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지난해 8월 통계청 조사 기준으로 60여만명이 특수고용 노동자다. 하지만 건설기계·화물지입차주 등 실제 노조로 조직된 특수고용 업종·직군에 포괄되는 미조직 노동자들은 어림잡아도 100만명이 훌쩍 넘는다. 많게는 150여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가장 큰 문제는 사용자에게 종속돼 일하면서 합법적인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빠르게 늘고 있는 노동시장의 추세다. 연초 비극적인 죽음으로 우리 사회에 충격을 안겼던 영화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도 따지고 보면 특수고용 노동자 신분이었다. 지난해 하반기 대법원의 사내하청 불법파견 판결과 청소·경비 용역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뜨거운 이슈로 부각된 간접고용 문제와 함께 한국사회 노동시장 정상화를 위한 우선 해결과제로 특수고용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마당에 직업안정법 전면개정안이 제기된 것은 정부와 집권여당이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은 결과다.
각설하고 실태를 보자. 퀵서비스·대리운전·간병인·방과후교사·가정관리사·출판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종다양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민간 직업소개업체 등 노동력 중개기구를 통해 중간 수수료나 회비를 내고 취업하는데 그 실상이 심각하다.
“업주는 중간소개업자나 알선업자나 다름없죠. 중간에 매개 역할을 하는 정도인데 중간착취를 심하게 하는 거죠. 숫자상 (수수료가) 25%이지 보이지 않는 비용까지 하면 더 많죠.”(퀵서비스 기사 인터뷰 내용)
“통장을 제가 개설한 후 업체에 그 통장을 맡겨요. 그러면 업체가 돈이 들어오면 수수료를 제외하고 나머지를 저한테 주는 거죠. 비밀번호도 업체가 정해 준 걸로 만들었고, 도장도 새로 파서 맡겼어요.”(방과후교사 인터뷰 내용)
“작가한테 불리한 계약을 많이 요구하죠. ‘수정 요구시 무조건 다 들어줄 것’ 같은 문구를 넣거나 부당하게 단가를 낮게 책정하거나.”(출판 일러스트레이터 인터뷰 내용)
여러 사례에서 보듯 현행 직업안정법상 규율대상이 되는 전형적인 직업소개업 부문을 벗어난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무방비로 고율의 수수료 부담을 전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퀵서비스나 대리운전 기사, 방과후교사의 경우 20%가 넘는 알선 수수료를 노동자가 부담하고 있고, 다른 부대비용까지 포함하면 거의 5대 5 나눠 먹기 식에 가깝다. 애초 노동기본권을 박탈당한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노동시장 진입부터 특수하게 착취받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노동력 중개시장에 대한 공공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는커녕 아예 시장에 통째로 내맡기는 길을 택한 직업안정법 전면개정안은 직업소개업소나 파견업체 등 노동력 중개기구의 중간착취로 고통받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처지를 도외시한 결과다. 노동현장에 나가서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였다면 자본 관점의 고용서비스시장 활성화가 아니라 개별 비정규 노동자들의 직업안정을 도모하는 공공고용서비스 체계 구축·강화를 통한 일자리 문제의 실질적 개선이 정부의 역할임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직업안정법 전면개정안은 굶주린 사자의 우리에 대다수 특수고용·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들을 먹이로 던지는 꼴이다. 정부는 법·제도 개선을 통해 노동시장 내에서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하는 계층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자가당착과 직무유기의 우를 범하고 있다. 이제라도 제대로 된 실태부터 파악해야 한다. 과도한 고율의 수수료, 불법·탈법·편법 노동착취, 죽어도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피폐화된 노동환경, 성상납을 위시한 심각한 노동인권 침해 등 산적한 문제를 개선하고 해결할 방도를 다시 찾아야 한다. 그 시작이 노동시장을 제어할 규율을 올바로 세워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특수고용을 비롯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직업안정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법을 만드는 일이다.
지금은 시장과 자본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정글에 내던져진 비정규 노동자들을 보호할 방책을 먼저 강구할 때다. 정부의 노동력 중개시장에 대한 진단은 사오정 식 허무개그에 가깝고 해법은 저팔계 식 무데뽀와 진배없다. 그러면서 오만한 손오공 흉내를 낸다. 삼장법사의 차분한 지혜가 절실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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