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가족 돌봄 청년 지원책

by 센터 posted Dec 23,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피고인은 피해자의 외동아들로서 약 10년 전부터 피해자와 둘이서 살고 있었다. 피해자는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치료비 부담 등의 사정으로 퇴원하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었다. ··· 피고인은 피해자를 돌보지 아니하면 피해자가 사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아무런 기약도 없이 2시간 간격으로 피해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돌보면서 살기는 어렵고, 경제적으로도 힘드니 피해자가 사망하도록 내버려 두어야겠다.’라고 생각하여 … 치료식과 물, 처방 약의 제공을 중단하고 피해자의 방에 전혀 들어가지 아니하여 피해자를 방치하였다. 그 결과 피해자는 그 무렵 심한 영양실조 상태에서 폐렴 등 발병으로 사망하였다. … 피고인을 징역 4년에 처한다.”

(대구지방법원, 2021)

 

뇌 질환으로 거동이 불가능한 아버지를 돌보던 21세 남성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공장에서 일하다 뇌출혈로 쓰러져 온몸이 마비됐다. 병원에서 7개월간 치료를 받았으나 병원비가 2천만 원에 이르자 퇴원 후 집으로 모셨다. 월세가 밀려 있었고 가스가 끊겼고 얼마 안 가 전화가 끊겼다. 그는 입대를 위해서 휴학한 상태였다. 그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구했지만 두 시간에 한 번씩 아버지의 자세를 바꿔줘야 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퇴원 후 일주일이 지난 시점 아버지에게 식사와 물 지급을 끊고 방 안에 방치했다. 결국 그에게 존속 살해 유죄판결이 내려지면서 한국 사회 안에 영 케어러young carer, 가족 돌봄 청년 지원책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오죽하면’이라는 말로 그를 변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만약 이 청년이 다른 사회에서 태어나 가족 돌봄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고민 탓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나마 가장 잘 아는 나라인 스웨덴의 가족 돌봄 청(소)년의 현황과 지원책을 찾아보았다. 뜻밖에도 스웨덴에는 가족 돌봄 청(소)년 지원책이 없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표현할 정도로 생애 주기 전반에 걸쳐 촘촘한 복지를 펼치고 있는 스웨덴에 가족 내 장애가 있는 구성원을 돌보는 청(소)년에 대한 지원이 없다니. 이쯤에서 반전을 기대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스웨덴에는 지원 대상에 해당하는 청소년이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럴 리가. 그런 사회는 없다. 가족 구성원을 돌보거나, 가계 경제에 도움을 주기 위해 일을 하는 아동과 청소년은 스웨덴 사회 곳곳에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도 최근 들어서야 이들 가족 돌봄 청소년 지원책이 등장하기 시작한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스웨덴 사회의 인식 때문이다. 가족 돌봄 아동 또는 청소년은 이상적인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웨덴 사회가 인식하는 어린이는 어른의 돌봄과 보호를 받으며 자란다. 가족을 돌본다거나 생계를 부양하는 등의 책임을 지는 청소년은 사회가 인식하고 있는 ‘정상’ 유년기에 대한 부정이자 도전이다.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가족 돌봄 성인’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 지원책 마련은 계속됐음에도, ‘가족 돌봄 청년’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빠져있었다.

 

스웨덴에 가족 돌봄 청소년에 대한 지원이 없는 두 번째 이유는, 실제로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의 절대 수가 적기 때문이다. 앞에 인용한 사건은 스웨덴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픈 성인을 보살피는 것은 일차적으로 가족의 책임이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병원을 나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이 아버지에 대한 돌봄을 중단한 사건의 발단은 치료비 부담으로 입원해 있던 아버지를 병원에서 집으로 모신 후 혼자 간병하게 되면서부터다. 연간 병원비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는 스웨덴의 경우 큰 병에 걸리거나 수술을 한다고 해도 연간 병원비 상한액 15만 원(1,150크로나), 처방 약값 상한액 30만 원(2,300크로나), 합쳐서 45만 원 이상 내지 않는다. 대한민국에도 일정 금액 이상의 의료비를 지출하면 건강보험공단에 초과 금액을 환급해주는 본인부담상한제가 있지만, 비급여 항목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주요 질환 중에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병이 훨씬 많다.

 

지난 몇 년 언론을 통해 우리 사회 안에 ‘간병 살인’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복지부는 지난 2월 영 케어러 지원 대책 방안을 수립하고 4월부터 약 한 달간 중·고등·대학교, 청년센터, 행정복지센터 등을 대상으로 모바일로 실태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참가자 4만 4천832명 중 복지부는 731명을 영 케어러 지원 대상으로 추렸다. 이는 조사대상의 1.6%에 해당하는 숫자다. 참고로 스웨덴의 15세 인구 중 영 케어러 비율이 최소 2.5%다. 일찍이 영 케어러에 대한 조사 연구가 진행된 영국과 호주를 비롯해 유럽과 미국의 통계를 보면 대략 해당 인구의 최대 7%를 가족 돌봄 청(소)년으로 추정한다. 대한민국에 그 공식을 적용하면 약 18~29만 명이다. 우리 사회에 도움이 필요한 영 케어러가 훨씬 많을 수 있다는 뜻이다.

 

스웨덴 내 가족 돌봄 청소년 지원책은 지금 막 시작되었다. 북유럽의 관대한 복지 제도는 온정적이고 인간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차가운 합리주의의 산물이다. 당위적이거나 도덕적인 접근이 아니다. 분명한 기대 효과가 있다. 근거 없이는 지원도 없다.

 

지난 10년간 스웨덴은 가족 돌봄 청소년 입법을 위한 방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특정 연도에 태어난 인구 전체를 대상으로 부모의 건강과 유년기 환경이 성인이 되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청소년기 부모 중 한 명 이상이 정신질환이나 중독 등으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이들의 건강과 전체평균을 분석했다. 전체 인구 중 청소년기 부모가 질병으로 입원하거나 치료받은 비율이 해당 인구의 7.8%다. 이들의 학업중단율은 평균치의 두 배, 성인이 되어 정신과 치료를 받은 비율 두 배,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 비율이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이들의 4~5배에 이르렀다. 만약 이들의 유년기에 사회가 개입해 성인이 되었을 때 정신질환과 알코올 중독 비율을 평균치로 낮춘다면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매년 350억 크로나(4.5조 원) 줄일 수 있다 추산했다. 더불어 청년층의 정신 건강은 경제 성장과 사회 발달의 중요한 동력임을 증명하는 연구도 있었다. 가족 돌봄 청소년을 지원하기 시작한 이유는 사회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단단한 근거가 있다면 정권에 따라 정책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고용 조건에 따른 노동자의 건강, 사업장 안전과 생산성의 상관관계, 유급육아휴직 사용 비율과 출산율··· . 연구 주제를 찾자면 끝도 없다. 근거를 갖고 주장해야 힘이 생긴다. 새해에는 더 부지런히 연구하고 널리 알려야겠다. 내년에는 예고된 불황이 기다리고 있다지만 불황이 내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모두 나를 위한, 모두를 위한 새해 소망 하나씩 품으시길 바란다. HAPPY NEW YEAR 2023!

?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