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시민권 열차는 정차한 적이 없다

by 센터 posted Feb 2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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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 지하철 행동의 의미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서울교통공사] 4호선 삼각지역 상선 당고개 방면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타기 불법시위로 무정차 통과하고 있습니다. 열차 이용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월 2일 서울시에 있는 사람들은 재난 안전문자를 받았다. 서울시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지하철 승하차 시위(지하철 행동)를 막으려고 삼각지역에 무정차 한 후 이를 안내한답시고 재난문자를 보낸 것이다.

 

장애인.jpg

지난 1월 2일,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을 가로막은 경찰. 이날은 장애인 우동민 열사 추모제를 하기로 했던 날이

기도 하다. (@명숙)

 

이는 여러 인권 문제가 있다. 먼저 해당문자는 서울시나 서울교통공사가 전장연의 시위를 재난으로 보고 있으며, 일방적으로 불법으로 매도하고 있음을 드러낸다.정말로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 지하철 승하차 시위는 불법일까. 그렇지 않다. 단지 지하철에 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 여러 명이출근시간대에 타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어떤 폭력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휠체어를타려면 지하철이 역에 정차하는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지연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장애인들에게 지하철을 타지 말라고 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비장애인들을 위해 장애인들에게 불편을 감수하라는 강요에 지나지 않는다.

 

헌법에도 집회시위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고, 허가가 아니라 신고제로 운영하게 되어 있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에도 옥외집회만 신고 대상이지 실내는 집회 시위의 대상이 아니다. 실제 지하철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 돌아가신 비정규 노동자 ‘구의역 김 군’ 추모행사도 지하철 승강장에서 한 바 있다. 그런데도 삼각지역장은 철도안전법을 운운하며 헌법상의 권리를 제한하려고 한다. 지하철 행동을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안전조치가 필요한 것이지 목소리를 못 내게 폭력으로 막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전장연 시위에 대해 재난문자를 보내는 것은 서울시와 공공기관의 권한 남용이다. 재난문자는 재난 또는 그에 준하는 상황에서 발송된다. 행정안전부 ‘재난문자 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에 따르면 지자체는 관할 구역 내에서 발생한 자연재난 또는 사회재난에 대해 문자를 송출할 수 있다. 사회재난은 신속한 초동대응이나 주민 대피 등이 필요한 상황을 뜻한다. 전장연 시위는 자연재난이나 사회재난에 해당하지 않는다. 아니면 역설적으로 전장연의 시위는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질서를 혼란하게 한다는 것을 감지했단 뜻일까? 그렇더라도 씁쓸한 일이다.

 

전장연의 불복종 직접행동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은 장애인이 그동안 불편을 감수했던 것을 역으로 보여준다. 실제 대다수 장애인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거리로 나오거나 문화생활을 누리거나 직장에 출근하지 못한다. 아침 지하철 행동에 나온 한 장애인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휠체어를 이용하기 때문에 혼잡시간을 피해 새벽 6시에 나옵니다. 퇴근 후에도 바로 가지 않고 늦은 시간에 나갑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장애인이 이용하는 장애인 콜택시는 그 수가 부족해 1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필자가 장애인 활동가와 함께 회의할 때, 그는 회의가 끝나기도 전인 1시간 전이나 30분 전에 콜택시를 예약했다. 만약 장애인 콜택시가 일찍 오는 날이면 제대로 회의도 못 마치고 급하게 서둘러 나갔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전장연 지하철 행동에서 볼 수 있듯 불복종 저항 행동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바라는 소수자들에게 매우 효과적이다. 1950년부터 1970년대 미국 흑인민권운동에서도 이러한 불복종 직접행동은 종종 있었다. 미국 앨라배마주의 몽고메리에서 흑인과 백인 좌석이 분리된 버스 타기를 거부하고 걸었던 운동, 70년대 흑백 분리된 식당을 점거하는 운동이 대표적이다. 이 모든 싸움에 흑인만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백인들도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저항 행동에 같이했다. 이처럼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에 많은 비장애인도 참여하면 좋겠다. 물론 지금도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에 비장애인들도 참여하고 있지만, 장애인 혐오세력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 그리고 정부가 자꾸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분리하려는 말을 선동하고 있기에 비장애인의 지지와 참여는 더욱 소중하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비장애인만 인권을 누리는 것이 아니지 않나. 내 주변 동료 시민인 장애인이 권리를 빼앗긴 채 비참하게 사는데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런 잔인한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 우리 모두의 존엄을 위해 장애인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함께 외치면 좋겠다. 나아가 전장연의 불복종 저항 행동이 출근하는 일부 비장애인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을지라도 지지한다고 외치기를 소망한다. 비장애인인 나의 불편함이 그동안 장애인이 겪은 불편함이었구나 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세계 곳곳에서 소수자들, 민주주의와 인권을 열망하는 사람들은 불복종 직접행동으로 저항해왔다. 평화운동가나 환경운동가들도 불복종 직접행동을 많이 한다. 그 저항이 주류질서를 혼란하게 하고 주류의 일상을 불편하게 할지 모르지만, 그 불편을 통해 그동안 소수자가 불편과 불이익을 감수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은 우리 사회가 비장애인 중심이었음을 폭로하고 있다.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이 멈춘 것은 단지 출근길 지하철만이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의 반인권 사회를 멈추려고 한 것이 아닐까.

