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뭣이 중한가

by 센터 posted Oct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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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짚어야 할 낱말과 흐름 

 

이은용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장

 

 

밤새 비가 오락가락했다. 2021년 8월 24일 낮 2시 국회 앞에서 시작한 전국 언론 노동자의 ‘언론중재법 개악 저지 스물네 시간 필리버스터’를 적시며. 바람마저 세찼다. 언론중재법을 고쳐 되레 나빠지게 하려는 더불어민주당 고집만큼이나.

이튿날 새벽 ‘언론중재법’이 몇 차례나 귓전을 울렸는지 도무지 헤아릴 수 없을 지경에 닿았을 때 새삼 가슴을 울린 물음. ‘어떤 말이 왜 오가나. 그 말에 누가 웃는가. 열쇠는 무엇인가.’ 낱말과 흐름을 곰곰 거듭 짚어야 할 까닭이 됐다.

 

유튜브.jpg

2021년 8월 25일 오전 5시 52분, 언론중재법 개악 저지 필리버스터 바통을 이어받은 박은종 전국언론

노동조합 사무처장. 연현진·박예람 전국언론노동조합 활동가가 유튜브에 생중계했다.(@언론노조)

 

중재. 분쟁에 끼어들어 쌍방을 화해시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인데 ‘거, 싸우지 좀 말고 서로 화 풀라고 부추기는 일’쯤으로 읽혔다. 법률 쪽 풀이로는 ‘제삼자가 다툼 당사자 사이에 끼어들어 분쟁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일’이라 했다. ‘제삼자의 결정은 구속력을 가진다’라고 덧붙였고. ‘제삼자’가 ‘조정’한다니 묵직하다. 주로 법원이 다투는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서로 조금씩 물러나 한뜻을 이루게 하기 때문. 한데 다툼이 있을 때마다 법원을 찾아가자니 시간 아깝고 돈마저 든다. 변호사와 함께 가야 할 수 있으니까.

 

언론중재법. 정확히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법원에 앞서 빨리 다툼을 풀어내고 피해자가 있을 땐 그를 돕자는 뜻에서 마련됐다. 신문과 방송과 잡지와 뉴스통신과 인터넷신문들-언론-에 알려진 소식 때문에 마음을 다쳤거나 피해 입은 이를 위한 법인 셈. 그렇다 해서 오로지 피해자 쪽 옆자리에 선 법률로 볼 순 없다. 언론 자유와 공적 책임이 서로 잘 어울리게 하려는 게 법을 만든 까닭이니까. 실제로 언론중재법엔 피해자 구제 원칙(제5조)을 세워 두고 사회적 책임(제4조)을 묻되 언론의 자유와 독립(제3조)을 보장한다는 기준도 뚜렷하다.

 

언론중재위원회. 언론중재법을 허리에 끼거나 머리에 이고 다툼 당사자 사이에 끼어드는 곳. ‘법원 같은 제삼자’라 하겠다. 중재위원 다섯이 한 중재부를 이루는데 중재부장을 법관이나 변호사 자격이 있는 이가 맡으니 법원 같은 제삼자일 만하다. 10월인 지금도 서울 1~8 중재부와 지역 중재부 열 곳의 부장이 모두 지방법원 부장판사이다. 중재부장과 함께 다툼 사이 제삼자로 끼어들 중재위원 자리 넷에는 언론사에서 10년 넘게 취재·보도를 일삼았던 사람과 언론 쪽 학식이나 경험이 많은 이가 앉는다.

 

이런 짜임새에 힘입어 언론중재위원회 결정은 지방법원 1심 판결에 버금간다. ‘제삼자의 결정은 구속력을 가진다’는 표준국어대사전 법률 쪽 ‘중재’ 뜻풀이의 바탕인 셈이다. 실제로 언론중재위원회 ‘중재 결정’은 법원 확정 판결과 같은 힘을 낸다. ‘조정에 따른 합의’도 재판상 화해와 같다. 이러니 언론 보도로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이가 지방법원으로 달려가기에 앞서 언론중재위원회부터 찾아갈 만하지 않겠는가.

 

심리. 사실을 자세히 조사해 처리함. 이 또한 표준국어대사전 풀이인데 ‘거, 왜 싸우는지 까닭 좀 들어 보고 잘 마무리하자고 이것저것 들쑤시는 일’쯤으로 읽혔다. 법률 쪽 풀이로는 ‘재판 기초가 될 사실과 법률 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법원이 증거나 방법 따위를 심사하는 일’이다.

