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무급 돌봄 노동으로 지탱해 온 우리의 삶

by 센터 posted Oct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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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코로나19 재난은 돌봄 노동자에게 과중한 업무와 극도로 위험한 노동 환경을 가져왔다. 공적 돌봄은 바이러스의 위협 속에 그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가정으로, 여성의 몫으로 다시 던져졌다. 지금껏 돌봄 노동은 노동이나 노동이 아닌 것으로 취급되었고, 시장화된 돌봄 노동은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으로 여기며 돌봄 여성 노동자들을 착취하며 운영해 왔다. 코로나19 재난은 역설적으로 돌봄 노동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각성을 불러왔다. 돌봄 노동이 멈춘 사회는 작동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모두에게 엄습했다. 정부가 나서서 필수노동자법을 제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급 돌봄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이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정부는 무급 돌봄 노동에 대해선 더더욱 함구하고 있다.

 

돌봄 노동은 그 결과물을 공장에서 대량생산할 수 없다. 대량생산하는 물건을 만드는 노동은 최종 결과물로서 제품을 손에 쥐게 된다. 돌봄 노동의 결과물은 새로운 물건의 탄생이 아니라 현 상태의 유지이다. 우리가 깨끗한 집에서 밥을 먹고 깨끗한 옷을 입고 생활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노동이 있기 때문이다. 아픈 이들이 일상을 유지할 수 있고, 아이들이 자랄 수 있는 것 역시 돌봄 노동이 존재함으로써 가능하다. 이 노동의 결과물은 일상의 유지이다. 일상이 무리 없이 돌아갈 때는 아무도 그 뒤의 노동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는다. 돌봄 노동은 부재했을 때 그 존재를 드러낸다. 흔히들 엄마가 입원하시거나 여행 가셨을 때 엄마의 부재를 절절이 느낀다고들 한다. 일상을 지탱하던 노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돌봄 노동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돌봄 노동자의 부재가 반드시 대체 노동자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일상은 어떻게든 영위되어야 하기 때문에 어떠한 순간에도 돌봄 노동은 멈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봄 노동은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 시스템을 설계하였을 때부터 노동의 범주에서 완전히 삭제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노동이되 노동이 아닌  형태로 지금껏 숨겨져 왔던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이유는 언제나 가족 중 누군가가 돌봄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임금 노동자는 누군가의 돌봄을 받고 있다는 가정이다. 이는 이성애 정상가족에 기반을 둔다. 한 사람분의 임금을 주고 두 사람분의 노동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단정한 옷차림과 경쾌한 컨디션을 요구하는 임금 노동 현장에서 무리 없이 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다. 사실상 기업은 한 사람분의 노동을 무급으로 착취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고착되었다. 삶터와 일터가 구분되지 않는 농경사회와 달리 산업사회는 일터와 삶터가 분리될 수밖에 없다. 이와 동시에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순환을 굴려야만 했던 자본은 삶터로 고립된 여성들에게 추가적인 역할을 요구했다. 자본이 생산한 물건의 정보 취득자와 소비자로서의 역할이다. 《작은 삶을 권하다》의 저자 죠슈아 베이커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는 미국 가정이 소유한 물건은 평균 30만 개라고 한다. 이 많은 물건들의 구매를 위한 정보를 취득하고 비교하여 판단하는 역할 역시 돌봄 노동의 범주이다.

 

또한 편리함을 위해 개발된 도구들은 노동의 빈도를 증가시켰다. 세탁기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지금처럼 자주 빨래를 하지 않았다. 각종 세제와 청소기가 나온 이후 청소의 횟수는 현저히 증가하였다. 이는 대량생산으로 인한 소비의 촉진, 과학의 발달로 인한 세균의 발견, 산업사회가 가져온 밀집된 거주 공간, 오염된 환경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탓이다. 결국 도구의 발달은 돌봄 노동의 총량 감소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마을에서 공동체가 키우던 아이들은 각 가정에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길어진 수명은 노인 돌봄을 증가시켰다. 결국 돌봄 노동이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현실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렇듯 불어난 돌봄 노동은 여전히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다. 맞벌이가 일상화된 현실에서 여성들은 임금 노동과 무급 돌봄 노동 양립을 요구받고 있는 현실이다. 반면 여성들이 임금 노동시장에 진출한 만큼 남성들은 무급 돌봄 노동으로 진출하지 않았다. 통계청의 ‘2019년 생활시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평일 중 남성의 가사 노동시간은 48분, 여성은 3시간 10분이었다. 여성의 평일 가사 노동시간은 남성의 네 배 수준이다. 무급 돌봄 노동은 여전히 여성이 수행해야만 하는 숨겨진 노동이다. 시장화된 돌봄 노동은 이러한 무급 돌봄 노동의 저평가 탓에 함께 저평가되고 있다. 시장화된 돌봄 노동의 저평가는 다시 노동시장에서의 여성의 노동 전체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 여성의 역할을 무급 돌봄 전담자로 한계지우는 고정관념은 노동시장의 성차별을 강화한다. 이는 이성애 정상가족을 전제로 출발하여 남성 생계부양자 이데올로기로 연동된다. 여성은 가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시장에서의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을 강요당한다. 이렇듯 그림자로 존재하는 무급 돌봄 노동과 저평가된 유급 돌봄 노동, 노동시장의 성차별은 순환구조를 만들며 여성을 이등시민으로 전락시킨다.

 

지난 6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가계생산위성계정(무급가사노동가치 평가)’을 보면 무급 가사 노동의 가치가 490조 9천억 원으로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25.5% 수준으로 조사되었다. 아마도 코로나로 인해 가정으로 돌아온 돌봄 노동을 합산하면 이 가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돌봄 노동은코로나19 재난을 계기로 다시 성찰되고 논의되어야 한다. 모든 시민이 노동자이자 돌봄자, 시민으로서의 균형 잡힌 다중 정체성을 발현할 수 있어야 한다코로나19 재난은 전 지구적으로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성장 중심, 일 중심, 소비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 삶과 돌봄, 그리고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 환경과의 공존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것은 전시체제에준하는 실천을 요구한다. 모두가 내 몫의 돌봄을 수행하고 다시 타인을 돌보는돌봄 중심 사회로의 전환이 요구되는 때이다. 무급 돌봄 노동의 평등하고 민주적 분배와 유급 돌봄 노동의 재평가가 시급한 오늘이다. 오는 11월 시행되는필수노동자법의 필수 노동자 범위에 돌봄 노동자를 반드시 포괄하고 돌봄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코로나19 재난이 울리는 경고음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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