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서 >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즉각 사퇴하라!
4월 8일 노사정 협상 결렬 직후인 9일 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은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정부 주도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어이없는 일이다. 이 장관은 노사정 협상이 실패한 근본 원인을 따져보지도 않고 자기 갈 길만 고집하는 불통 정부의 본색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애초부터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들러리 삼아 친재벌 노동시장 구조개악안을 관철할 속셈이었을 뿐이다. 줄곧 노동계를 대화 상대로 여기지도 않고 일방 통보와 강제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점도 한결같다. 이 정부에 더 이상 무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노사정위원회 노사정 협상은 거죽만 번드르르했다. 노동계의 한 축인 민주노총이 아예 빠져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으로 조직돼있지 않은 압도적 다수의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반영조차 되지 않았다. 게다가 노사간 힘의 역관계가 사용자측으로 심각하게 치우친 조건에서 정부는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하기는커녕 시종 재벌자본 이익을 극대화하는 노동시장정책 실현에만 혈안이 됐다. 이번 노사정 협상이 어떤 수위에서든 타결됐다면 1900만 노동자들에겐 재앙이 됐을 것이다.
이제 박근혜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악 강행에 실패하자마자 가이드라인이나 시행령, 매뉴얼 등 편법을 통해 노동자 죽이기 정책을 밀어붙일 참이다. 이기권 장관의 말을 요약해보면, 정부는 3대 현안으로 불린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임금체계 개편을 중심으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할 작정이다. 핵심을 간추리면 통상임금 정의규정에 고정성 요건을 포함시키고, 휴일노동 임금을 깎고, 가이드라인이나 행정지침을 통해 올해 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한편 저성과자 해고,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내용이다. 한 마디로 정규직 일자리 불안정성을 높이고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들의 근로조건을 개악하겠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갈등과 불확실성을 해소하겠다는 로드맵의 칼끝은 한국 사회에서 그나마 노동3권을 보장받고 정부가 최근 강조해온 소득 주도 경제성장의 오래된 모델로 기능해온 정규직 노동조합 사업장들에게 겨눠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은 노동조합이 있는 정규직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는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아무런 보호막 없이 노동조건 개악에 내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재벌들에게로 가닿아야 할 칼끝이 엉뚱한 곳으로 향한 것이다.
청년 일자리와 이번 노사정 협살 결렬을 연관 짓는 정부의 의도도 가당찮다. 청년 장그래들의 고용에 가장 중요한 지렛대가 되어야 할 재벌 대기업들은 고용기여도도 미미할 뿐 아니라 신규 일자리 창출도 인색하기 그지없다. 거기에다 사내하청 등 질 나쁜 일자리를 불법적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양산해온 주범들임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잇따른 투쟁으로 백일하에 밝혀졌다. 정규직 노조가 청년 일자리 창출의 걸림돌이 아니다. 막대한 독점 이윤을 전유하며 천문학적 사내유보금을 움켜쥐고 있으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재벌 자본이 원흉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문제가 아니라 1997~8년 외환위기를 분기점으로 한국 사회를 극단적인 불평등 경제구조로 기형화시킨 슈퍼갑 재벌대기업 집단이 문제인 것이다. 노사정 협상에 실패한 정부가 가장 먼저 제어하고 계도해야 할 대상은 정규직 노동조합이 아니라 재벌대기업 집단이다.
작년 12월 29일 발표한 정부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노동시장 활력 제고 방안’이었다. 이제 원래 목적인 비정규직 처우 개선으로 정책의 초점을 옮겨야 한다. 정규직 과보호론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고 양극화된 노동시장 구조의 책임소재를 흐리기 위한 고의적인 책략일 뿐이다. 정부가 이 프레임을 가동하고 싶은 끈질긴 유혹에서 먼저 벗어나야만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이란 원래 목적에 어울리는 대책을 낼 수 있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라고 하면서 정작 비정규직 권리 보호 및 신장은 내팽개치고, 거꾸로 정규직 노동조합을 타겟으로 삼아 재벌대기업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식은 폐기해야 한다.
이제 원점에서 다시 비정규직 규모를 줄이고, 차별을 해소하며,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신장시키고, 사회보험 확충을 비롯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방향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재벌대기업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양산에 대해 철퇴를 가하고, 기업의 제반 범법 행위를 엄벌해 비정규직 일자리를 매개로 부당한 이득을 갈취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가장 먼저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실현시키고 민간 부문까지 아우르는 좋은 일자리 양산 대책을 마련한다면 청년 고용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이번 노사정협상은 애초에 이루어져서는 안되는 협상이었다. 노사정협상이 실패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협상을 밀어붙인 것 자체가 문제이다. 정부에서 이 문제에 가장 먼저 책임져야 할 사람은 바로 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이다. 4인 대표자회의의 실질적인 수장으로 모든 밑그림부터 핵심적인 의사결정 사안까지 기획하고 관장해온 이 장관이 김대환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의 사퇴를 방패막이로 뒤로 숨은 건 비겁한 짓이다.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는 유일한 노동 관련 중앙부처로서 자기 본분을 저버리고 거대한 노동자 죽이기 계획을 노동시장 구조개선이란 미명 아래 일방적으로 관철하려 한 고용노동부 이기권 장관이 즉각 사퇴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임계점에 다다른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에 비추어 근본적인 개선 대안 마련이 절박하지만, 새로운 노동정책 수립을 위한 철학과 가치관을 갖춘 장관이 오지 않는 한 이는 불가능하다. 이기권 장관은 더 이상 미련 두지 말고 기권하라.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삭발한 유가족들의 비통한 투쟁이 벌어진 가운데 성완종 리스트가 세간을 발칵 뒤집었다. 박근혜정부 핵심 실세들이 망라된 거액의 검은 돈 거래가 드러나면서 부정선거 당선이란 오명을 뒤집어쓴 박근혜정부의 마지막 남은 밑둥마저 흔들고 있는 형국이다. 1천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비정규직 종합대책 마련을 이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에게 더 이상 맡길 수 없다.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시민들이, 국민들이 직접 나서야 할 때다.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 중 하나는 비정규직 문제였다.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참사는 일상에 잠복돼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우리 시대의 정신이며, 한국 사회를 인간다운 공동체 사회로 혁신하는 출발이자 근간이다.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는 미조직 비정규직 장그래들의 목소리를 모아 모아 주체적인 실천행동을 통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할 것이다.
2015. 4. 12
장그래 살리기 운동본부
문의 : 장그래운동본부 정책팀장 김혜진(010-4538-0051) 공동집행위원장 이남신(010-6254-27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