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파리바게뜨 노사합의의 교훈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내일신문 / 2017. 1. 17)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문제가 지난주 노사합의로 타결됐다.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후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진전돼온 공공부문에 이어 우여곡절 끝에 민간부문에서도 좋은 일자리 확산의 청신호가 켜졌다. 여전히 만만찮은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난제 중의 난제인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파리바게뜨 사례가 남긴 교훈을 정리해본다.
한국사회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는 10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노동자의 과반을 넘길 정도로 심각하다. 비정규직 일자리가 양산되면서 일터에서의 차별과 노동인권 침해가 일상화됐다. 지불능력이 충분한 대기업에서도 나쁜 일자리를 남용하면서 사용자 책임을 도외시했다. 헌법과 노동법에 명시된 노동권은 사용자들이 압도적 힘을 자랑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무력화됐다. 특히 민간부문 슈퍼갑인 재벌대기업을 비롯한 경제기득권층에게 집중된 특혜와 편익이 가장 대표적인 사회적폐가 된 지 오래다.
민간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시금석
파리바게뜨 사례는 민간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성패를 가름하는 시금석으로 전사회적인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 파리바게뜨 사례는 불법파견을 비롯한 나쁜 간접고용 비정규직 일자리가 남용돼온 우리 사회에 커다란 경종을 울렸다. 이익이 있는 곳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 노동법의 대원칙이다. 파리바게뜨 불법파견의 핵심은 본사가 제빵기사들이 내는 이익을 취하면서도 그에 따르는 책임을 회피해온 사용자의 도덕적 해이 문제다.
지금도 끊이지 않는 여러 재벌대기업 오너일가의 갑질 행태는 사태의 구조적 심각성을 반증한다. 간만에 제몫을 한 고용노동부의 이례적인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판정과 직접고용 시정지시 조치는 민간부문 나쁜 일자리 확산과 고착화가 용인되기 어려운 임계점을 이미 넘어섰음을 웅변한다. 불법파견 협력업체를 배제하기로 한 노사합의에서 확인되듯이 실질사용자가 책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파리바게뜨 사례는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파리바게뜨는 불법파견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직접고용은 실현하지 못했지만 다양한 이해당사자간 협의와 사회적 논의를 통해 합리적 대안을 찾았다. 자칫 사태가 장기화됐을 경우 제빵기사와 카페기사들이 피해를 감내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었지만 양대노총과 노조의 공조와 파리바게뜨 본사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 그리고 시민대책위원회의 적극적인 중재노력이 맞물려 본사가 책임지는 자회사 전환 방안이라는 차선책으로 귀결될 수 있었다.
비정규노동에 청년노동과 여성노동 문제까지 중첩된 파리바게뜨 사례는 본사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제빵기사 노조, 그리고 가맹점주와 불법파견 당사자인 협력업체까지 여러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어 문제 해결이 대단히 어려웠다. 본사 직접고용에 대한 정규직 노조의 반발과 우려도 변수가 됐다. 노동자 뿐 아니라 가맹점주도 주요한 이해관계 당사자인 프랜차이즈 업태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현실적인 대안 마련이 더욱 만만치 않았다.
사회적 협의 중요성 떠올라
시민대책위원회와 정의당,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중요한 고비마다 파리바게뜨 노사협의가 진전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았고 의미있는 결실을 낳았다. 특히 제빵기사를 대표한 노조와 가맹점주협의회가 함께 합의서에 서명한 것은 '을들의 연대'가 진전되는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소중한 성과다.
파리바게뜨 사례는 그 상징성만큼 사회적 협의를 통한 노사 현안문제 해결 가능성을 높였다. 파리바게뜨 사례는 여전히 진행형이므로 객관적이고 세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차질없는 노사합의 이행으로 제빵업계 청년노동자들의 권익이 신장되는 한편 파리바게뜨가 사랑받는 국민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사와 가맹점주, 시민사회가 함께 지속적으로 지혜를 모아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