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맞선 항쟁, 노동자 운동이 전면에 나서다

by 센터 posted Apr 26,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홍명교  플랫폼C 동아시아팀 활동가

 

 

지난 2월 1일 새벽 3시, 미얀마 군부가 장갑차 수십 대를 동원해 행정수도 네피도의 대통령궁과 각급 부처를 장악하고 윈민 대통령과 아웅산수치 국가고문을 체포한 이래 3개월째에 접어들었다. 4월 중순 현재 상황은 점차 악화되는 추세다. 군부에 맞선 민중의 저항이 그치지 않는 가운데, 군·경은 무력 진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군부는 거리의 시위대만이 아니라, 가정집에 머무르는 인사들까지 공략해 체포하고 있고, 다섯 살 어린아이조차 가리지 않고 총을 겨누고 있다. 미얀마 정치범 지원협회(AAPP)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4월 13일을 기준으로 군·경에 의해 사망한 시민은 714명을 돌파했으며, 체포된 시민 숫자 3천 명, 발부된 구속 영장도 700건을 훌쩍 넘었다.

 

한데 이번 미얀마 민주항쟁은 과거와 꽤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가령 1988년 가을 미얀마에서 대중적인 시민 저항이 일어났을 때와 달리 조직적인 노동자 운동이 전면에 등장했다. 무엇보다 이번 민주항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출발은 의료 노동자들이었다. 2월 3일, 미얀마 전역 30개 도시에 있는 70개 병원의 의료 노동자들은 “나라와 국민을 아랑곳하지 않는 군사 독재자 밑에서 일할 수 없다.”며 ‘시민불복종 운동CDMCivil Disobedience Movement’을 시작했다. 병원 노동자들은 빨간 리본을 달고 손가락 세 개를 들어 저항할 것을 표명했다.

 

물꼬가 터지자 모두가 용기를 얻었다. 이후 거리에서의 시민 저항이 본격화됐다. 대학생들은 동맹휴업을 선언하고 거리로 나왔고, 동부와 북부의 소수민족 공동체들도 하나둘씩 군부에 맞선 시위를 펼쳤다. 양곤에서의 시위가 전국화될 수 있는 기점이 마련된 셈이다.

 

미얀마.jpg

쿠데타 철회와 구속자 석방,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인 미얀마 노동자들(@플랫폼c)

 

미얀마노총(CTUM)은 성명을 통해 군부에 협력하지 않고 ‘시민불복종 운동’에 함께할 것을 호소했고, 미얀마교사연맹(MTF) 역시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영 에너지 기업과 항공사, 철도, 광산, 병원, 봉제 공장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하나둘씩 파업을 선언하고 거리로 나섰다. 2월 6일, 미얀마섬유노동자연합회(FGWM)는 약 4천여 명의 공장 노동자들과 함께 가두시위를 펼쳤다.

 

이런 흐름은 전국적인 총파업으로 확대됐다. 2월 10일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저항이 전면적으로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준 하루였다. 의료진과 항공 관제사, 교사들이 파업을 벌였고, 다른 노동자들도 작업복에 빨간 리본을 단 채 출근했다. 이틀 후에도 의료 노동자들은 양곤 시내의 유명한 불교 유적지 슈웨다곤 파고다까지 하얀색 가운을 입고 행진했다.

 

파업이 발전이나 철도 노동자들에게 퍼졌다는 것은 매우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2월 14일, 군부는 북부의 한 발전소로 진격해 처음으로 총격을 가했다. 파업 중인 발전 노동자들의 점거를 해제시키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에서 여러 명의 발전 노동자들이 부상당했고, 수십 명이 체포됐다.

 

미얀마내셔널항공Myanmar National Airlines 노동자들 역시 군부의 탄압에 직면했다. 2월 3일 시작된 파업 이래 항공 노동자들은 지상 직원과 객실 승무원, 정비 엔지니어 등 직종을 막론하고 전체 노동자의 약 60%가 업무를 거부하자 군부는 매일 저녁 항공 노동자 기숙사 단지에 나타나 “파업을 철회하고 복귀하지 않으면 모조리 체포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철도도 멈추었다. 드넓은 미얀마 땅을 종으로 관통하는 철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철로 위에 드러누워 스스로 철도 운송 중단을 밀어붙였다. 경찰은 철도 역사 곳곳에서 지속되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최루탄과 고무탄을 쏘아댔다.

 

악조건에서도 노동자들의 파업은 지속됐다. 2월 16일, 공무원·교사·의사·변호사·공장 노동자들이 양곤 도심에 모여 쿠데타 철회와 구속자 석방,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날은 처음으로 전 업종에 걸친 파업이 결의된 날이기도 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 외에 미얀마 민주항쟁을 주도하는 또 다른 노동자 집단은 바로 봉제업 노동자들이다. 오늘날 미얀마는 세계에서 열한 번째로 큰 의류 수출국(약 1%)으로, 섬유산업 글로벌 공급사슬의 하청 공장들이 이곳에 몰려있다. 60~70년대 한국이 담당했던 의류브랜드 하청 생산이 90년대에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이보다 더 낮은 인건비를 찾아 동남아시아 국가들로 옮겨간 결과다. 미얀마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물량은 유럽과 일본, 한국으로 수출되는데, 2012~2018년간 미얀마의 연간 의류 수출은 9억 달러에서 44억 9천만 달러로 5배 증가했다. 가령 양곤과 그 인근에만 약 600개의 공장이 있고, 45만 명의 노동자들이 종사하고 있다. 매주 두 개의 새로운 공장이 문을 열 정도로 성황이다. 캘빈클라인, 무인양품, H&M, 유니클로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 의류브랜드 하청 공장들이 이곳에 몰려있다.

