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고용과 플랫폼 노동자는 투명인간인가
- 중대재해법 회피 도우미로 나선 고용노동부를 비판한다
“법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을 잘 적용해서 입법 취지가 최대한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9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중대재해법 시행령을 통과시키던 국무회의에서 직접 언급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불과 두 달도 지나지 않아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중대재해처벌법 해설’ 자료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상시 근로자가 5명 미만인 개인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종사자 등이 5명 이상인 경우에도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은 법의 적용대상이 아님”
특수고용과 플랫폼 노동자는 투명인간이란 말입니까? 지역의 영세한 배달대행업체·대리운전업체 상당수가 3~4명의 관리인원만 두고 플랫폼 노동자를 활용하는데 이들 모두에게 중대재해 면허를 주겠다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것은 해설자료가 아니라 중대재해법 회피 안내서입니다. 수백, 수천, 아니 수만 명의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를 사용하더라도 직접 고용한 노동자 수를 5명 미만으로 만들기만 하면 중대재해법을 피해갈 수 있다고 안내하는 꼴 아닙니까.
해설자료 전체에서 ‘플랫폼’이란 단어는 딱 한 번, 이 문장에만 등장합니다. 플랫폼 노동자를 중대재해에서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비대면·디지털 일자리 노동자의 과로사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9월 30일, 홍남기 경제부총리)며 플랫폼 노동자 죽음을 걱정하던 문재인 정부의 대안이 플랫폼 기업에 중대재해 면죄부를 주는 일입니까.
이 해설내용은 ‘김용균법’으로 알려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내용과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77조에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해서도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새롭게 명시하였고, 78조에서는 이륜자동차로 배달하는 노동자에 대해 플랫폼기업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규정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왜 중대재해법에선 뺀단 말입니까!
법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입법 취지 실현도 중요하다? 아닙니다. 법부터 잘못 만들었습니다. 애초부터 5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법 적용을 하지 않도록 한 것부터 첫단추를 잘못 낀 것입니다. 거대 플랫폼 기업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 이 조항을 활용한 것 아닙니까.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프리랜서·자영업자처럼 위장해놓고 근로기준법 적용을 가로막는 플랫폼 기업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중대재해 사업주 처벌을 위해 그물을 치겠다 해놓고, 물에 녹는 실로 그물을 만든 꼴입니다. 이렇게 빠져나가고 저렇게 빠져나가니 대한민국에서 근로기준법·중대재해법 적용받는 사업장이 몇이나 남겠습니까!
우리는 특수한 노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루, 한달, 1년을 살기 위해 평범하게 일하는 노동자들입니다. ‘플랫폼종사자법’이나 ‘특수고용특별법’ 같은 특별법이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 누구나처럼 평범한 노동법 적용을 요구합니다.
고쳐야 합니다. 고용노동부의 말이 안되는 해석도 고쳐야 하고, 잘못된 첫단추인 중대재해법도 고쳐서 5인 미만 사업장과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모두에게 이 법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비대면·디지털 일자리에서 죽어나가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제대로 고치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부는 임기가 끝나더라도 이들 죽음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2021년 11월 23일
플랫폼노동희망찾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