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노동정치와 우리 노동운동이 생각할 것들

by 센터 posted Oct 3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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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교 플랫폼C 동아시아팀 활동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당-국가 체제를 구축해온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노동조합이 집정당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건국을 위한 대중운동의 동력은 노동운동 역사와 무관하지 않지만, 국가주도의 발전주의 경제성장 논리를 내재화한 이후의 노동조합은 독립성과 자주성을 상당히 잃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0년부터 코로나19 이전까지 중국 광둥성을 비롯한 연안 지대에서는 대규모 쟁의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더구나 이 지역은 아이폰과 IBM, 혼다자동차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 기업들의 하청 공장이 밀집한 ‘세계의 공장’이었기 때문에, 쟁의가 발생했을 때 세계적인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반해 베트남의 노동정치는 국내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많은 사람이 중국과 유사한 형태의 노동정치 체제를 갖고 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이는 우선 한국 사회운동이 타국의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기도 하거니와, 서구권이 아닌 소위 ‘제3세계’ 반주변부 국가들에 대해서는 더 시큰둥했던 것에서 기인한다. 우리 노동운동은 국제사업을 여전히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는 일’정도로만 사고할 뿐, 아래로부터의 국제연대 구축을 통한 대자본 대응 전략을 밀도 높게 고민한 바 없다.

한데 자본의 입장에선 다르다. 지난 10년 사이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최대 제조기업들이 베트남 노동시장으로 진출하고 한국 자본의 베트남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베트남 노동정치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도는 크게 증가했다. 당장 삼성 핸드폰라인이 베트남으로 옮겨지면서, 1~3차 하청 공장들은 원청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국 기업의 베트남 투자는 2019년 기준 누적 626억 달러(73조 원)로, 베트남에 대한 전체 FDI(외국인직접투자) 중 18%를 차지했다. 2020년 말 기준 베트남 전체 수출액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긴 이유는 어디까지나 ‘저렴한 인건비’이기 때문에, 노동쟁의를 통제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베트남 내 한국 기업에서 발생한 파업

 

베트남노총Hệ thống tổ chức Công đoàn Việt Nam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 기업에서 일어난 파업은 약 800여 건으로 전체의 26%에 달한다. 2014년 박닌 시에서만 28건의 파업이 발생했는데, 이 중 절반이 넘는 16건이 한국기업에서였다. 한국 기업의 노동법 위반, 과도한 노동강도와 장시간 노동, 관리자들의 강압적인 태도가 원인으로 지적됐다.

2010년 12월 동나이성에 위치한 태광실업 베트남공장에선 무려 2만 명의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에 항의해 이틀간 파업했다. 경영진이 설날 상여금을 약속해놓고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4년 A공장에서는 한 생산 라인에 소위 ‘화장실 카드’를 1개만 비치해 놓고 여러 사람이 동시에 화장실에 가지 못하도록 해 파업이 일어나기도 했고, B공장에선 노동자 1명에게 화장실에 갈 수있는 티켓을 2개씩 지급해 출입을 제한하기도 했다. C기업은 화장실을 가게해달라고 울며 애원하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옐로카드’를 부여해 임금 3달러를 삭감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2017년 삼성 디스플레이 공장을 짓던 삼성물산 현장에서는 2천 명의 노동자들이 점심시간을 기해 집단적인 파업을 벌였다. 당일 베트남 건설 노동자들은 식사를 마치고 현장 출입구에서 지문 기록을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이때 한 40대 노동자가 갑자기 줄에서 사라졌다. 보안요원들이 경비실 쪽으로 끌고 간것이다. 그 안에서 폭행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료 노동자들은 분노하며 보안요원들을 쫓아갔고, 2천 명이 운집해 함성과 구호를 외치는 등 큰 혼란이 발생했다. 하루 만에 해결된 이 파업 사건은 베트남 노동정치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단면 중 하나다.

 

살쾡이 파업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대응

 

1986년 도이모이Đổi mới 정책 실시 이후 베트남 노동자들은 독립 노조 건설보다는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지도부 없는 살쾡이 파업wildcat strike 전술을 추구해왔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발생한 총 1,998건의 파업(2011년에만 1천 회의 파업이 발생했다)은 모두 불법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파업의 요건과 절차가 복잡해 합법 파업의 실행 자체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투쟁 전술은 노동자들이 자본으로부터 일정한 양보를 얻어 내는 데어느 정도 성공했다. 멈추지 않는 노동자 계급의 투쟁 압력에 직면한 정부와 자본은 이런 흐름을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에 관한 과제를 안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2010년대 후반 베트남 정부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체결을 시도했던 점은 적어도 독립적인 노동조합 제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016년 베트남 정부가 당시 오바마 미 행정부와 약속한 내용에 따르면, 기존에는 노총을 통해서만 노조 가입이 가능했지만, 법 개정을 통해 복수노조 및 초기업단위 노조의 설립을 보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베트남 정부는 TPP가 베트남 경제에 가져올 ‘달콤한’(?) 미래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고심 끝에 ‘결사의 자유’와 관련된 법 개정을 약속한 것이었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는 미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TPP 탈퇴를 선언하면서 전망이 불투명해졌고, 베트남 정부가 협약을 지킬 책임 역시 모호해졌다. 게다가 해고가 어려운 베트남 노동법에 불만을 느꼈던 삼성 등 한국 자본은 노조 설립과 파업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이 시기 삼성 현지법인에 소속된 한 임원은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복수노조를 허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트남 정부 입장에서는 베트남 노동자 계급의 멈추지 않는 살쾡이 파업은 분명 골칫거리였고, 이는 단순히 금지하고 무시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해외 자본의 투자를 유치하고자 하는 정부 입장에선 이런 파업은 여전히 문제이며, 게다가 서방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과정에서 ‘결사의 자유’ 보장은 피할 수 없는 요구다.

