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침착한 바다에 다다르기 위한 공부 같은 것

by 센터 posted Oct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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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날 농사짓는 사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기후변화란 말이 이따금씩 들려오나 싶더니 10년쯤 지나 기후변화는 기후위기란 말로 대체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는 기후위기 대신 기후재앙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들리는 때에 이른 듯하다. 빠르게 녹아내리는 빙하로 인해 서식처를 잃은 북극의 곰과 남극의 펭귄이 굶주린 채 죽어가는 모습이나 무분별한 개간 과정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아마존 열대우림의 산불 때문에 검은 재로 변한 나무들은 곧 인류의 모습이 될지도 모르겠다. ‘지구촌 상위 1퍼센트 인간들’은 자연생태계를 파괴해가며 쌓아올린 막대한 부를 동원해 다른 별나라로 떠나 살아남아보겠다는 무모한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인류가 발명한 자본주의라는 근대문명이 도처에 부려 놓은 막대한 재앙들로 인해 지구의 호흡이 가팔라지고 있다. 이제 좀 예전의 날씨로 돌아섰나 싶어 한숨 돌리려면 어김없이 당도하는 폭우와 태풍이 언젠가부터 지구의 ‘폭풍눈물’이거나 인류가 야기한 재앙에 맞서보려는 거친 몸부림쯤으로 다가온다. 요 몇 달 동안에도 링링, 타파, 미탁이라는 이름표를 단 거대한 비바람들 속에서 남도의 대기와 바다는 무시로 뒤척였고 평온하고 환한 날이 드물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고맙게도 모처럼 해가 쨍하니 떠오른 날이 있었다. 이날, 바다를 보러 갔다. 봄과 여름이라는 생의 주기를 지나 가을에 이른, 가을바다처럼 깊고 너른 품새로 그윽해진 그와 함께한 길이었다. 바다는 고요했다. 북적이는 사람들로 인해 드높았을 지난 여름날의 아우성은 허공으로 흩어졌거나 바다 저 깊이 가라앉은 모양이었다. 잔잔한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고, 윤슬이 눈부셨다. 모래사장 한쪽 정자에 돗자리를 펴서 싸들고 간 주전부리를 꺼내 놓고는 바다를 향해 앉았다. 자리에 앉은 후 잠깐 동안 말없이 바다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그가 참 편안해 보인다고 느꼈던 것도 같다. 그러고 보면 고향이 여수인 그를 낳고 기른 게 저 바다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바다에 접한 도시, 여수에서 반세기도 훨씬 전에 잉태되어 작은 바다 같은 엄마의 자궁 속에서 꼬물거리다가 일곱째 딸로 태어났다. 언니가 여섯, 남동생이 하나인 딸부자 집안이었다. 서른셋에 결혼하여 딸만 둘을 낳아 첫째가 열세 살이 되던 무렵부터 혼자서 두 딸을 키웠다. 결혼 전엔 세관에서 6년 넘게 통관 업무도 보고 언니네가 일군 작은 사업체에서 경리 일을 하기도 했으나 결혼을 하면서 부천으로 이주하여 10여 년을 줄곧 전업주부로 살았다. 그러던 중에 심각하진 않아서 일을 하는데 별 문제가 되지 않아온 질환을 앓고 있던 남편이 영세한 사업장에서 무리하게 일을 하게 되면서 건강이 악화되어 목숨을 잃었고, 일상을 추스르고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일거리며 활동거리를 찾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이들과 함께 고향인 여수로 내려왔다. 여수에서 살면서 순천 ‘기적의도서관’과 인연이 닿아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글쓰기며 책읽기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몇 년간 일주일에 한 번씩 두 도시를 오가며 아이들을 만나다가 순천으로 이사를 했고, 이후로도 현재까지 줄곧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만나오고 있다. 이 일과 병행하여 여수에 있을 때 3년간, 순천으로 이사한 후에 3년간 장애인 활동 보조 일을 하기도 했다. 부천에 있을 때부터 했던 ‘동화 읽는 어른 모임’이며 ‘삶을 가꾸는 글쓰기 공부’와 문학회 활동, ‘여성의전화’에서 받았던 성폭력/가정폭력 상담 교육이 이런 일들을 할 수 있게 한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그동안 딸들은 20대 후반의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났다. 첫째는 서울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혼자 살고, 그림을 잘 그리는 둘째는 단기 계약직 일을 하면서 순천의 임대아파트에서 그와 함께 산다. 청소년기에 둘 다 지역의 작은 대안학교를 다녀서 10대 때 이미 농사를 지어봤고, 이 경험에 힘입어 둘째는 그와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올해 봄부터 고흥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텃밭농사 수업도 함께 해나가고 있다. 책읽기 수업도 텃밭농사 수업도 다 일주일에 한 번, 각각 1시간 반 정도씩 한다. 두 가지 일을 해서 벌어들이는 한 해 수입이 기백만 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생태적이고 단순한 삶을 지향해온 그인지라 검박한 생활습관이 몸에 배어 있고, 그래서 이 정도 벌이로도 별 어려움 없이 살아간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잘 자라서 제 앞가림을 해내고 있으니 가능한 일일 게다.  


