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은 웃는다

by 센터 posted Aug 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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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바.jpg

 

빵 굽던 사람과 그를 응원하는 이들이 한여름 지글지글 끓던 아스팔트에 철퍼덕 붙어 몸을 굽는다. 벌겋게 잘 익은 얼굴에서 떨군 땀방울이 그들 느릿한 오체투지 행진의 흔적을 한강대로 불판에 잠깐씩 남기곤 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흐릿했다. 그 길에 사람들이 아무도 웃지 않았는데, 제빵사 임종린이 다 엎어진 길에 혼자 삐죽 일어나서는 잠깐 웃었다. 내내 반 박자가 빨랐다. 전에도 그는 삐죽 먼저 일어나 밥을 오래 굶었다. 험한 길이다. 교차로 건너 잠시 쉬어 간다. 앉고 눕고 기대어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쉰다. 그들 곁에 딱 붙어 부채질하고 물을 건네고 땀을 닦아 주는 사람들이 있다. 널브러진 사람들 잔뜩 찡그린 얼굴에 웃음 번진다. 저기 투쟁 머리띠 맨 스물넷 청년이 행진에 동참한다고 했을 때, 그의 연인은 말렸단다. 고집이 세서 어쩔 수도 없었다고. 옆자리 서서 걷는 것으로 응원했다. 부채질은, 물에 적신 손수건을 목에 둘러주는 일은, 눈 맞춰 괜찮냐고 묻는 일은 대개 간지러운 일인 것인지, 내내 웃음 터진다. 종종 어깨에 폭 기대어 부빈다. 땀 냄새를 나눈다. 엎어지고 일어나는 사람들 곁에 팻말 든 사람들 있어, 잔뜩 찌푸린 벌건 얼굴 땀 닦으라며 수건 건네는 누군가 있어, 또 한 번의 행진 소식 듣고 멀리서 찾아와 함께 바닥을 기는 사람이 있어 거기 고된 길에 웃음 돈다. 파리바게뜨 사태 해결을 위한 오체투지 행진 길에 여러 인연으로 모인 사람들이 연인처럼 다정했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비보호

by 센터 posted Jun 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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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호.jpg

 

재수 끝에 운전면허를 따낸 어떤 청춘은 당장 차를 끌고 여기저기 달려 볼 생각에 설렌다. 늦은 밤, 탁 트인 자유로를 달리며 평소 꼼꼼하게 선곡해 둔 드라이브 음악을 튼다. 창을 내리고 선선한 바람을 맞는다. 스트레스를 날려 보낸다. 어느 주말이면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들었던 한적한 동네를 찾아가 유유자적 거닌다. 동해안으로 달려 볼까. 저 아래 남쪽 마을은 또 어떨지. 대형마트 장 보는 것도 이제 문제없다. 그러나 초보 운전자는 오늘 도심 복잡한 도로에 나가 거친 야생 속 초식동물의 삶을 겪고야 만다. 온통 바쁜 사람들뿐인 그 도로에 자비란 없으니, 홀로서기 생존이 쉽지 않다. 빵빵 소리에 화들짝 놀라 가슴 뛰는데, 좌회전 신호는 들어오지 않는다. 건너편 직진 차량은 끊이질 않는다. 머릿속이 하얗다. 동공엔 지진이 온다. 어느새 적신호다. 비보호 좌회전은 도로의 효율을 위해서 만든 것이라는데, 능숙한 운전자라도 매번 쉽지 않다. 사고가 날 경우엔 높은 과실 비율을 떠안게 된다. 보호받지 못하는 나의 갈 길을 어찌하나. 비보호 좌회전 표시는 영 반갑지 않다. 마침 표지와 겹쳐 보인 저기 노동자 신세가 또 어떤가. 사람이 들어가 점검하는 중에도 제철소의 기계는, 발전소의 컨베이어벨트는 멈추지 않았다. 안전을 지켜봐 줄 동료가 곁에 없었다. 효율 때문이다. 돈이 든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니 벨트에 말려들어 사람이 죽어 나간다. 끼이거나 떨어져 크게 다친다. 온갖 적신호에도 질주는 쉬이 멈추지 않아 산재 공화국 오명이 여태 선명하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이면, 혼신의 힘