이와 같은 국제정치와 노동정치, 자본의 이해관계가 뒤엉킨 논쟁과 절충 끝에 2021년 봄, 노동법 개정이 이뤄졌다. 2022년 1월 1일부터 베트남 노동자는 베트남노총이 아닌 독자적인 ‘노동자 대표단체’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는 노동권을 신장하거나, 결사의 자유를 옹호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여기서 ‘대표단체’란 기업 수준에 국한된 조직이며, 전국적인 연맹을 결성할 수 없다. 옛 노동법의 경우 단위 기업에 오직 단수의 노동조합만을 허용했는데, 개정된 법에서 노조는 기존의 법적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노조가 설립되면 베트남노총에 속하게 되며, 단체교섭권·단체협약권·합법적 쟁의권을 갖는 것으로 했다.

또 다른 변화는 공식 노동조합 외에도 노동자 대표단체를 설립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베트남노총에 편입되지는 않지만 관할 국가기관에 등록하여야 하고, 노동조합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와 같은 복수의 노동자조직이 가능하기 위해 개정 노동법은 단체교섭 상 노동자조직들의 교섭 창구단일화 규율 역시 새롭게 도입했고, 단체협상권을 가진 노동자조직(노조 또는 노동자대표단체)이 사업장 내 노동자의 과반수 찬성을 얻으면 파업을 주도할 수 있게 했다. 다시 말해 노동자 대표단체 설립이 가능해진 것은 노동자 계급의 요구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기습적이고 폭발적이란 성격 때문에 기업들에게 더 불편하게 여겨지는 살쾡이 파업을 완화하고 유화시키기 위해 집정당 스스로 고안한 제도화 솔루션이라 할 수 있다.

노총 내부의 대응도 나왔다. 첫째는 베트남노총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었다. 사실 베트남노총은 헌법이 규정한 정부기관에 가깝지만, 노동부 산하기관은 아니다. 두 조직은 서로 독립적이며, 노총은 국가임금위원회에 참가하고 임금협상을 벌이기도 한다. 물론 노동자들은 노총이 자신들의 권리를 지켜 주리라 생각하지도, 그렇다고 큰 불만을 갖고 있지도 않다. 그저 명절 선물이나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처럼 인식될 뿐이다. 베트남 노동문제 연구자 조 버클리Joe Buckley는 “베트남노총은 마치 인적자원부 같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노총은 실제 노동권 증진을 위해 정책 로비 활동을 펼치기도 하고, 법정 노동시간 감축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기도 한다. 심지어 2019년에는 정부를 압박해 노조세union tax를 낮추지 못하도록 저지하기도 했다. 베트남노총의 이런 모순적인 성격은 러시아혁명 이후 노조의 역할에 대한 현실사회주의 내부의 모순적인 견해가 절충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두 번째 방책은 노총이 자생적으로 저항하는 노동자 계급을 포괄하는 것으로, 광범위한 조직화 사업이 펼쳐진 배경이 여기에 있다. 기존에 조직화에 무관심했던 노총은 지난 10년 동안 현장의 노동자들과 직접 대화하고, 지회 설립을 지원해왔다. 이에 따라 조합원 수가 2003년 463만 명에서 2006년 550만 명, 2012년 727만 명, 2020년 1,030만 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런 조합원 수 증가가 그 자체로 베트남노총의 조직력 강화를 의미하진 않는다.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가

 

새로 시행된 ‘노동자 대표단체’ 제도는 어떤 미래를 불러올까? 현실 조건에서 노동자 대표단체가 독립적 주체로 강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노총 내에 보수파가 있다면 진보주의자들도 있고, 이들은 노동자 대표단체라는 새로운 제도를 활용해 노총이 노동자들을 더 잘 대표할 수 있도록 스스로 혁신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가령 2021년 중부, 베트남노총의 응에안성Nghệ An province 지역본부 부위원장은 “노동자에 대한 대표성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노동자를 더 많이 조직하고 파업의 선두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들이 베트남노총 내의 친노동파, 진보주의자들이라 할 수있다. 이들은 파업을 맞닥뜨릴 때 노동자들의 요구안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하고, 노총 내에서 적극적으로 논쟁한다. 앞으로 베트남노총 내부의 노동정치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베트남 노동정치의 미래 역시 달라질 거라고 볼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베트남 노동운동과의 국제연대는 어려운 과제다. 베트남의 한국 기업에 80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하고 있고 국내에도 베트남 출신 이주민만 10만 명이 넘지만, 이들과의 교류 관계를 형성하고 노동조합 조직화까지 도모해보자는 아이디어는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우선은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하고, 현지 상황을 고려해 활동가와 공식·비공식을 아우르는 네트워킹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민주적이고 조직적인 노동자운동이 활성화되어야 베트남과 한국 노동자 모두의 노동권 향상과 노동자운동의 혁신 역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저렴한 인건비’와 ‘민족주의’를 빌미 삼아 양국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자본의 전략에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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