 

문턱. 문짝 밑이 닿는 문지방 윗부분. 서울 세종대로 124번지 프레스센터 15층에 언론중재위원회 1~8 중재부가 쓰는 심리실이 있다. 문턱 같은 건 없지만 보이지 않는 벽이 높이 솟은 듯싶은 느낌. 위원회에서 부르면 가는 게 좋다. 나 없는 채 뭔가 결정되면 곤란하니까. 가 본 뒤엔? 언론중재위원회가 자기 검열 꼭지 가운데 하나로 가슴에 내려앉았다. 다시 가고 싶지 않아서.

 

심리실에선 언론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정정·반론·추후 보도 청구 들에 따라 기자와 언론사 관계자가 중재위원과 마주 앉는다. 손해배상까지 청구했을 때엔 심리실 공기가 더욱 무겁게 가라앉게 마련. 중재위원이 묻는 바에 따라 대답이 오가다 보면 신청인과 피신청인 목청이 높아지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기어이 고함이 터지기도 한다. 나는 목청 돋운 적 있되 소리치지는 않았다. 한 중재위원이 내게 소리치듯 말한 적은 있다. 어떤 중재위원은 내가 힘 보태던 〈뉴스타파〉를 두고 “실망스럽다”라고 말했다. 나는 홍보대행사 이력만 있는 그의 ‘실망’이 섣부른 성싶었지만, 어금니를 앙다물었다. 그에게 “실망스럽다.”라고 그대로 되돌려 줘 봐야 득 될 게 없을 테니까. 

 

심리실.jpg

2021년 10월 8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프레스센터 15층 언론중재위원회 심리실 입구(@언론노조)

 

반론. 그게 아니라며 반대로 말하는 것. 언론 중재 신청인의 ‘정정’ 청구가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기각’보다 ‘반론’으로 조율될 때가 많은 듯싶다. 제삼자 조정 노릇에 마음을 둔 언론중재위원회가 ‘반론’ 보도로 신청인과 피신청인을 두루 타이르려는 흐름으로 읽힌다. 한데 ‘반론’ 보도 또한 기사에 흠집이 나는 터라 기자는 두루 아쉽고 쭈그러든다.

 

지난 2017년 2월 방송통신위원회 고위 공무원이 2016년 12월 27일 자 〈뉴스타파〉 기사 ‘방통위, 국고로 가야 할 100억 원대 위법 경품 과징금 덮었다’를 두고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 보도를 청구했다. 그와 방통위가 2016년 12월 6일 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SK텔레콤·KT 들의 초고속 인터넷 판매용 경품 제공 위법 행위를 두고 과징금 106억9800만 원을 물렸는데, ‘100억 원대로 추산된 2014년 7월부터 2015년 3월까지 9개월 동안 일어난 위법행위 과징금’을 뺀 채였다는 보도가 ‘허위’이니 바로잡아 달라는 것. 정정 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청인의 ‘허위 보도 주장’을 입증할 만한 게 없었으니까. 진실한 보도로 읽혔음에도 언론중재위는 ‘반론 보도’로 강제 조정했다. 〈뉴스타파〉는 반론 보도조차 받아들일 수없었다. 기사에 흠집이 나면 보도 내용 전체 신뢰도를 흔들 테니까.

 

법원으로 간 방통위 정정 청구 사건은 다섯 쟁점 가운데 하나를 들어주라는 결론이 났다. 〈뉴스타파〉의 4대1 판정승인 셈. 소송 비용 부담도 비슷한 비율로 나뉘었으니 정말 이긴 것처럼 보였다. 한데 방통위 쪽 ‘1’ 때문에 묘한 흐름이 이어졌다. 나는 기사마지막 문장으로 ‘방통위가 2016년 12월 LG유플러스를 포함한 여러 사업자 제재를 앞뒀을 때, 친구 사이였던 LG유플러스 부회장 권영수와 방통위 위원장 최성준을 헤아려 과징금이 많이 나올 조사 대상 기간 ‘2014년 7월부터 2015년 3월까지’보다 ‘2015년 1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를 선택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알렸는데, 법원은 이를 ‘2014년과 2015년 위법행위 조사가 있을 땐 권영수가 LG유플러스 부회장이 아니었기에 허위’라고 봤다. 내가 명확히-100% 애초 뜻으로만 읽힐 수 있게 제대로- 쓰지 못한 탓에 그리 읽힐 수도 있으니 〈뉴스타파〉는 법원 판결을 받아들였다.