by 센터 posted Apr 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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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jpg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첫 회의가 열린 날, 회의장 앞 기자회견 자리엔 카메라와 노트북 든 기자가 유독 많았다. 앞자리 선 사람들 할 말도 적지 않아 회견이 언제나처럼 길었지만, 자릴 뜨는 카메라가 없었다. 상징의식을 기다렸다. 줄다리기야 흔한 소재였는데, 그 줄이 무대 삼아 세운 현수막을 관통해 연결되어 있으니 호기심을 자극할 만했다. 찢는 거냐, 새로운 현수막이 짠 하고 등장하는 것이냐, 그도 아니면 뭐냐, 눈들이 반짝거렸다. 플래시가 번쩍번쩍, 드디어 시작된 상징의식은 한껏 높았던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무대그림과 어우러져 한 장의 그림으로 담기에 알맞은 것이었다. 의미를 녹여내면서도 요구에 맞추는 일에 이골이 난 사람들의 솜씨다. 줄 잡은 사람들은 힘 모아 당기는 일에 진지했다. 표정 연기까지 어색함이 없었다. 지켜보는 이 아무도 없는 무대 뒤편 줄 맞잡은 사람도 그랬다. 혼신의 힘을 쏟는 것으로 보인다. 어디든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그 덕에 뭐든 일이 돌아간다. 카메라가 잡지 못하는 이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종종 눈여겨 살필 일이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허수아비

by 센터 posted Feb 2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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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표산업.jpg

 

경기도 양주 가마골을 지나는 왕복 2차선 좁은 도로는 자주 구불구불 산을 넘는다. 그늘이면 며칠 전 내린 눈이 그대로였다. 검은 도로엔 윤기가 흘렀다. 여기저기 빙판을 경고하는 안내문이 많았다. 아랑곳하지 않고 차들은 달렸다. 주류 상자 가득 싣고 오르막 커브 길을 오르던 트럭이 소주며 맥주병을 와르르 길에 쏟고 나서야 속도를 줄여 멈췄다. 날카로운 유리 파편을 피해 상·하행 차들이 엉켜 체증이 지독했다. 안전운행을 당부하거나, 다짐하는 스티커가 사고 트럭 짐칸에도 붙어 있었다. 재 너머 마을 어귀를 지날 때면 노인 보호, 어린이 보호 안내가 신호등과 함께 많았다. 덩치 큰 차들이 그 길을 자주 지났다. 내달리던 차들은 고정식 과속단속 카메라 직전에야 속도를 줄였다. 규정 속도를 지키는 차 꽁무니에 바짝 붙어 압박했다. 사고 잦은 곳 표시가 선 곳도 다를 바 없었다. 풍경에 섞였다. 저기 사람이 있다. 아니 사람 모습을 한 마네킹이 안전모를 쓰고 지시봉을 들었다. ‘결빙 위험 절대 감속’ 안내판 옆자리다. 멀리서 얼핏 보면 제법 그럴 듯했지만 거길 자주 지나다 보면 곧 무뎌질 테다. 차들은 달렸다. 허수아비 선 자리 낙엽에 허연 가루들이 잔뜩 앉았다. 그 앞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날아온 돌가루일 테다. 안전모 쓴 직원들이 안전제일 새겨진 펜스 뒤에 줄줄이 서서 정문을 지켰다. 카메라 든 기자들로 그 앞이 붐볐다. 고용노동부 산업안전패트롤 차량이 지나갔다. 경찰이 많았다. 지난 설 연휴 채석장 토사가 무너져내려 일하던 사람 셋이 깔렸고, 죽어 발견됐다. 사고가 잦은 곳이었다고 뉴스 앵커가 전했다. 일하던 사람 깔려 죽은 채석장 정문 앞에 중대재해처벌법 법률 상담을 홍보하는 법무법인의 현수막이 붙었다. 그 법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할까 걱정하는 사람들은 기자들 앞에 섰다. 엄중 처벌을 촉구했다. 어렵게 만든 법이 허수아비 노릇에 그치면 안 된다고 사람들은 걱정했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손잡아 주는 일, 기대어 서는 일

by 센터 posted Dec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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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jpg

 

