 이 바닥이 그렇다는 것이다
위에서 보면 그렇게 형편없다는 말씀
조회 때 종대로 모여 듣고 점심 때 횡대로 줄서 듣고
형편없는 반찬들 형편없는 살림들
누가 또 과일 좀 싸왔다고 둥글게 모여
시시콜콜한 뒷담화로 밥시간을 때운다
최명진 시인
2006년 리토피아 신인상 당선.
시집으로 《슬픔의 불을 꺼야하네》가 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59 | 50년의 판타지 | 센터 | 2016.12.27 | 1302 |
58 | 건너지 못하는 인사 | 센터 | 2021.04.26 | 166 |
57 | 공범 | 센터 | 2021.08.25 | 93 |
56 | 공장 | 센터 | 2020.01.02 | 906 |
55 | 공장 빙하기 | 센터 | 2017.08.28 | 1413 |
54 | 굴뚝 | 센터 | 2018.04.26 | 1615 |
53 | 그렇게라도 짖어보는 것이다 | 센터 | 2022.08.29 | 37 |
52 | 그리고 나는 저녁이 될 때까지 계속 걸었다 | 센터 | 2016.03.14 | 1747 |
51 | 근로하는 엄마 노동하는 삼촌 | 센터 | 2019.10.30 | 830 |
50 | 낮게 허밍으로 | 센터 | 2023.12.01 | 19 |
49 | 너무 늦지 않기로 해요 | 센터 | 2020.02.27 | 815 |
48 | 당신의 유통기간은 언제까지입니까? | 센터 | 2017.10.30 | 1334 |
47 | 뒷맛 | 센터 | 2022.02.24 | 60 |
46 | 레이어 | 센터 | 2023.09.11 | 43 |
45 | 리어카를 구원하라 | 센터 | 2021.12.23 | 93 |
44 | 리어카의 무게 | 센터 | 2016.04.28 | 1630 |
43 | 마네킹의 오장육부 | 센터 | 2017.07.03 | 1493 |
42 | 말의 힘 | 센터 | 2020.08.24 | 477 |
41 | 밀양 | 센터 | 2014.04.23 | 1837 |
40 | 바닥은 쉽사리 바닥을 놓아주지 않는다 | 센터 | 2016.08.24 | 1696 |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