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된 채 오열해온 여성의 몸

by 센터 posted Apr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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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날 농사짓는 사람



새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떠가는데

환장할 봄볕은 온 우주로 내려쬐는데

내 온몸에만 천 근 만 근 빗줄기 퍼붓네

물렁한 영혼 자꾸만 찢기어 흩어지고 풀리네

분열하고 오열하는 그 사이 어딘가에 내가 있네 

미칠 것 같은, 지붕 없는 철창 안 개 같은 나날 속에


그녀는 구겨진 얼굴로 자신을 돌아본다. 망가진 채 울고 있는 인형 같다. ‘뒤엉킨 운명의 지도라는 것은 의지가 자라지 않는 땅의 그림. 그 불모지에 여전히 주저앉아 있다. 헐벗은 채 까여 피 흘리고 있는 영혼의 무릎을 어떻게 일으켜 세워야 하나, 그 굳세었던 영혼의 힘은 다 어디로 갔나. 밑도 끝도 없는 무기력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 지도 벌써 칠팔 년은 족히 되었지만, 처음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운명의 그림이 괴발개발 마구 그려져 버렸고, 하여 삶이 촘촘한 그물망에 갇혀버린 것 같다는 자각에 이르렀을 무렵, “실내에 가만히 있자면 돌아버릴 것 같아서누군가가 한나절이라도 아이를 돌봐주겠다고 하면 집을 빠져 나와 죽을힘을 다해 산에 오르고 복싱을 하고 달리기를 하던 때가 있었다. 한 시간 이상을 내내 달리고 2~3시간씩 쉬는 법 없이 산을 오르고 동네 복싱 체육관을 찾아가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샌드백을 쳐대기도 했다. 그렇게 몸을 자꾸, 할 수 있는 한 힘껏 움직여야 살아 있다는 느낌이 어렴풋하게나마 전해져 왔다


함께할사람은 필요 없었다. 사람들은 쉽게 손가락질해대고 재단하고 진단하고 동정하고 비난하는 웃픈존재들이었다. 부모님과도 하나뿐인 형제와도 연을 끊었다. 그렇게 점점 더 고립되어 가는 자신의 현재를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 아이가 잠든 틈을 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바느질이며 뜨개질을 해보기도 했다. 수년에 걸쳐 심리 상담을 받고 명상도 했다. 아이가 조금 자라서는 함께 하늘을 날아 지구 저편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래도 마음의 빗장은 열리지 않았다, 응어리는 풀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세월이 갔다. 혼자서도 잘 키울 수 있을 듯하여 낳아버린아이가 곁에 없었다면 그녀는 지금 이렇게 살아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녀는 오랫동안 아픈 상태다. 깊은 마음의 병을 딛고 서보려는 이토록 다양하고 긴 시도가 있었음에도 영혼의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시나브로 곪아가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뒤엉킨 현재는 예닐곱 살 무렵, 한 동네에 살던 사촌오빠란 이로부터 여러 차례 당한 성추행으로부터 시작된 것도 같다. 당시 그는 고등학생 나이쯤 되었고 그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먼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러고는 수년에 한 번 정도 친인척들이 함께 모이는 가족 모임에서 간혹 보긴 했지만 한 번도 말을 섞진 않았다. 무서웠다. 어릴 땐 그것이 성폭력인 줄 모르고 지나쳤다가 초등학교 고학년 나이가 되었을 때야 , 그게 이런 것이었구나싶어 엄마에게 내가 어렸을 때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딱 한 번 에둘러 얘기한 적이 있었지만 바깥일로 늘 바빴던 엄마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00가 얼마나 모범생인데···.”라며 얼버무리는 것으로 서둘러 말을 끝냈다. 엄마도 아빠도 그 일을 알고 싶지 않아 했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 기억은 희미해져가는 것 같았다


매사에 호기심 많고 공부도 잘하는 편인 데다 활달하고 예쁘기까지했던 그녀는 어릴 적 그 기억이며 부모로부터 이해 받지 못했던 일들이 떠올라 시무룩해질 때도 있었지만 청소년기를 거쳐 대학 졸업 후 직장인이 될 때까지 비교적 순조롭게 시험을 치르고 대학엘 가고 졸업을 하고 취직도 했다. 이성친구도 꾸준히 사귀었다. 남자친구들 중에는 데이트 성/폭력이라고 할 법한 말과 행위를 하던 이들도 있었는데, 그래서였는지 어쨌는지 여러 명과 헤어지고 만나고를 되풀이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사람에게 쉽게 빠지는 자신을 책망하며 누군가를 사귀는 일에 진중해지자고 다짐하곤 했다. 하지만 곧 외로워졌고, 혼자가 되는 게 싫어서 어느 순간 쉽게 또 사랑(이라는 착각 속)에 빠졌다