아들 먼저 보낸 엄마는 오늘 또 눈이 퉁퉁 부었는데, 전처럼 사람 많은 데서 자주 울지는 않았다. 3주기를 맞아 엄마는 자신을 사회운동가로 소개한다. 억울한 죽음을 막는 일을 한다. 떠난 이의 이름을 딴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과 중대 재해를 처벌하는 법을 곡절 끝에 만들었지만, 죽음이 여전하다. 김용균의 동료는 지금도 비정규직이다. 탄가루 쌓인 현장에서 언제든 자신에게 덮칠 수도 있는 참사를 예감한다. 그러니 추모는 지금도 시위가 된다. 영정은 말 없는 구호다. 아들 잃은 엄마가 동생 먼저 보낸 누나 손잡고 여기저기 다니느라 지금껏 길에서 바쁘다. 검은색 긴 패딩 점퍼 벗을 날이 없다. 국회에서 열린 추모 사진전에 가면서 지독하게 추웠던 지난해 국회 본관 앞 단식농성장을 회상한다. 그즈음부터 유가족의 영상을 기록하던 다큐멘터리 감독이 오늘 건넨 손편지를 손에 들고 엄마는 이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말하고 또 말했다. 그뿐인가. 곁을 지킨 사람들이 많았다. 주저앉지 않고 3년을 달려온 힘이다. 사람들은 기대어 선다. 손잡고 산다. 선거철이니 유력 정치인의 악수야 뻔하고 흔한 일이라지만 여전히 절박한 엄마는 두 손 포개어 꼭 쥔다. 눈 맞춘다.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 그 뻔한 말을 하느라 오래도록 잡고 섰다. 카메라 다 떠나고 돌아서는데, 엄마는 울지 않았다. 그저 삼켰던지, 낯빛이 온통 붉었다. 옆자리 울음 터진 고 김태규의 누나 손을 꼭 잡고 다독였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훈장처럼

by 센터 posted Oct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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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jpg

 

띄엄띄엄 벽에 붙어 선 사람들이 그 앞 길어질 것이 뻔한 기자회견에서 자기 순서를 기다린다. 굵고 짧은 발언을 주문하는 사회자의 요청도 따로 없었으니 마이크 쥔 사람은 할 말이 하염없고 막힘없다. 술술 쏟아진다. 해고의 부당함과 책임 있는 자들의 무책임과 헛된 약속을 읊는 일이 두세 번째도 아닐 테니, 미리 준비한 원고 같은 게 필요하지 않았다. 해고 생활이 길었다. 물 빠진 낡은 조끼엔 어느 참전용사의 훈장처럼 주렁주렁 배지가 많이 달렸다. 연대할 곳도, 기억할 것도 그간 많았다. 서는 곳마다 치열한 전선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전선에 서 있다. 해고된 지 20년, 산전수전 또 공중전을 다 겪었을 노장은 구부정한 자세로 팻말을 들고 서 있다가 햇볕에 달아오른 머리를 버릇처럼 쓸어 넘긴다. 얼마 남지 않은 흰 머리칼이 반짝거린다. 아직은 머리숱 많은 해고자가 복직판정 이행 구호를 새긴 팻말을 올려 들고 벌을 선다. 가슴팍에 바늘로 꽂아 둔 죽지 않고 일할 권리, 리본이 바람에 흔들린다. 가을볕 눈부시니 그늘이 더 짙다. 훈장처럼 주렁주렁 달린 배지가 어둠 속에서 밝았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붉은 ‘농성’

by 센터 posted Aug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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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오.jpg

 

에 안 보이면 흐릿해진다. 기억은 시간을 이기지 못해 풍화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길에 나와 싸우는 사람들은 뭐라도 한다. 굶고 기고 소리 지르는 것 같은 일 말이다. 잊히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 농성 천막이 있다. 거기, 꿈적 않는 사람이 있다. 한때 굶고 땅을 기고 점거 농성을 벌였던 그들은 오늘 또 새로운 농성 날짜 팻말을 건다. 455일, 코로나 위기와 함께 시작된 싸움이 길다. 언젠가 구호 새겨 그 앞에 걸어둔 일회용 방역 마스크엔 매연이 덕지덕지 붙어 잿빛이다. 정년이 진작에 지났다.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같은 얘기를 하고 또 한다. 부당해서라고, 또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잘못한 게 없으니 그렇다고 했다. 노조 만들어 싸운 죄가 다만 중했다. 유명 로펌을 앞세운 회사는 문제를 해결하고도 남을 큰돈을 아끼지 않았다. 지노위와 중노위의 부당해고 판정에도 행정소송이 뒤따랐다. 얼마 전 감옥에서 풀려난 어느 재벌 얘기를 하면서는 험한 소리가 따라붙었다. 개돼지 신세를 한탄했다. 안 해본 걸 꼽기가 어려운 이들은 이제 포기 않고 버티기를 하는 중이다. 낡은 천막 안에 걸어둔 달력에는 연대투쟁 일정이 빼곡하다. 행정소송 선고일도 거기 보인다. 인스턴트 커피를 찬물에 풀어 냉커피를 만든다. 양재동 법원 앞 기자회견에 갈 준비를 한다. 마스크를 고쳐 쓴다. 원래는 붉었을 농성 두 글자가 물이 다 빠져 이제는 누렇다.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의 농성 천막이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밥 냄새

by 센터 posted Jun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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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보호.jpg

 

