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밥은 영양사들의 소속감과 책임감에서 나온다
경찰청은 정부정책을 앞장서서 거스를 것인가
2011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현 안전행정위원회)에서 전의경 급식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한 끼 식사당 1,940원의 영양을 담보할 수 없는 급식의 질이 문제되었다. 그 뒤로 전국 지방경찰청에 영양사를 배치하기 시작하여 2013년 1기 45명, 2014년 2기 48명을 채용하였다. 영양사들은 경찰청과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맺어왔으며, 채용 당시 1년씩 계약하되 2년 근무 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는 구두약속을 받았다. 채용 과정은 물론 연수 과정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거라는 기대를 심어주었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시점을 앞둔 1기 영양사 전원에게 6월 30일부로 계약을 해지한다는 통보를 보냈다. 빈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타 공공기관의 기간제 영양사 기본급보다 현저히 낮은 기본급을 받으면서도 집회현장을 쫓아다니며 고된 노동을 감내해왔다. 처음 영양사들이 배치되었을 때 급식실의 위생 상태와 식단은 엉망이었다. 영양사들은 좋은 식재료를 구입해 정성껏 급식환경을 변화시켜나갔다. 그러나 무기계약직 전환 시점을 앞두고 해고를 통보한 경찰청의 조치는 지난 3월 간호사 41명을 일반직공무원(9급)으로 채용한 것과 대비된다.
경찰청은 계약해지의 이유가 영양사 무기계약 전환 예산이 우선순위에서 밀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처음 영양사들을 채용할 때 2년 뒤 무기계약 전환을 약속하였기 때문에 예산문제는 갑자기 불거진 문제가 아니다. 전의경의 급식은 부대가 없어지지 않는 한 상시지속업무로 중요한 사안으로 다루었어야 한다. 기재부를 상대로 영양사들의 무기계약전환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채용 단계에서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내비쳤었기에 일부 영양사는 급식업체 등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일하다 경찰청 소속 영양사로 자리를 옮긴 경우도 있다. 그러기에 영양사들의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다. 영양사들의 업무는 상시지속업무이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2013년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 중앙행정기관 47곳의 정규직 전환율은 목표치를 웃도는 116%(5만432명)였는데, 경찰청의 전환율은 목표치의 25%(3명)에 그쳤다.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을 줄여나가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면 민간부문을 선도할 명분이 없어진다. 무엇을 근거로 민간 기업에 비정규의 수를 줄이고 정규직을 늘려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공공기관의 상시·지속적 업무를 수행하는 기간제 근로자를 2015년까지 정규직(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고,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과 고용불안을 해소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기조에도 맞지 않는다.
공공부문이 앞장서 나쁜 일자리를 줄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원칙을 이행해야 한다. 이행에 드는 비용은 경찰을 위한 따뜻한 밥과 경찰청에 대한 영양사들의 소속감과 책임감, 그리고 사회 전체의 사회보장비용 절감 등으로 충분히 상쇄될 수 있다.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라는 명분 있는 정책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도록 정부기관들이 앞장서길 촉구한다.
2015년 6월 5일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서울동부비정규노동센터, 성동근로자복지센터, 경기비정규노동센터,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부천시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 청주노동인권센터, 음성노동인권센터, 광주비정규직센터, 전주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울산북구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울산동구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영등포산업선교회 비정규노동선교센터, 아산시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 충남비정규직지원센터, 부산비정규노동센터,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노원노동복지센터, 서대문근로자복지센터, 수원비정규직노동자복지센터, 군산비정규노동인권센터, 서울서부비정규노동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