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난민 시대, 일자리 없나요?]
현대車·서울메트로 등 비정규직 위주 채용 … ‘나쁜 일자리’ 확산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2010년 8월 25일
ㆍ“신차 나올 때마다 우리만 파리목숨”
산업의 자동화 자체를 탓할 수도, 19세기 유럽의 ‘러다이트 운동’처럼 기계를 부술 수도 없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지 않는 한 자동화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건 피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쁜 일자리가 늘어나는 게 더 문제다. 외환위기 이후 비용을 아끼기 위해 정규직을 대규모로 자르고 대신 파견과 용역 등 외주고용을 늘리면서 불안정한 노동이 확산되고 있다. 지하철 5호선 직원 이정수씨(40·가명)는 “처음에는 인건비 절감한다며 정규직을 줄이더니 결국 용역근로 등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더라”라고 말했다.
서울메트로는 2차 구조조정에 따라 정원을 1134명 줄이고 정비, 유실물센터 업무는 분사와 아웃소싱으로 돌렸다. 대신 ‘일자리 창출’이라며 올 6월까지 1359명을 뽑았으나 지하철 질서유지요원 344명과 인턴사원 188명, 통역도우미 40명 등 비정규직 위주였다. 서울도시철도도 올 4월 말 1187명의 일자리를 만들었으나 업무보조 400명, 청년인턴 133명, 지하철 도우미 219명 등 대부분 기간제 계약직원일 뿐이다. 이씨는 “언젠가는 용역이나 자회사를 만들어 정규직 일자리를 거의 다 대체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는 지난해 575만4000명이다. 전체 근로자의 34.9%다. 2002년 384만명에 비해 191만4000명이 늘었다. 하지만 노동계가 올해 3월 현재 추산한 비정규직은 827만9000명이다. 전체 근로자의 49.8%에 달한다. 2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란 얘기다.
현대차만 해도 생산현장에서 정규직은 잘 안 뽑는다. 대신 최근 대법원이 ‘불법파견’ 결정을 내린 바 있는 사내하청 형태의 비정규직을 쓴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현장 정규직은 평균연령이 40대 중반에 몰려있어 앞으로 몇년내 많은 인력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상황이지만 회사가 정규직을 채용해 공백을 메울 생각은 안한다”고 말했다. 사내하청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차량의 구형모델이 단종되고 신차로 대체되는 시기에는 좌불안석이 된다. 언제 추풍낙엽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단종된 구형 투싼을 만들던 울산2공장의 비정규직 200명 중 66명이 해고나 다름없는 ‘휴업통보’를 받았다.
당사자인 김기훈씨(29·가명)는 “공정이 더 적은 아반떼로 바뀌면서 일자리가 줄자 비정규직에만 휴업을 통보했다”면서 “우리는 늘 파리목숨”이라며 하소연했다. 노덕우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수석부지회장은 “매번 이런 식으로 비정규직만 100~200명씩 줄인다”며 “1공장의 클릭, 베르나도 단종되고 신차가 들어온다는데 200명 정도 잉여인력이 생길 것 같다”고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