어느 저녁 연장 가방 달그락거리며 집에 들어온 아빠 몸에선 시멘트 냄새가 났다. 발 구린내가 섞였다. 종종 술 냄새, 홍어 냄새가 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얼굴 벌건 아빠가 까칠한 턱으로 내 얼굴을 부볐다. 땀 냄새가 시큼했다. 싫다고 버둥거렸다. 그게 다 밥 냄새였다. 저기 조경관리 노동자들이 초여름 땡볕 아래 연신 허리 굽힌다. 거름 포대 둘러매고 청와대 앞 너른 화단을 훑는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동작으로 거름을 흩뿌린다. 구린내가 진동한다. 지극한 관심 덕에 잔디는, 또 거기 색색의 꽃과 온갖 풀이 쑥쑥 자란다. 뒤편 가족상이 변함없이 화목하다. 폐지 더미에 깔려 퇴근하지 못한 아빠의 죽음을 알리느라 상복 입은 딸이 양손 가지런히 모은 채 기자들 앞에 선다. 초점 흐릿한 눈으로 먼 데를 살피다 종종 고개를 숙인다. 험한 말을 참느라 꺽꺽 말이 끊긴다. 옆자리 함께 선 유가족이 등을 쓰다듬는다. 현장을 목격한 동료는 마이크를 잡았지만 끝내 말 한마디를 못 하고 만다. 지극한 관심사에 들지 못해 오늘도 사람들은 일하다 죽는다. 깔리고, 끼이고, 질식하고 떨어져 그렇다. 그 저녁 뜨뜻한 밥 한 공기를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하고 제삿밥을 받는다. 향냄새만 짙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꼿꼿하게

by 센터 posted Apr 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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꼿꼿하게.jpg

 

무성하게 자란 장미 넝쿨을 쳐내느라 가지를 잡아 비틀다 그만 가시에 찔렸다. 따끔하고 말 줄 알았는데, 종일 욱신욱신 찔린 자리가 아팠다. 다가올 여름에 빨갛게 피어 예쁠 장미는 꼿꼿한 가시를 촘촘하게 품었다. 그래선지 집 울타리에 흔했다. 철 따라 붉어 멀리서 보면 예뻤지만 가까이하기엔 위험했다. 함부로 넘나들지 말란 뜻일 테다. 길가 어디고 말 무성하게 뻗는 곳이면 거기 화분이 있다. 언젠가 대한문 앞에서 수십여 영정을 두고 해고는 살인이라고 말하던 쌍용차 해고자들 천막 뜯긴 자리엔 어느 날 화단이 들어섰고, 예쁜 꽃 무더기로 피어났다. 정부서울청사 앞 언제나 말 많은 그곳에도, 광화문 세월호 광장이라 불리던 자리에도, 여의도 쌍둥이빌딩 앞 청소 노동자 농성하고 기자회견 마이크 잡던 데에도 화분이 곧 빼곡해 그 위로 색색의 꽃들이 노랗고 붉었다. 비록 거기 가시는 없었지만, 그 품은 뜻이 뾰족했던지 안 그래도 할 말 많은 사람들은 화분 얘기를 두고두고 한다. 눈엣가시였다지, 예쁜 꼴을 한 울타리 앞에서 분을 참지 못한다. 텐트 치고 꿋꿋하게 버틴다. 종종 아니 자주 가시 돋친 말들만이 화분을 넘나든다. 저기 서울시청 정문 앞에도 화분이 빽빽하게 들어서 선을 그었다. 폴리스라인을 대신한다. 할 말 미룰 수 없는 사람들이 그 앞에 꼿꼿하게 선 채로 마이크를 들고 이따금 주먹을 뻗는다. 할 일을 미룰 수도 없는 조경 관리 노동자가 물 주느라 별 일없이 거길 지난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유실물

by 센터 posted Feb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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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물.jpg

 

라면을 먹거나, 어쩌다 텔레비전 한 번 보는 일이 세상 중요한 아이에게 아빠는 종종 단호한 목소리 앞세워 약속도 지키지 않는 ‘나쁜 사람’이다. 아차차, 마음 급한 나머지 시원스레 남발한 그 무슨 쿠폰 생각이 떠올라 할 말을 잃고 만다. 평소에 서로 약속을 잘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잔소리를 얼마나 많이 했던지, “눼눼” 하고 받아넘기는 아이의 태도를 꼬투리 잡아 들들 볶는다. 나빴다. 사과하고 약속은 지킬 일이었다. 요즈음 세간에 이런저런 희망찬 약속이 떠도는 걸 보니 곧 선거인가 싶다. 공약은 자주 빌 공자 오명을 뒤집어쓴 채, 쓰레기통에 처박혔는데, 오물 아랑곳하지 않고 거길 뒤져 자꾸 들춰내는 탐정 같은 사람들이 있다. 언젠가 그 한마디에 웃었고, 지금 흐릿한 약속에 우는 사람들이다. 노사가 합의한 것을 지키라는 뻔한 말을 하느라 밥을 굶는다. 묵은 약속을 다시 읽는 동안 목이 쉰다. 잘려 나간다. 대권행 고속열차가 곧 출발한다. 선물 보따리 같은 약속이 어김없이 짐칸에 가득 실릴 텐데, 종착역에 이르러 유실물로 남을 것들이 적지 않다는 걸 사람들이 안다. 귀중한 것도 아니었던지 찾으러 오지 않으면 폐기될 운명인 것도 안다. 그럼에도 다들 여태 살면서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배운 적은 없을 테니 유실물 센터 앞에서 농성한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인지부조화

