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웅 센터 정책연구위원장,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는 임기 초 공약과 반대로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 비정규직 규모는 역대 최대 수준으로 증가했다. 비단 코로나19 관련 경기적 요인 때문만이 아니다. 비정규직 규모와 비율은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에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여성·청년·고령층 비정규직 증가, 디지털 전환과 자동화 가속화, 플랫폼 노동 확산, 사회서비스 일자리 비정규직 증가 등의 구조적·추세적 요인과 정부의 소극적 정책 대응이 복합적 영향을 미친 결과로 보인다.
특히, 민간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매우 미흡했다.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 상시지속 및 생명·안전 관련 업무의 정규직 직접고용 확립, 비정규직 사용부담 강화, 차별시정제도 전면 개편, 1년 미만 근로자 퇴직금 지급 등 임기 초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에서 발표된 비정규직 관련 공약 중 실제 추진된 게 거의 없다.
이 글은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1년 8월 기준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자료를 이용해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규모와 노동조건 실태를 살펴본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홈페이지에 게시된 이슈페이퍼를 참조하기 바란다.
비정규직 규모와 비중
2021년 8월 비정규직 규모는 902만 명으로 지난해보다 53만 8천 명(6.34%) 증가했다. 2021년 비정규직 규모와 증가 폭은 2001년 조사 시작 이후 최대 수준이며, 비정규직 규모가 900만 명을 넘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전체 임금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2020년 41.5%에서 2021년 43.0%로 1.5%p 증가했다. 비정규직 비율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감소하다가 2019년부터 증가세로 돌아섰고, 2021년에도 또다시 큰 폭으로 증가해 문재인 정부 출범 전 수준으로 상승했다.
전체 임금 노동자는 54만 6천 명 증가했고, 정규직 증가 폭은 8천 명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와 올해 사이에 회복된 고용 중 98.5%가 비정규직 채용으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비정규직 세부 유형 중에는 기간제 32만 명, 임시파트타임 15만 명, 파견·용역 8만 명, 특수고용 6만 명 순으로 고용 규모가 큰 폭 증가했다. 증가율은 가내·재택 61.2%, 특수고용 12.5%, 기간제 12.0%, 파견·용역 11.0% 순으로 높았다.
남성 비정규직은 16만 명(4.2%) 증가했고, 여성 비정규직은 그보다 두 배 이상 많은 38만 명(8.2%) 증가했다. 남성 비정규직 비율은 34.4%에서 35.3%로 0.9%p 증가했고, 여성 비정규직 비율은 50.4%에서 52.3%로 1.9%p 증가했다. 연령대별 비정규직 비율은 1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증가했다. 인구 고령화의 영향으로 전체 비정규직 증가분의 절반 이상은 50대 이상에서 증가했다.
산업별로는 보건·사회복지 서비스업의 비정규직이 26만 명(23.2%)이나 증가했다. 이는 전체 비정규직 증가분의 절반에 육박한다. 다른 산업 중에는 정보통신 50.0%, 금융·보험 18.3%, 부동산 16.2%, 전문·과학·기술 서비스 14.0%, 운수 12.4%, 교육 서비스 12.0% 순으로 비정규직 증가율이 높았다. 직업별로는 전문직 비정규직이 19만 명(16.4%), 단순노무직 비정규직이 15만 명(5.3%) 증가해 전체 비정규직 증가분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비정규직 규모와 비율 추이
비정규직 노동실태
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336만 원에서 344만 원으로 8만 원(2.5%) 증가했고,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173만 원에서 180만 원으로 7만 원(3.9%) 증가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대비 월평균 임금 비율은 51.5%에서 52.2%로 0.7%p 상승했다.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18,465원에서 19,004원으로 539원(2.9%) 증가했고,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11,604원에서 12,090원으로 486원(4.2%) 증가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대비 시간당 임금 비율은 62.8%에서 63.6%로 0.8%p 상승했다. 주당 노동시간은 정규직이 42.5시간에서 42.3시간으로 0.2시간(0.5%) 감소했고, 비정규직이 34.2시간에서 33.9시간으로 0.3시간(0.9%) 감소했다. 단시간 노동자를 제외한 비정규직의 주당 노동시간은 40.8시간에서 40.4시간으로 0.4시간(1.0%) 감소했다.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률과 부가급부 적용률은 대체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21년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가입률이 43.0%에서 50.2%로 7.2%p 증가했다는 것이다. 고용보험법 개정에 따라 2021년 7월부터 약 100만 명의 특수고용 노동자가 고용보험 의무가입 대상에 포함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2020년 7.4%에서 2021년 64.6%로 57.2%p 증가했다.
전체 임금 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12.3%에서 12.6%로 0.3%p 증가했다. 정규직의 노조 가입률은 19.2%에서 19.9%로 0.7%p 증가했고,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률은 2.5%에서 3.0%로 0.5%p 증가했다. 직업훈련 참여 비율은 전체 임금 노동자의 경우 52.2%에서 47.7%로 0.5%p 감소했고, 정규직은 62.5%에서 58.7%로 3.8%p, 비정규직은 37.6%에서 33.1%로 4.5%p 감소했다.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던 정부에서도 비정규직 규모가 역대 최대 수준으로 증가했다. 별다른 대안적 대책 없이 최저임금 인상률이 하향 조정되면서 향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계속 줄어들 수 있을지도 매우 불확실해졌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신규 가입으로 고용보험 가입률이 증가했지만, 여전히 의무가입 대상 비정규직의 절반 정도는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못하다. 한국 경제 구조의 문제 해결 방향과 기존 정책의 한계 극복을 위한 대안적 정책 논의는 실종되고, 후보 본인과 가족 비리 문제를 둘러싼 진흙탕 공방만 뜨거운 대선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향후 5년은 비정규직의 고용·노동조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비정규직 사용 규제, 노동권 보장,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대안적 정책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