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난민 시대, 일자리 없나요?]
대기업·정부부문 ‘양질의 일자리’ 증대가 해답
경향신문 2010년 8월 25일
전병유 교수 | 한신대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의 일자리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증가했다. 1989년 1756만개였던 일자리는 2009년 2351만개로 늘어나면서 595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 매년 30만개 정도 늘어난 셈이다. 경제가 성장하고 인구가 증가한 데 따라 일자리도 늘어난 것이다. 물론 이는 경제개발 초기인 1960~80년대 일자리가 매년 60만개 정도 늘어난 것에 비해 크게 줄어든 수치이다. 인구 증가속도가 낮아졌고 농업부문의 잉여인력도 크게 줄어들었으며 성장의 고용창출 효과도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산가능인구 대비 일자리 수(취업자 수)를 나타내는 고용률은 89년에 58.0%였고, 2009년에도 58.9%로 거의 변화가 없다. 고용률은 97년 60.9%까지 증가했으나 외환위기 이후 고용률 정체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가 빠르게 변화해왔음에도 ‘일할 수 있는 사람 10명 중 6명 미만이 일하는 사회’라는 일자리의 기본구조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명 중에서 7명 이상이 일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스웨덴과 미국이 모두 고용률이 75%를 넘는다.
더 구조적인 문제는 일자리의 양이 아니라 질이다. 외환위기 이후 양질의 일자리는 거의 늘어나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경제 조직은 규모가 커지고, 정부나 대기업처럼 규모가 큰 조직에서는 일자리 자체도 근대화된다. 고용계약이나 인사관리가 비로소 가능해지고 임금이나 근로조건도 향상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근대적 대규모 조직 부문에서의 일자리 확대가 90년대 초반 이후 중단됐다. 이유는 대규모 조직에서 일자리를 늘리지 않기 때문이다. 대규모 조직은 대기업과 정부 부문이다. 대기업은 80년대 후반 이후 일자리를 늘리지 않는 경영전략을 기본으로 유지하고 있다. 자동화와 아웃소싱이 우리나라 모든 대기업의 기본전략이 되었다. 자동화를 통한 품질관리와 외주하청을 통한 단가관리가 기본 전략이었고, 고부가가치 인력을 활용하는 전략은 핵심 부문에만 한정적으로 적용하였다. 정부 부문도 이른바 ‘작은 정부’ 기치 아래 사업비 예산은 증액시켜도 인건비나 사람은 웬만해선 늘리지 않았다. 대기업 비중이 높은 제조업의 일자리는 91년 515만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2009년에는 400만명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1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체의 일자리는 93년 182만개에서 198만개로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그 비중은 9.4%에서 8.4%로 줄어들었다. 주요 선진국들의 경우 대규모 조직의 고용비중이 평균 30% 이상이고 스웨덴 같은 경우는 50%가 넘는다. 일반적으로 제조업이나 대규모 사업장보다 서비스업의 소규모 사업장에 비정규직의 비중이 높다. 이러한 대규모 조직에서의 고용감소는 비정규적인 일자리의 증가를 동반한다.
개발시대에는 수도권으로 인구와 일자리를 집중시킴으로써 고용의 문제를 해결했다. 수도권의 인구와 일자리 비중은 80년대 후반에 40% 수준에서 2009년에 50%로 증가했다. 그러나 수도권에서의 일자리 증가는 지방에서의 더 많은 일자리 상실로 나타났다. 수도권으로의 집중은 ‘고용 없는 성장’의 주요한 현상이자 원인이다.
고용 없는 성장에 대한 대응전략이 서비스업 부문에서의 불량한 일자리를 만드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 중소기업의 활성화와 경쟁력 강화를 통해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것도 물론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에만 그쳐서는 안된다. 대기업과 정부 부문이 양질의 일자리에 기초한 고부가가치 경영전략과 양질의 일자리 확대를 통한 사회 서비스 개선 정책으로 전환하지 않고서는, 지방을 인구 증가와 일자리 창출의 거점으로 만들지 않고서는, ‘경제-일자리-복지’의 선순환 구조가 들어서기 어렵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와 경제사회의 양극화는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