by 센터 posted Oct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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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통.jpg


오토바이엔 두 명이 타고 있었는데, 그중 뒤쪽에 앉았던 사람이 가게 앞까지 날아왔다고 바퀴 고치던 자전거가게 사장님이 말했다. 바퀴에 바람 넣느라 그 앞에 섰던 사람들은 넘어진 오토바이에서 뜯겨나간 잔해와 배달통을 튀어나와 날아간 포장 음식 따위를 살펴보다 혀를 찼다. 거길 지나던 동네 사람들에게 사고 경위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틈틈이 인도 한편 구석에 쭈그려 앉아있던 라이더를 살펴봤다. 얹어 배달하던 음식 보따리 여러 개엔 붉은 국물이 줄줄 흘렀다. 지켜보던 아빠는 자전거 뗀 지 얼마 안 된 아이에게 안전모를 꼭 써야 한다고,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고 잔소리했다. 좁은 골목길을 빠른 속도로 내달리던 배달 오토바이에 놀라 아이 손을 급하게 잡아끈 아빠는 씩씩거리면서 저만치 간 오토바이 꽁무니를 흘겨본다. 저녁 밥상을 차리려 냉장고를 뒤지던 아빠는 다 귀찮아 배달 앱을 뒤진다. 예상 시간이 길다.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아이한테는 금방 올 거라고만 거듭 말했다. 오토바이 소리 들려 나가보면 옆집 것이었다. 늦어서 죄송하다는 배달 기사의 말에 괜찮다고 했는데, 거기 짜증이 잔뜩 묻었다. 그리고 일 나간 아빠는 어디 배달플랫폼 업체 본사며 국회 앞에서 헬멧 쓴 라이더의 이야기를 듣고 찍는다. 최소한의 안전망 없이 위험한 질주에 내몰린 특수고용 노동자의 사연 전하던 사람을 그 앞에 세워둔 오토바이 꽁무니와 엮어 사진에 담는다.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는 요지의 설명을 보탠다. 조화롭지 못한 여러 생각 보따리가 머릿속을 내달린다. 오늘도 배달 오토바이가 내달린다. 균형 잃은 배달통에서 붉은 국물이 쏟아진다. 코로나 시대 일상다반사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발전 없다

by 센터 posted Aug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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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없다.jpg


거북이 등껍질 같은 가방을 멘 라이더는 토끼처럼 빨라야 했다. 재빨리 눈을 굴려 콜을 확인해야 했고, 밥이 식기 전에 자전거와 오토바이 타고 내달려야 했다. 신호등 붉은빛은 밥 식는 신호였고, 평점 깎이는 표시였다. 차와 차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좁은 틈이 갈 길이었고, 살길이었다. 세차게 쏟아지던 장맛비 속에서도 페달 질을, 액셀러레이터 당기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국이 식기 전에, 아이스아메리카노 얼음이 녹기 전에 가야만 했다. 넘어지면 국물 걱정, 일어나면 시간 걱정, 다치면 치료비 걱정을 했다. 새빨간 떡볶이 국물 같은 피가 흘러도 떡이 불기 전에, 튀김이 눅눅해지기 전에 목적지에 가야 했으니 그들은 거북이 등짐 지고 내달렸다. 그러는 사이사이 배차 기회를 잡기 위해 스마트폰을 살펴야 했다. 배터리는 빨리 닳았다. 보조배터리 크고 묵직한 것을 밥 가방 한구석에 넣고 긴 줄로 연결해 충전해 가며 살펴야 했다. 충전 선이 곧 밥줄이었다. 그러니 그는 노동 3권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자리에 서서도 그 줄을 치렁치렁 달고 있었다. 할 말을 그 끝 스마트폰에 적어 읽었다. 플랫폼이니, 4차 산업이니 하는 수익 모델은 빠르게 발전하는가 본데, 일하는 사람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움직임이 느렸다. 발전이 없다. 3일이면 나올 노조 설립신고증을 받기 위해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를 그들은 걱정했다. 기자회견이 끝났고 털털거리던 발전기가 멈췄다. 라이더는 잠시 내려둔 밥 가방을 다시 멨고, 충전선 길게 늘어진 스마트폰을 살피느라 거기 노동청 앞 화단 턱에 한동안 꾸부정히 앉았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언제나 분수처럼

by 센터 posted Apr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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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금지.jpg