 

기사캡처.png

2016년 12월 27일 자 〈뉴스타파〉 기사 ‘방통위, 국고로 가야 할 100억 원대 위법 경품 과징금 덮었다’ 마지막 문장과 법원 판결에 따른 정정 보도(@언론노조)

 

원고일부승. 다는 아니지만 원고가 얼마큼 이겼다는 것.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기록한 방통위와 〈뉴스타파〉 간 정정 보도 청구 사건 1심 결과다. 방통위 고위 공무원은 이를 바탕으로 삼아 ‘이긴 사건’으로 말할 수 있겠다. 그가 ‘일부 이긴 사건’이라고 세세히 말할 까닭은 없겠고. 나는, 독자가 ‘아, 이 기사엔 무슨 문제가 있나 봐!’라고 생각할까 싶어 걱정이다. ‘이 기사는 그대로 믿기 어렵겠네’ 할까 싶어 걱정이고.

 

더불어민주당 언론중재법 개정안에는 기사에 정정·반론·손해배상 청구가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열람 차단 청구 표시’도 포함돼 논란이 일었는데, 되살아나지 않기를 바란다. 힘센 공직자와 기업인이 ‘열람 차단 청구 표시’로 보도에 흠집 내기를 일삼을까 걱정이어서.

 

방통위는 〈뉴스타파〉 보도로 알려진 ‘100억 원대 과징금 봐주기’ 사건을 두고 자체 감사를 벌인 뒤 2018년 3월 8일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그때 방통위 위원장이던 최성준과 관련 국장과 과장에게 ‘직권 남용’ 혐의가 있다는 것. 검찰이 국장과 과장을 기소했고, 2021년 11월 1심 판결을 앞뒀다. 수사 요청 뒤 3년 8개월 만에 1심 판결. 첫 번째 관련 보도가 2016년 10월 12일이었던 걸 헤아리면 5년 1개월 만이다. 사건이 2심과 3심으로 이어지면 더욱 늘어질 테고. 고위 공무원에게는 언론중재법 개정 없이도 5년 넘게 버티는 힘과 비법 같은 게 있는 듯하다.

 

국회. 국회의원이 의사당에 모여 하는 회의. 법률 쪽 풀이로는 ‘국민대표로 구성한 입법 기관’이다. ‘민의를 받들어 법치 정치의 기초인 법률을 제정하며 행정부와 사법부를 감시하고 그 책임을 추궁하는 따위의 여러 가지 국가의 중요 사항을 의결하는 권한을 가진다’라고 덧붙였고. 한국 국회가 제대로 ‘민의를 받들어’ 움직일까. 의문이다. 특히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는 ‘여론을 등에 업은 척 특정 언론에 보복하려는 뜻’을 품은 성싶은 정당과 아무런 생각 없는 정당이 욕심 사납게 마주 앉은 꼴이다. ‘고의’와 ‘중과실’을 엮어 ‘징벌’과 ‘손해배상’을 묶어 내려다가 ‘밀실’에서 ‘야합’한다는 비판에 겨우 숨죽인 흐름.

 

하여 다시 국회 앞. 2021년 8월 30일 오전, 더불어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홀로라도 밀어붙이려 한다는 소식에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손팻말을 들었다. 민주주의 보루 언론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몸부림. 결국 국회에 맡길 수 없겠기에 “사회적 합의 기구를 만들자”라고 제안했다.

 

국회에 묻자. “뭣이 중한가.”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2021년 10월 7일 KBS 1라디오 〈열린토론〉에서 “(한국에선) 언론 표현의 자유 규제나 금지 일변도로 제도가 논의돼 왔다.”라고 짚었다. 인터넷 게시물 “임시조치제 같은, 다른 나라에 없는 제도들이 우리나라엔 있어 왔고, 형사처벌 규제도 과도하다고 평가될 정도”라고 덧붙였고. 그는 “사회적 합의 기구가 필요하다는 건 너무 쉽게 규제가 도입되는 포퓰리즘으로 갈 게 아니라 규제가 논의될 때에는 헌법상 비례 규칙이나 국제 기준을 살피는 등 숙의 절차를 취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권력이 늘 규제를 하고 싶어 하는데 피해자 구제와 가해자 징벌은 다른 방향”이라며 “개별 사건에서 법원이 손배를 실질적으로 높일 수 있도록 하면 될 일이지 가해자를 징벌 대상으로 삼을 일은 아니”라고 풀었다. 국회에 한 번 더 묻자. “뭣이 중한가.”

 

일인시위2.jpg2021년 8월 30일 오후 12시 22분, 국회 앞 도로 건너편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악을 막고자 손팻말 든 반태경 전국언론노동조합 CBS지부장(@언론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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