그러다가 한 생명을 잉태했다. 어차피 신뢰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었던 남자친구는 나 몰라라 했고, 곧 떠났다. 그녀도 큰 미련을 두지 않았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출산과 육아를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결혼은 하기 싫은데 아이는 낳아 키워보고 싶다는 바람이 서른을 넘어서면서 자라나기 시작하던 터이기도 했다. 여성(의 성)이 쉽게 사고 팔리며 함부로 대상화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하지도 않은 남성과의 사랑을 떠나 아이하고만 가족을 이뤄 살고 싶었으므로 자진하여 싱글맘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아이가 태어나고 난 얼마 후부터 심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주변에 도움을 청할 만한 변변한 지인 하나 없이 혼자서 하는 육아가 쉬울 리 없었다. 한때 잘 나가던카피라이터였던 터라 모아둔 돈과 퇴직금이 아직 제법 남아 있어서 경제적으로 크게 쪼들리진 않았으나 관계는 많이 허물어졌다. 부모님은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 수 없는 손주를 안고 온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어느새 친구들하고도 멀어져 있었다. 혼자 술을 마시고 취해서 잠드는 날이 잦았다. 언젠가부터 어릴 적 겪었던 나쁜 일과 성인이 되어 아는 이와 모르는 이에게 두루 당한 성폭력이며 데이트 강간에 대한 기억이 뒤범벅된 꿈을 꾸다가 깨어나곤 했다. 불면증과 두통에 시달렸다. 가위에 눌리다 일어나 넋 놓고 앉아있자면 어느새 깬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어대곤 했다. 괴로웠다. 불안과 혼란과 고통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자신이 버러지 같고 세상이 감옥 같았다. 상상 속에서 자주 자살을 감행했다. 한동안 프리랜서로 일을 했으므로 주어지던 일감들이 그때까지도 드물게나마 있었지만 도무지 해낼 수가 없었다.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으로는 아이 하나를 돌보는 일조차 힘겨웠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이 들면 동네 주민센터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사회복지사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다녀간 후 심리상담 서비스를 지원 받을 수 있었고 양육비가 매달 얼마씩 통장으로 입금되었다


한 사람의 생은 어떻게 하여 꼬이기시작하는 걸까. 과거 어느 시점에서부터 생의 실타래가 뒤엉켜 현재까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봐왔다. 그들은 여성이라서겪게 된 생의 곤궁과 비참을 감당해오느라 지쳐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 중엔 성폭력 피해 생존자도 여럿 있었다. 그녀가 그런 것처럼 여성들 가운데 많은 이가 앓고 있는 정신적 분열의 줄기를 더듬어가자면 성폭력/성차별, 여성 혐오라는 깊이 박힌 가부장제의 뿌리와 어김없이 만나게 된다. 사회·역사적으로 구성되어온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제멋대로 침탈하여 왜곡한 후 거래하고 공유해온 남성들의 범죄 현장에 관한 뉴스를 심심찮게 접하게 된 것도 불평등한 권력 관계에 기반한 이 남성 중심 사회가 여성의 몸을 어떻게 난도질해대고있는지를 보여주는 일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 장자연 씨의 죽음과 버닝썬사건을 통해 드러난 여성을 대상화한 만행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남성들의 저 무례와 결핍과 뻔뻔함과 집단적 분열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 여성의 몸을 지녔다는 이유로 폭력과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지 않고, 분열을 견디며 오열하느라 만신창이가 되지 않고, ‘재생산권을 포함한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여성들이 철저히 누릴 수 있는 사회-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프거나 우울해하지 않는 사회라야 진정으로 생명이 존중되는,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지난 411, 66년 만에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여성의 몸을 두고 그동안 국가와 사회가 합법적으로행해 왔던 통제와 개입은 진작 사라졌어야 할 구조화된 폭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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