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학교 차별 없는 채용으로 만드는 교육의 변화

by 센터 posted Jun 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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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희  교육의봄 공동대표

 

 

1995년부터 시작한 교육운동이 27년째다. 첫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 시작했는데 그 사이 성인이 되어 자신의 아이를 낳은 지 다섯 해가 된다. 이렇게 삼대를 거치는 세월이 지났지만, 우리의 교육은 더 나아지기는커녕 소위 명문대 학벌 취득을 위한 입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남보다 앞서가기 위한 경쟁 대열에 세우는 일이 유아 시기까지 내려갔는데도 누구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10여 년 전부터 우리나라는 K-pop을 시작으로 K-드라마, K-movie, K-food, K-방역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K’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물건을 살 때 ‘Made in Korea’가 붙여진 제품이면 무조건 믿고 보는 시대가 되었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모든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은 높아지고 자긍심과 자부심이 넘쳐난다. 그러나 그 대열에 끼지 못하는 한 분야가 있으니 바로 교육 영역이다.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지식 암기 중심 교육, 정답 고르는 교육, 점수로 서열화시켜 우열을 가리는 교육, 그것을 토대로 명문대 당락이 결정되는 입시 체제, 학교에서 암기하는 것도 모자라 밤 12시, 1시가 다 되도록 학원에 붙들려 있는 아이들··· . 대표적인 우리 교육의 자화상들이다. 지난 27년간 이 공고한 후진 교육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으나 만사가 허사였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전국의 학생을 한 줄로 줄 세우는 수능시험 점수로 대학가는 입학전형 비율을 더 높였고, 그 수능 전형을 전체 정원의 40% 이상 높이는 대학에는 재정 지원을 확대하는 정책까지 내세웠다. 공정성이라는 미명 아래 점수 따기 입시 교육을 강화하는 데는 진보, 보수 정부가 따로 없다.

 

어떤 몸부림에도 변하지 않는, 아니 오히려 퇴행을 거듭하는 우리 교육에 균열을 내는 다른 어떤 것이 있을까? 고심 끝에 기업의 학벌 중심 채용의 변화를 생각해냈다. 이것은 새삼스러운 자각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에게든 입시 경쟁에 매달리는 이유를 묻는다면 그것은 연봉 높고 안정적인 좋은 일자리에 진출하기 위해서라고 답할 것이다. 통계청에서 2005년부터 학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학부모들은 사교육비 지출 첫 번째 원인으로 “기업에서 출신학교를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꼽는다. 매년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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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5일 교육의봄이 개최한 ‘학벌·스펙과 업무 성과의 관계 연구 결과 발표 연속 심포지엄’ (@교육의봄)

 

지난 2월 15일 교육의봄이 개최한 ‘학벌·스펙과 업무 성과의 관계 연구 결과 발표 연속 심포기업의 학벌 중심 채용 문화를 바꿔 우리 교육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겠다는 목표로 새로운 교육운동을 시작한 지 2년째가 된다. 출신학교 차별 없는 기업의 채용을 견인하겠다고 들어왔는데, 놀랍게도 기업들은 이미 채용에서 엄청난 변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카카오나 게임회사인 엔픽셀 등 IT 회사들은 이미 학교명을 쓰는 란을 없애고, 곧바로 코딩 테스트를 통해 실력을 검증하고 있다. 말하자면 직무 능력 중심 채용을 실시하는 것이다. IT 기업만이 아니라 은행권, 제조업, 언론계 등 전통적인 산업 분야에서도 신규 채용의 상당 부분이 IT 인력들을 뽑으면서 학벌을 중시하는 경향이 퇴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더불어 신산업과 전통산업의 경계가 무너지고 서로 경쟁하는 체제가 되다 보니 신산업들의 채용 방식을 전통 기업들에서도 따라 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고 증언한다. 이렇듯 채용의 변화가 급격히 일고 있다.