개나리 꽃망울 터지듯 와글와글 피어나던 아이들 웃음꽃이 더는 광장에 없다. 솟구치는 분수를 그냥 지나칠 리 없는 아이들 뒤꽁무니를 쫓다 그만 포기해 버린 엄마 아빠의 걱정 섞인 외침이 들리지 않는다. 4월이면 시간표 따라 어김없던 일인데, 기약 없는 일이 됐다. 언젠가 잘게 부서진 물방울이 낮은 햇볕 머금어 무지개가 뜨면, 갖은 색깔 옷차림 아이들이 그 아래를 우당탕 뛰었다. 그리고 지금 잿빛 돌바닥엔 도심 내 집회 금지를 알리는 알림판만이 바람을 견딘다. 기약 없는 분수를 정비하느라 한 시설관리 노동자가 허리 굽혔다. 새로운 일상은 예고도 없이 스몄다. 전문가들은 앞다퉈 닥쳐올 경제 위기를 예고했다. 바닥에선 이제 아우성이 솟구친다. 해고 금지 팻말 든 사람들이 광장 언저리에서 이미 닥친 현실을 증언했다. 언젠가 그 바닥의 분수처럼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옛날이야기

by 센터 posted Feb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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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거짓말.jpg


아이가 한 번씩 뻔한 거짓말을 한다. 곧장 타이르기는 피하고 싶었으니 옛날이야기를 들려줄 시간이다. 그러니까 옛날에 말이야 양치기 소녀가 있었는데···. 두어 번은 잘 듣더니 금세 지겨운 모양이다. 벌거벗은 임금님과 피노키오 이야기로 돌려막았다. 거짓말은 나쁘다는 걸 알려 주는 맞춤형 이야기들이다. 얼마간 효과가 있었다. 일하며 찍은 사진을 모니터에 띄워 놓고 정리하는데, 피노키오를 알아본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이게 뭐냐고 물었다. 글 읽는 아이 앞에서 거짓말로 둘러댈 수도 없어 우물쭈물 설명하는데 쉽지가 않았다. 기다란 코에 적힌 노동기본권 보장이며 비정규직 제로시대 같은 것들을 말해주느라 새로운 피노키오 이야기를 지어내야만 했다. 일하다 죽은 사람들 이야기에 이르니 이어 가기가 버거웠다.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아니었으니 더욱 그랬다. 여러 처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켜지지 않아 거짓말이 돼버린 약속을 줄줄이 읊었다. 촛불 행진을 선언했다. 생선 굽느라 켜둔 촛불을 보고도 광화문광장 구호를 떠올리는 아이가 저기 사진 속에 적힌 촛불 행진에 관해서도 물었다. 그때와는 좀 다른 이야기지만 같은 것이기도 하다며 혼잣말을 하고 말았다. 옛날 옛적에 사람들이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는데···. 훗날 광장의 촛불 이야기는 어떤 교훈을 품게 될까 생각해 봤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겨울, 거울

by 센터 posted Jan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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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거울.jpg


거기 액자에 김용균 아닌 누가 들었대도 이상할 것 없는 세상의 광장에서 운이 좋아 죽지 않은 그의 동료가 유행 지난 롱패딩을 입고 서성인다. 비질하고 꺼진 촛불에 불 놓아 살린다. 꺼지지 않는 향에서 연기 오르는 동안 회색빛 재가 툭툭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 쌓여 간다. 어느새 수북했다. 철을 모르고 싱싱한 국화가 또한 그 앞에 쌓였다. 뒷벽에 빼곡하게 붙은 온갖 추모의 글은 사진을 인쇄해 붙인 것이니 진짜가 아니었다. 수년 전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붙은 접착식 메모지는 지금 다른 이의 영정 뒤에 병풍처럼 붙어 묵은 추모를 새롭게 이어 간다. “당신의 죽음은 사회구조적인 죽음입니다.”라는 말이 다만 진짜였다. 달라진 것 없는 죽음 뒤에 붙은 추모 문구가 달라질 리 없었다. 촛불이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렸다. 외투 주머니에 손 넣은 채 잔뜩 움츠린 사람들이 그 앞 횡단보도를 끝없이 오갔다. 거기 누가 들어도 어색할 것 없는 영정 액자에 빛 들어 수은주 새겨 넣은 등대 조형물이 비친다. 김용균을 처음 발견한 동료가 이불 같은 점퍼에 손 넣은 채 죽음 옆자리에 머문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사라져야 할 것들

by 센터 posted Oct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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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처럼.jpg


