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아시아 노동조합, 기업별 노조주의 극복이 관건

by 센터 posted Apr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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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인더스트리올 글로벌노조 컨설턴트

 

 

비정규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조직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조직 구조를 기업별 노조에서 산업별 노조로 전환시키는 게 필수적이다. 아시아 노동조합을 경험하면서 날마다 강해지는 생각이다. 여기서 말하는 산업별 노조는 공장이나 사무실 혹은 특정 기업의 틀을 벗어나 산업이나 업종 혹은 지역을 감싸 안는 노동자를 조직하는 노동조합을 뜻한다.

 

‘무늬만 산별’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민주노총 가맹 조직에 속한 조합원 90% 이상이 산업별 노조에 속해 있다. 한국노총의 경우에도 가맹 조직 조합원 중 과반 정도가 산업별 노조에 속해 있다. 사업장이나 기업 수준을 뛰어넘어 산업별 수준에서 형성된 단체교섭과 노사관계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지만, 노동조합의 주체적 측면에서 산업별 노조운동은 보다 성숙한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기업별 노조주의enterprise unionism라는 대세를 노동운동의 주체적 노력으로 산업별 노조주의industrial unionism로 전환시킨 경우는 세계적으로 한국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한국 노동운동의 과제는 주체를 넘어 객체, 즉 사용자를 산업이라는 큰 마당으로 호출하는 것이다. 이는 산업별 수준의 노사관계 형성과 단체교섭 진행으로 요약할 수 있다. 

 

‘노조-연맹-총연맹’, 기업별 노조주의 체계

 

아시아 각국의 노동조합운동을 조직 구조 측면에서 살펴보면 그 대세는 기업별 노조주의라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은 사업장이나 기업 단위에 존재한다. 당연하게 조합원은 해당 사업장이나 기업에 고용된 종업원이다. 같은 기업에 속하더라도 사업장별로 노동조합이 독립적으로 결성된 경우도 있다. 이 노동조합들이 모여 연맹체를 구성한다. 주로 비슷한 업종이나 산업을 토대로 연맹federation이 만들어진다. 여러 연맹이 모여 총연맹confederation을 이룬다. 이렇게 기업별 노조주의는 사업장이나 기업 단위의 노동조합, 업종이나 산업 수준의 연맹, 그리고 중앙의 총연맹이라는 체계를 가진다. 

 

일본, 인디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필리핀 등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가 이러하다. 이들 나라 가운데 일본을 빼면 단체교섭은 전적으로 기업별 노조에서 이뤄진다. 일본에서는 산업별 연맹이 소속된 기업별 노조들을 지도하여 단체교섭을 기획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일본을 뺀 나머지 나라들의 경우 연맹은 단체교섭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다. 연맹이 가진 인력과 자원이 부실해서이기도 하지만, 연맹 지도부나 활동가 대부분이 단체교섭을 연맹의 역할로 여기지 않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단체교섭은 기업별 노조가 하는 일이고, 시위나 집회 혹은 로비가 산업별 연맹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몇몇 경우 새로운 사업장에 대한 조직화를 연맹의 임무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단체교섭을 진행하는 기업별 노조를 위해 연맹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인식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트남, ‘지역 노조주의’와 ‘기업 노조주의’의 결합‘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이행한 베트남은 지역별 노조주의regional union-ism와 결합한 기업별 노조주의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기업이 아니라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A라는 기업이 하노이와 호치민에 따로 공장을 갖고 있다면, 노동조합도 하노이 공장 노조와 호치민 공장 노조로 별도 존재한다. 

 

더 큰 문제는 베트남에서 연맹체는 산업별이 아니라 지역별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업종이나 산업 차이에 상관없이 해당 지역에 소재한 사업장 노조들이 모두 지역 연맹 산하로 들어간다. 따라서 A라는 기업의 하노이 공장 노조는 하노이 연맹에, 호치민 공장 노조는 호치민 연맹에 속하게 되면서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사실상 아무런 연계를 갖지 못하게 된다. 업종이나 산업과 관련하여 지역 연맹들이 별다른 경험과 전문성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이런 이유로 ‘계획경제’ 유산 덕분에 엄청난 인력과 자원을 여전히 보유한 지역 연맹이지만 사업장 수준을 뛰어넘는 노사관계 형성과 단체교섭 진행은 엄두를 낼 수 없으며, 사업장 수준의 단체교섭 지원에서도 많은 한계를 보인다. 

 

베트남 노동조합의 지역주의 경향은 공산당 일당 지배라는 정치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당 조직의 토대는 지역이다. 중앙당 산하에 도당이 있고, 도당 산하에 시당과 군당이 있다. 공산당 일당 지배에서 노동조합은 당의 지도와 정부 정책의 ‘인전대(전달 벨트)’여야 하므로 당 조직에 상응하는 조직 구조와 체계를 가져야 한다. 

 

노조 ‘결성’이 아닌 노조 ‘가입’

 

이상에서 살펴본 기업별 노조주의로 인해 아시아의 노동조합들은 비정규직 문제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구조와 노조 간부들의 인식이 사업장이나 기업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고용 관계employment relations가 명확하지 않은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동조합 조직화와 관련하여 기업별 노조주의가 갖는 가장 큰 문제는 해당 사업장이나 기업에 별도의 노동조합을 ‘결성’해야 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이라고 하면 특정 업체나 사업장을 자동으로 연상케 되는 기업별 노조주의의 만연은 지역이나 업종 수준의 초기업 노조를 만들어 노동자를 ‘가입’시킨다는 생각을 좀처럼 하기 어렵게 만든다. 

 

사업장과 기업마다 노동조합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우후죽순처럼 늘어가는 비정규직의 조직화는 대단히 어려운 과제가 된다. 노동조합 설립에 따른 신고·등록·허가 과정을 무작정 반복해야 하는데 이를 감당하기 힘들다. 더 골치 아픈 문제는 노동조합 설립에 성공한 다음에 발생한다. 조합비를 거두고 단체교섭을 하고 노사관계를 형성하는 등의 노동조합 활동 및 유지와 관련된 문제가 그것이다. 

 

한국 노동운동에서 비정규직 조직화를 말할 때 기업별 노조를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아시아 노동운동에서 비정규직 조직화를 말할 때 대부분 기업별 노조를 떠올린다. 특정 사업장이나 업체에 고착되어 특정 사용자에 종속된 종업원들로만 구성된 노동조합을 떠올리는 것이다. 기업별 노조주의라는 대단히 경직되고 협소한 형태의 노동조합 구조만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업별 노조주의를 극복한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것은 한국의 노동운동이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와 관련하여 아시아 노동운동과 연대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노조는 ‘결성’하는 게 아니라 ‘가입’하는 것이라는 원칙을 바로 이해하고, 이를 위해서는 사업장과 기업을 뛰어넘어 업종과 지역을 감싸 안는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식을 갖는 것이야말로 아시아 노동운동의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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