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자가당착의 발언을 멈추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비정규직 대책을 마련하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월 5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노동계는 사유제한과 기간 단축이 노동을 위한 것이고, 기간 연장은 사용자를 위한 안이라는 생각을 덮어야 한다”며 “기간 연장 때문에 기간제나 파견근로자가 늘어난다고 보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노동계가 요구하고 있는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과 사용기간 단축에 대해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에 대해서는 “사용사유 제한을 하게 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보는 반면 도급이나 용역으로 갈 것이라는 논쟁도 있다”며 “(용역이나 도급으로 가는) 풍선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게 많은 학자들의 시각”이라는 점을 강조하였고, 기간제 사용기간 단축에 대해서는 “무기계약직 확대로 가는 과정에서 과도기적으로 할 조치를 고민해 1차적으로 내놓은 것이 비정규직 기간 연장”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난 달 고용노동부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안)과 함께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핵심”을 정규직 채용 문화 확산과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성 및 노동조건 개선이라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불안정·한시적 고용’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기간제의 사용기간을 연장함으로써 고용안정성을 높이겠다니. 완벽한 자가당착이 아닌가. 더군다나 이 장관은 6년 전 노동부 근로기준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추후 거짓으로 판명된 이영희 노동부 장관의 ‘100만 해고 대란설’을 거들면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한을 2년에서 4년으로 개정하는 데 앞장섰던 이력이 있다. 이때의 안을 고수하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한편 이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노사정 각 구성원들의 양보를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라과디아의 예를 들었다. 미국 뉴욕의 치안판사였던 라과디아는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빵을 훔친 한 노인에 대한 판결을 내리면서 노인에게 벌금 10달러, 사회적 책임이 있는 자신에게 벌금 10달러, 방청객들에게 각 50센트씩을 물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 일화와 함께 이 장관은 “라과디아 판사가 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 모두가 50센트의 양보를 하면서 가는 게 옳지 않겠느냐”며 “나의 주장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양보, 좋다. 그러나 양보는 무언가를 내어줄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을이 갑에게 양보를 할 수 있는가? 을은 갑에게 굴복할 뿐이다. 기간제 노동자가 무얼 더 양보한단 말인가. 2년 쓰고 버림받거나 쪼개기 계약으로 부려지는 비정규직들에게 기간제 사용기간을 2년 더 연장하겠다고 나서는 게 고용노동부가 생각하는 양보와 상생의 미덕인가. 사용기간을 연장하면 기업들은 기간제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도 장기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좋을지 모르지만, 비정규직들에게는 2년 뒤 고용 불안이 4년 뒤 고용 불안으로 유예될 뿐이다. 라과디아 판사의 일화를 예로 든 것도 적절치 않다. 판결 당일 모아진 벌금은 57달러 50센트였다. 이 가운데 노인의 벌금 10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47달러 50센트를 노인에게 건넸다. 사회적 약자였던 노인은 벌금을 내기는커녕 사회적 책임에 공감한 판사와 배심원의 벌금을 받은 것이다. 2015년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는 누구이며,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주체는 누구인가. 이 장관의 발언은 이 지점을 완전히 놓치고 있다.
2015년 1월 7일
한국비정규노동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