한때 크고 무거운 카메라와 렌즈는 기자증을 대신하곤 했다. 공연장이나 공사 현장에서 형광 스태프 조끼가 그러했듯 말이다. 좋은 촬영 조건을 찾아 무대에 거리낌 없이 오른 건 대개 큰 카메라였다. 스마트폰은 눈치를 살펴 주저했다. 오랜 관습이었으나 곧 뒤집어질 구습이기도 했다. 누구나가 찍는다. 저마다의 언로를 가진 사람들은 이제 대형 집회 무대에 거리낌 없이 올라 스마트폰과 태블릿 피시와 소형 캠코더로 찍는다. 생중계한다. 시청자와 독자를 지닌 미디어는 적어도 그 자리에서 눈치 보지 않고 과감했다. 주최 측은 1인 미디어를 차별하지 않았다. 기자만이 찍고 알린다는 건 낡은 질서에 들었다. 사법적폐 청산을 외치던 촛불집회엔 구호가 다양했는데, 그중 언론 개혁 팻말이 적지 않았다. 기레기 표현이 잦았다. 엘이디 촛불을 든 사람들이 크고 무거운 카메라 든 기자들에게 똑바로 하라고 질책했다. 드론이 날아 담은 촛불 파도 영상이 무대 위 유튜브 생중계 화면에 흘렀다. 천박한 구시대 유물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고 최후통첩에 적었다. 무대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곧 사라졌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맨 앞자리에서

by 센터 posted Aug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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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jpg


진상은 낯설지 않았다. 이미 구호에 들어 오래 외친 말들이 화면에서 흘렀다. 위험은 아래로 아래로 흘렀다고 발표자가 말했다. 하청 또 재하청을 복잡한 사슬을 타고 흘러내렸다. 맨 앞자리에서 지켜보던 엄마 눈에서 물이 흘렀다. 마르질 않았다. 돈 때문이었음을 조사 결과는 말해줬다. 분할되고, 외주화된 공정에서 새로운 위험이 발생했다고도 조사위는 지적했다. 청년 노동자들은 오늘도 거기 일급 발암물질 뿌옇게 휘날리는 곳에서 일한다. 바뀐 게 많지 않다고 앞자리 선 이가 전했다. 엄마는 맨 앞자리에 앉아 두툼한 자료집 구석에 메모를 꾹꾹 남긴다. 울음 꾹꾹 참느라 자꾸만 고개를 떨궜다. 그 앞 화면에 자전거 타고 출근하는 생전의 김용균 씨 사진이 멈췄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가 8월 19일 진상조사 결과와 권고안을 발표했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맨 앞에 오토바이

by 센터 posted Jun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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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에세이.jpg


이런저런 일이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았던 하루, 퇴근길 상념이 짙다. 종일 추적거리던 비가 그치고 저 멀리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빛이 짙었다. 교차로에 빨간불 들어와 급히 멈춰 섰다. ‘신홋발’이 마음 같지 않아 혼잣말이 툭 튀어나왔는데 과했다. 그래도 맨 앞이구나, 되지도 않는 이유 들어 마음 추슬렀다. 동네 친구 집에 맡겨 둔 아이 생각에 급했다. 어느새 오토바이 한 대가 앞자리 섰다. 배달 노동자였다. 중학교 시절 방학이면 신문 배달 알바를 했다. 이른 새벽 지국으로 나가 온갖 광고 전단부터 끼워 넣었다. 책처럼 두툼해진 신문을 자전거에 싣고 한겨울 미끄럽던 골목길을 누볐다. 쓱 접어 슉 던지면 이층집 현관 앞에 착 떨어지곤 했으니 일이 손에 붙을 때였다. 반쯤 돌렸을까, 자전거 바퀴가 펑크 났다. 별수도 없어 끌고 걷고 달렸다. 지쳐 돌아가던 길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다른 신문 지국이었는데, 오토바이 내어준다면서 꾀었다. 확 끌렸지만 거절하고 말았다. 오래전 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로 크게 다쳐 병원 생활이 길었는데, 그 뒤로 우리 집에서 바퀴 두 개짜리 차 얘긴 금기였다. 곧 신호가 바뀌었고, 오토바이는 치고 나갔다. 곡예하듯 차 사이 좁은 틈을 비집고 달려 멀어졌다. 신호등 맨 앞자리엔 언제나 배달 오토바이가 있었다. 밥 차리기엔 늦어 배달 앱을 뒤적거렸다.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밤늦도록 집 앞 골목에 울렸다. 쓰는 사람은 많은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고,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이 어느 자리에서 말했다. 만나면 누가 식물인간이 됐다더라, 죽었다더라 얘기를 나눈다고도 했다. 불나방에 비유했다. 노조할 권리 보장을 그 앞자리 정치인과 정부 관료에게 호소했다. 신호가 바뀌었고 맨 앞자리 오토바이가 내달린다. 거기 배달통에 책임과 위험을 가득 싣고, 식지 않은 음식을 나른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오버홀

