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평등의 역량 키우기

by 센터 posted Feb 2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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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차별금지법이 뭐예요?”

12월 초, 바람이 쌩쌩 부는 여의도 국회 앞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는데 40~50대 남성으로 보이는 시민이 묻는다. 속으로 ‘옳다구나’ 하며 설명한다.

“차별받은 경험이 있으시죠. 학력이나 외모가 다르다거나 비정규직이라고 차별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열심히 일해도 비정규직이라고 임금 적게 받는다거나 배제당하거나. 그런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자는 겁니다.”

“그러면 좋은 거잖아요. 그런데 왜 안 만들어요?”

“대기업이 있는 경총이나 일부 개신교 세력들이 차별금지법에 반대해서 그들을 의식해서 안 만들고 있어요. 경총은 차별해서 돈을 많이 벌면 좋으니 차별금지법이 불편할 테고, 일부 개신교 세력들은 성서에 대한 극단적 해석과 성 소수자 혐오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거든요.”

“국회가 그러면 안 되죠. 차별은 나쁜 건데··· 고생하세요.”

 

선전전.jpg

시장을 돌며 선전전을 하는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 활동가들

 

오늘 또 한 명이 차별금지법에 대해 알아가는구나 싶다. 선전전을 하거나 캠페인을 할 때 차별금지법에 대해 질문이 들어오면 기분이 좋다. 최근에는 선거용 유세차량과 비슷한 차를 타고 서울시민들에게 차별금지법을 홍보하러 다닌다. 일명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 약칭 ‘차만세’ 활동이다. 서울 곳곳에 유세차량을 타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하자고 발언도 하고 율동도 한다. 처음에 시민들은 진짜 선거 유세차량으로 오해도 했다. 어디 후보인가 싶어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운다. 그러면 우리는 외친다.

“우리 유세단은 특정 대선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유세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차별로 불이익을 겪고 모욕당하는 사회를 바로잡자는 차별금지법이야말로 민생법 아닙니까. 대선보다 더 중요한 게 차별금지법이라는 걸 시민들과 이야기 나누러 왔습니다. 국회가 일 좀 하라고 압박하러 나왔습니다.”

때로는 시장을 돌며 “사람 차별 안 된다는 법을 만들자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끄덕, 손뼉도 쳐주신다. 모두 차별이 나쁘다는 걸 알고 그래서 법으로 제정하자는데, 도대체 누가 막는 걸까?

 

일관되게 차별금지법을 반대한 경총

 

대표적인 두 집단이 일부 성 소수자를 혐오하는 극우 개신교 집단과 경총(경제인총연합회)이다. 전자는 성서에 대한 극단적인 해석으로 성 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여 교세를 확장하려는 것이 목적이라면, 후자는 노동자들을 나누고 차별해서 얻었던 이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 노동자나 서민의 이해가 아니라 대기업 경영주의 이해를 고려한 것이다. 

 

사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을 권고했을 때도 호들갑을 떨며 반대했던 집단이 경총이다. 경총은 웬만한 인권법안에는 모두 반대했다. 2007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때도 반대했고, 남녀차별금지법 제정할 때도 반대했고, 연령차별금지법 제정도 반대했다. 이유는 과거와 다르지 않다. 이번에도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차별금지법을 만들면 장애인이든 여성이든 모두 똑같이 임금을 줘야 한다.”, “각종 소송에 휘말리고 경영자들의 경영권을 침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주장이다. 그동안 노동자들을 다양한 사유로 나누고 차별해서 초과 수익을 얻은 것이 경영자였다는 진실을 실토한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직접고용해야 할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해서 얻는 차별이나 비정규직에게는 수당을 적게 줘서 얻는 사용자들의 이익을 떠올려도 왜 경총이 반대하는지는 충분히 상상 가능하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이 엄청난 제재 조치가 있는 양 주장한 것은 왜곡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4개 법안(장혜영, 이상민, 권인숙, 박주민 대표발의안)에서 형사 처벌은 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도왔다고 불이익을 주는 경우에 한정됐다. 시정권고나 시정명령 정도가 전부라 그리 위력적인 법이 아니다. 하지만 표를 의식하는 국회의원들은 대형 교회의 표나 재벌을 의식해서 ‘사회적 합의’가 안 됐다며 법 제정을 미뤄왔다. 심지어 10만 명의 국민동의입법청원이 된 법안은 90일 이내에 심사해야 하지만 법사위는 두 번이나 심사를 미루더니 급기야 21대 국회 만료 시점인 2024년까지 차별금지법 심사를 연장시켰다.

 

차별의 경험을 말할 수 있게 하는 출발점

 

차별금지법은 차별에 대해 차마 말하지 못하고 참아야 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제대로 말할 수 있도록 판을 열어주는 법안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나 연령차별금지법과 같은 개별차별금지법과 달리, 포괄적 차별금지법은개인이 겪는 다양한 차별의 맥락이나 복합차별의 경험을 설명하고 피해를 구제하기 좋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어 하나의 사유로만 차별받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라서 차별받기도 하지만 학력이 낮아서 차별받기도한다. 개별차별금지법은 개인이 겪은 복잡한 차별의 경험과 맥락을 하나의 차별 사유로만 설명해야 하느라 피해를 드러내고 법적으로 구제받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면 우리는 차별이 무엇인지 사유하고 어떻게 해야 서로를 존중하고 평등한 사회로 나갈 수 있는지 고민하게 할 것이다.그 과정에서 사회구성원들의 평등 감각과 역량이 높아질 것이다. 재벌처럼 이익을 얻기 위해 차별을 의도적으로 하는 집단도 있지만, 서로를 몰라서,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차별 관행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들에게 차별과 평등에 대해 생각하고 배우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실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생기고 괴롭힘이란 무엇인지, 괴롭힘을 강제하는 직장 내 구조적 문화와 관행에 대해 생각하며 직장문화가 변화했던 것처럼 말이다.

 

차별금지법 어디까지 왔나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는 2002년 노무현 대통령 공약으로부터 촉발됐고, 2006년 인권위 권고안, 2007년 차별적인 법무부의 7개 사유(성적 지향, 병력, 출신 국가, 언어,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범죄 전력, 학력)의 차별금지법안 때문에 공론화됐다. 7개 차별 사유를 뺀 차별금지법은 차별조장법이라는 문제의식으로 국내외 인권단체가 들고 일어섰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들어, 일부 개신교에 성 소수자 혐오세력이 득세하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난관에 빠졌다. 2013년에는 의원 발의된 차별금지법안 두 개가 철회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20대 국회에서는 차별금지법이 전혀 발의되지 않는 상황까지 이르렀고, 이 때문에 지난 15년간 유엔인권이사회, 유엔사회권위원회, 자유권위원회, 인종차별철폐위원회 등 유엔인권기구는 한국 정부에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열네 번이나 권고했다.

 

그런데도 인권단체들과 차별받는 당사자들의 끊임없는 활동으로 국민적 지지는 높아졌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88.5%가 찬성했으며, 한겨레신문 2021년 조사에는 71.2%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날 정도로 높다. 이제 국회는 더는 ‘사회적 합의’가 없어서 입법이 어렵다는 핑계를 대기 민망해졌다. 곧 대통령이 바뀔 것이다. 누가 되든 차기 정부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국정과제로 삼고 즉각 제정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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