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 통합 논의에 대한 우리의 견해
이명박 정권은 집권 3년 동안 정치적?경제적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등 역사의 수레바퀴를 과거로 되돌려 놓았다. 언론관계법과 노동관계법 그리고 집시법 등을 개악하였고, 공안독재의 부활로 국민감시체계를 강화하여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를 자행하였다. 부유층에 대한 감세정책 등을 펼쳐 재벌과 상위계층의 소득은 날로 늘어나는데 반해 서민에 대해서는 소득이 감소하고 가구부채가 늘어나는 정책을 폄으로써 사회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켰다. 남북관계는 파탄 나고 적대적 긴장관계만 고조되고 있다.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그리고 철도파업에서 잘 드러났듯이 국가권력을 동원한 반민중적?반노동자적 폭력행위도 서슴없이 자행하였다.
한마디로 지금 우리는 그 동안 민주?개혁?진보세력이 어렵게 이루어 놓은 소중한 성과들을 지키며 개혁과 진보의 길로 다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반민중적 보수세력의 기반이 고착화되어 갈 것인가 하는 매우 엄중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진보대통합 추진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시의적절하고도 의미가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은 양적 질적으로 과거를 뛰어넘는 진보정당으로 거듭나는 것이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진보세력의 통합 추진이 갖는 정치적 함의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간과해서는 안 될, 반드시 견지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 용어의 선택이다. 양적 확대의 의미만 부각되는 '진보대통합'이라는 용어보다는 양적 질적 진일보를 뜻하는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목표가 분명한 용어로 통일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진보세력의 대통합’ 취지에도 부합하고 노동자 대중에게도 분명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에서 선거일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선거일정과 양적 통합·확대에만 치우치고 내용을 도외시하거나 등한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내용을 갖추는 것은 선거일정 이상으로 중요하게 다뤄야 하고, 특히 현 시기는 그 어느 시기보다 내용을 잘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한 시기이며, 의지만 있다면 일정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내용을 갖추기에 시간도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내용이란 다름 아닌 진보의 ‘가치’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가치 중심의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강조하는 것은 지난날 분당으로 인해 국민과 노동자 대중에게 많은 실망을 안겨주었던 뼈아픈 오류가 다시 반복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현 시기 당면한 핵심 의제인 '양극화 해소'와 '보편적 복지', 그리고 한반도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진보정당이 되어야 한다. 예컨대 양극화의 중심에 있는 비정규노동의 문제는 노동관계법의 개정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점이 있는 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착취 뿐만 아니라 중소영세 자본의 착취까지를 통해서 군림하고 있는 대기업과 재벌들의 소유와 분배문제에 대한 강화된 규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누진세를 대폭 강화하여 부자일수록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조세제도로 전면 개혁해야 한다. 소유와 분배 그리고 조세개혁 등을 전제로 하지 않은 양극화 해소와 보편적 복지 실현을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미사여구에 불구한 것인지도 모른다. 새롭게 건설될 진보정당은 훨씬 더 급진적인 개혁정책을 펼쳐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남북문제는 호혜적 교류협력과 평화협정체결을 통해 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정책을 일관되고 끈기 있게 추진해야 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민주?개혁?진보세력이 폭넓게 참여하여 함께 만들어 가되 신자유주의에는 명확하게 반대하는 세력으로 건설되어야 한다. 과거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행하거나 이를 추종하였던 개인이나 세력이 공개적인 반성도 없이 '새로운 진보정당 결성'에 참여하겠다고 하여 선뜻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들과는 정책연대, 선거연합 등을 통해 얼마든지 연대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때 진보정당은 정체성의 혼란을 피할 수 없게 되고 이는 곧 진보정당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이 진보적 가치를 힘 있게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는 민주?개혁?진보 세력이 중심이 되어 국민의 지지를 폭넓게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진보정당이 진보정당다우려면 외곽에 더 급진적인 대중운동이 있어야 하고, 진보정당에 광범위한 노동자 대중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진보정당 결성'에 있어서 노동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때이다.
민주노총 전 위원장 5인은 위와 같이 인식을 같이 하고 '새로운 진보정당 결성'을 위해 노력하기로 하였다.
권영길, 단병호, 이수호, 조준호, 임성규
2011년 3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