by 센터 posted Apr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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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화력.jpg


둥글게 말린 컨베이어벨트에 탄가루 잔뜩 앉았다. 손바닥 자국이 찌글찌글 남았다. 사고 현장이다.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이라고 회사 사람은 강조했고 들어가기도 힘든 곳이라고, 몸 굽혀 현장 살피던 조사위원은 말했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함께 일했던 동료가 사지에서 증언했다. 그의 안전모엔 이제 멀끔한 헤드랜턴이 붙어 밝았다. 어두운 밤, 굉음을 내며 돌아가던 벨트는 생목숨을 삼키고서야 멈췄다. 주황색 안전제일 벨트가 뒤늦게 그 앞을 막았다. 위험, 접근금지, 회전체 주의, 또 귀마개와 마스크와 보호구 착용을 알리는 온갖 안내문이 탄가루 덮어쓴 채 거기 많았다. 무고장 운전은 우리의 약속이라고 전광판에서 밝게 빛나던 문구가 또한 여기저기 많았다. 중앙관제실 벽에 깜빡거리던 수치는 운탄 벨트와 보일러와 터빈의 현재 상태를 소상히 알렸다. 거기 어딘가에 끼여 부서진 몸뚱아리의 상태를 살피는 항목은 없었다. 무고장 운전일수 목표치와 현재 달성일수를 알리는 전광판이 제일 위에서 밝았다. 발전소는 오버홀, 계획예방정비 공사 중이었다. 일정 주기마다 완전히 분해해서 점검한다. 갑작스러운 고장을 막기 위해서다. 죽음을 막기 위한 대수선 작업이 먼저다. 원죄 깊은 엄마가 호소하느라 여기저기서 바쁘다. 목이 쉰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노래 이야기

by 센터 posted Feb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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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트콜텍.jpg


서울 강서구 등촌동 그늘진 골목이 바람길이라 거기 덩그러니 웅크린 천막이 울었다. 현수막이 널을 뛰고 손팻말이 날았다. 미세먼지 가신 하늘이 쨍했다. 해 들지 않는 천막에서 기타 소리가 울렸다. 노래가 따랐다. 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4천 390일, 과연 그들의 해고 이야기는 끝을 몰라 티도 나지 않는 끝자리를 하나 더 보탰다. 민들레꽃처럼 살아야 한다. 바람에 홀씨 날려 여기저기 떠다니다 아스팔트 좁은 틈에 뿌리 내리기를 반복했다. 인천 어느 문 닫은 공장 앞에서, 여의도와 광화문에서, 또 여기 등촌동까지 거친 틈에 살았다. 13년, 억세고 질기기로 민들레 못지않았다. 홀로 가는 길이며 또 무슨 흘러간 옛 노래 메들리가 돌고 돌았다. 광야에서, 언젠가 촛불광장의 애창곡도 흘렀다. 스트로크는 불안했고, 코드 옮겨 잡는 손가락이 느렸다. 높은 음은 버거워 가성에 기댔다. 만들 줄은 알았지만 다루는 일이 또 달랐다. 늙어 손가락이 맘 같지 않다고, 기타 연주 6년차 이인근 씨가 말했다. 거리에서 긴 밤 지새우느라 비닐마다 맺힌 이슬이 하나둘 뭉쳐 흘러내렸다. 오래 끌던 문제들이 하나둘 풀리는 걸 보면서 우리도 잘돼야지 싶었다고. 농성 신기록은 도대체가 명예롭지 않은 일이라고 흰머리 긁던 임재춘 씨가 말했다. 그 머리도 한때 검었다. 솔잎처럼 푸르른 시절 다 갔지만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상록수도 거기 낡은 악보첩 어딘가에 들지 않았던가. 다시 돌고,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인가. 다 늙은 기타 노동자의 노래 이야기가 끝을 몰라 하염없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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