 

이동권.jpg

지난 2월 13일 삼각지역에서 지하철 행동을 지지하는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진행한 ‘시민과 함께하는 달보기 운동 함께 선언’ 기자회견 (@명숙)

 

대한민국에 사는 장애인의 현실

 

비장애인 중심의 대한민국 현실에서 장애인은 일상생활을 누리기 어렵다. 장애인들의 투쟁으로 지하철역에 만들어진 엘리베이터조차 동선이 비장애인 중심으로 짜여 있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지상에서 지하철을 타려면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지하철 차량과 승강기 간격은 발이 빠질 정도로 넓은 곳이 허다하고 지하철역 승강기는 수가 적을 뿐 아니라 위치와 경로는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설계되었다. 거리는 온통 턱이 있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은 움직이기 어렵다. 시각장애인용 음성이나 표시가 없는 시설도 많아 위험하다. 장애인도 생활공간을 누릴 수 있으려면 정부 예산을 들여 바꿔야 한다.

 

중증장애인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려면 활동지원사의 조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중증장애인이 충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24시간 활동 지원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 또한, 장애인 대부분은 시설에 갇혀 있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려면 탈시설을 위한 재정과 계획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때 탈시설 로드맵이 만들어졌지만 시행 시기가 지연되었을 뿐 아니라 구체적인 예산과 계획이 없다. 중증장애인 시설에서 나와 살려면 주거공간이 필요하고, 일자리도 필요하고,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도록 활동 지원이 충분해야 하며, 거리나 대중교통에 장애인 접근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장애인 활동가들은 ‘지하철 무정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그동안 장애인에게 장애인 시민권 열차는 정차한 적이 없다고.

 

전장연은 2021년부터 장애인 권리 중심 예산을 촉구하며 싸웠다. 그러나 국회와 기획재정부는 전장연이 제시한 예산 증액분 1조 3,044억 원의 0.8%에 불과한 106억 원만을 증액했다. 예산을 확보하라고 주장하며 중앙정부의 행정 수반이 있는, 대통령실이 있는 삼각지역에서 지하철 행동을 한 것이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장애인 권리 보장 정책과 예산이 아니라 손해배상 청구였다. 서울교통공사는 1월 10일 출근길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근거로 전장연과 박경석 대표를 상대로 6억 원대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불법을 엄단하겠다며 전장연 시위를 불법으로 낙인 찍는 발언을 쏟아냈다. 장애인 활동가들도 기소했다. 장애인은 요구하지 말고 입 다물고 주면 주는 대로 받으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같은 동등한 시민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려면 기울어진 쪽에 더 강한 힘과 무게가 들어가야 한다. 따라서 장애인 권리를 위한 예산은 더 많이 책정되어야 한다. 그래야 장애인도 평등하게 시민권을 행사할 수 있다.

 

끝으로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을, 장애인 권리 보장 예산을 촉구하는 달보기 운동에 함께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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