태어나 서른 해를 넘게 산 여수를 떠나 부천에서 십여 년, 다시 여수로 돌아와 수년간 살다가 순천으로 옮겨와 어느새 또 십여 년•••. 그도 어느덧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을 넘긴 나이가 되었다.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 생계를 꾸려오고, 두 딸을 키우면서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갈 때마다 버팀목이랄까 위안이 되어준 것이 책읽기며 글쓰기였고, 바다며 조용한 산사 같은 자연의 품이었다. 책과 문학이 좋아서 부천에 살 때부터 여수를 거쳐 순천에 와서도 문학 동호회에 들어 꾸준히 시도 쓰고 시화전도 하면서 활발히 문학회 활동을 이어나가기도 했지만 언젠가부터 글을 잘 쓰는 것보다 삶을 ‘제대로’ 사는 게 먼저다 싶어서 글 욕심을 내려놓았다. 이제는 진보 성향의 지역 언론에 가끔씩 글을 쓰는 정도다. 다른 한편으로는 ‘생태적 민주주의’를 키워드로 삼는 소수 정당에 가입해 거기 사람들과 몇 년 전부터 소소한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어른 됨’에 관한 고민이 깊어진 것과 더불어 나이를 먹어가면서 여러 가지 사회문제며 정치현상을 더 들여다보게 된다. 주변도 더 둘러보게 되고, 예전엔 잘 안 돌아보던 원가족의 삶도 조금씩 챙기게 된다. 나이 듦에 따른 몸의 통증 앞에서 무력해지기도 하는 자신의 한계랄까를 받아들이는 일도 점점 더 쉬워지고 있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푸르게 잘 자라주었으므로 별반 염려하지 않는다. 몸에 무거운 병이 들게 되더라도 병원 치료를 받고 싶지는 않다. 누구나 그러하듯 그 또한 이제까지처럼 평범한 일상을 성실히 꾸려가며 남아 있는 생애를 담담히 살아내고 싶다. 일상을 성실히 사는 일의 범주에 더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할머니들과 그림책을 꾸준히 읽는 일, 생태적인 삶을 더 적극적으로 일상 속에 들이는 일 정도다. 


실개천의 물이 흐르고 자라나 강물이 되었다가 바다에 이르듯 한 인간의 생애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성장하여 어울렁 더울렁 흐르다가 마침내 소멸해간다. 생명의 본류가 바다에 닿아 있듯 우리도 흘러 흘러 결국엔 저 바다로 돌아가는 걸 텐데, 그 바다가 지구온난화며 온갖 쓰레기로 인해 오래 전부터 신음 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생태계의 고통과 혼란은 기후재앙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인류에게 시나브로 되돌아오고 있다. 무분별한 소비 욕망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지금의 환경위기, 기후위기를 불러왔고 그래서 더 절실히 덜 소비하는 구조 속에 있어야겠다고 그가 다짐하게 되는 이유는 그래서다. 지금도 나는 그가 여느 사람들보다 지구에 해를 훨씬 덜 끼치며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지만 그는 가능한 대로 이른 시일 안에 도시를 떠나 자급할 수 있는 정도의 텃밭이라도 일구며 더 소박하게 살 수 있는 농촌으로 가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가을바다 곁에서 그가 들려주는 파도 같기도 바람 같기도 반짝이는 모래알 같기도 한 이야기들을 듣는 사이,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점점 길어지는 여름과 겨울 사이에서, 폭염과 잦은 비바람이 지나갔으며 곧 닥칠 긴 추위를 앞두고 있어서 더 소중하게 여겨지던 청명한 가을날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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