 

물론 여전히 학벌이나 스펙을 우대하는 기존 채용 방식을 고수하는 기업들이 많다. 직장 생활을 경험해 본 사람은 누구나 학벌이 일 잘하는 능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체로 두 가지 이유로 모아진다. 하나는 학벌이 성실성이나 끈기와 같은 인성을 증명하는 기준이 된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고, 또 하나는 사적인 경험이 아닌 학벌이 일의 능력과 무관하다는 증명할만한 데이터가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있지 않은 탓이다.

 

이 두 가지 역시 학벌이 직무 능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실증적 자료들이 많아지고 광범위하게 공유된다면 관행적으로 계속 학벌에 의존하는 기업들, 사람들의 막연한 심리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과대한 사교육비를 지출하면서 입시 경쟁에 매달리는 이유는 명문 학벌 취득을 통해 좋은 직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것이 국민 일반의 상식이지만, 통계청을 통해 데이터로 공식 확인된다면 부정할 수 없는 팩트가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개별 기업들에서는 이미 학벌과 직무 능력의 상관관계가 낮다는 것을 누적된 입사 직원들의 업무 성과를 조사해 데이터로 확인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이를 공개하고 있는 기업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몇 안 되는 공개된 자료를 보니, 모 대기업 연구직 800명을 대상으로 5년간 조사한 결과 최상위 10개 대학(1군 대학) 출신 신입사원은 입사 초기에는 2군(10~30위 대학), 3군(30위 이하 대학) 출신보다 업무 성과 점수가 다소 높았지만 입사 4년 차부터는 3군 출신이 2군보다 높아졌고, 5년 차에는 2, 3군이 1군 출신을 앞질렀다는 것이다. 또한 모 대형 대학병원 간호사 2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학벌과 성과의 상관관계에서도, 최상위 S등급 출신들은 인사고과 평균 수준에 그쳤지만, D등급 출신들은 평균을 상회하는 인사고과 점수를 받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최근 AI 채용 솔루션을 개발한 회사에서는 이 AI 채용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입사자의 업무 성과와 학벌의 관계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 출신학교, 학점, 영어 성적과 같은 스펙은 업무 성과와 유의미한 관계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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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와 관련한 더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공개해갈 것이다. 당위와 심증으로 주장하지 않고 실증적 자료로 증명해갈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하면 매우 힘겨울 것이나, 이미 기업의 채용 변화, 세상의 변화는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을 실감한다. 지식을 자기 안에 가두기 위해 세상과 담쌓고 책상에서 암기한 결과로 높은 성적을 얻어 대학에 입학하는 수재는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가 아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시대에 다른 사람과 머리를 맞대고 협업하며 세상과 사람의 필요에 늘 열려있는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을 원하고 있다. 기업의 존망이 한 사람의 인재에 달려 있는 위태로운 시대에 학벌이라는 가장 불확실하고 막연한 잣대에 의존하는 채용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눈에 보이는 지식과 기술보다 태도, 잠재능력, 가치관, 동기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능력을 찾기 위해 다양한 채용의 대안들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흐름을 조금 더 가속화시켜서 한시라도 쓸모없는 입시 경쟁에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는 아이들이 없도록 하고자 한다. 남과 경쟁하여 우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가 자기 인생의 승리자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국가적으로도 절박하다. 1%의 승리자와 99%의 패배자를 양산하는 줄 세우기 교육체제로는 인구 절벽 국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자신의 재능과 잠재능력을 마음껏 펼쳐가는 사회가 될 때 국가의 번영도 기약할 수 있다. 이 변화 앞에 누구보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중심 잡기가 절실하다. 아이를 살리는 길은 학벌 경쟁에 내모는 것이 아님을, 오히려 망치는 길임을 굳건히 깨닫기만 한다면 우리 교육의 변화는 반드시 올 것이다. 아이들의 생명력을 꽃피우는 K-edu 시대, 우리도 머지않아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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