 

미얀마노동자연맹 대변인 카잉 자르Khaing Zar는 “이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입니다. 군사 정권 하에서는 노동자의 권리도 인권도 없고,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 수밖에 없으며, 노동자들의 불만이나 항의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2010년 이전에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과 긴 노동시간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고용주들이 주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을 뿐, 최저임금과 사회보장에 대한 보장은 받을 수 없었습니다. 군부독재 정권이 돌아오면 투자 자본도 우리나라를 떠나 많은 사람들이 실직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야당과 노동조합, 학생회, 농민조직과 종교단체, 여성단체, 의사와 변호사, 작가 등 전문직 그룹들이 참여한 ‘총파업위원회’가 결성되어 전면적인 총파업을 준비했다. 3주 가까이 총을 꺼내들지 않던 군부가 실탄까지 쏘며 강경 대응에 나선 것은 파업으로 인한 영향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20~21일간 한 명의 청소년을 포함해 두 명의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고, 20여 명의 노동자들이 시위 진압 군경에 의해 중상을 입었다. 군부는 3주 동안 640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유엔이 파견한 특별보고관 톰 앤드류스Tom Andrews는 트위터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을까 두렵다. (···) 군부는 물대포에서 고무탄, 최루탄, 철면피가 된 군대를 동원해 평화로운 시위대를 향해 발사하고 있다. 이 미친 짓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라고 말했다.

 

미얀마 노동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조직화의 결과는 2월 22일 총파업을 통해 드러났다. 양곤, 만달레이, 네피도, 핀마나 등 주요 도시에서 수십만 명이 파업에 동참했고, 고스란히 파업 집회와 행진으로 이어졌다. 양곤에서는 미얀마산업노동자연맹(IWFM)의 주도로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왔다. 노동자들은 “민주주의를 요구한다.”, “우리 지도자들을 석방하라.”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미얀마노총과 함께 행진했다.

 

이에 군부는 미얀마 내 10여 개의 노동조합들을 불법 조직으로 선포하고, 군부 쿠데타 반대 시위에 참여해온 시민들과 노동운동가들을 마구잡이식으로 잡아들였다. 양곤의 섬유 공장을 운영하는 자본가들 역시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공장 생산이 어서 회복되기만을 바라며, 노동자들이 시위에 참가하는 것을 방해해왔다. 항쟁 초반 노동자들이 휴가를 얻고 시위에 참가하는 것을 묵인했던 자본가들은 한 달도 채 지나기 전, 휴가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기 시작했다. 저임금 하청 공장에서의 생산이 지연될수록 봉제 공장 자본가들의 이윤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중국 합작 섬유 공장의 한 노조 간부는 공장 측이 3일 연속으로 휴가를 내는 노동자들을 해고하려 한다고 밝혔다. “그러다보니 노동자들은 하루는 출근해서 일하고, 이틀은 휴가를 내서 시위에 참가해요. 우리는 밤에 잠들 수 없어요. 하지만 아침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출근을 해야 하죠. 왜냐하면 일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심지어 의류 공장 경영진들은 군부와 경찰 측에 협조해 노동운동가들을 잡아들였다. 2월 말 도심에서 열린 노동자 집회에서 한 참가자는 이렇게 폭로했다. “2월 18일 시위에서 들은 얘긴데요. 한 공장 관리자가 군 경사로부터 시위 행동을 이끄는 지도자가 누구인지를 묻는 전화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관리자는 자기도 모른다고 답했대요. 그런데 다음날, 그 공장 관리자는 공장 노동자들의 전화번호를 경찰에게 건네줬대요.

 

”의류 공장주와 관리자들은 집정 권력이 누구든 크게 관심이 없다. 그들의 최우선 관심사는 생산 회복이다. 반면 노동자들은 쿠데타를 뒤집어엎고 민선 정부를 회복시키는 것이 일자리와 노동권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긴다. 군부 치하에서는 노동자 생존과 권리가 극단적으로 위협받기 때문이다. 한 노동자는 “군부 정권하에서는 우리에게 고용주들을 정부에 고소할 권리가 있을까요?”라며 의구심을 표했다. 그는 “앞으로 노동조합이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미얀마 노동조합의 지도자들은 당국으로부터 더욱 강력한 감시와 통제를 받게 될 게 뻔하다.

 

미얀마 상황이 초유의 학살로 전개됨에 따라 국제 노동단체들과 타국 시민들의 연대 역시 확대되었다. 미얀마에서 기성복을 소싱하는 글로벌 유통 브랜드들은 쿠데타를 규탄하고,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는 성명을 국제제조산업노조연맹IndustriALL과 공동 발표했다. 에스피릿Esprit, H&M, Tesco 등 유명 브랜드를 가진 의류 기업들은 “우리는 우리의 사업 운영과 공급사슬에 있어서 인권과 노동권, 특히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인 집회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 그리고 결사의 자유를 전적으로 존중한다.”고 밝혔다. 성명서에서 브랜드 기업들은 미얀마 노동자들의 결사의 자유가 이행되도록 보장하기 위해 미얀마에 위치한 200개 이상의 공장들에서 노동조합과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사실 미얀마 봉제 산업에서 한국 자본의 투자는 적지 않다. 미얀마 한인봉제협의회에 따르면, 2020년 10월 기준 미얀마 봉제 산업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신성통상, 오팔, 미얀스타 등 83개에 달한다. 봉제와 자수, 액세서리 등 여러 부문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이 공장들에 고용된 현지 노동자들만 약 10만 명에 달한다. 한국의 사회 운동과 노동조합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공공운수노조와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등에서 미얀마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온라인 행동을 벌였고, 민주노총 역시 기자회견과 캠페인 등을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2019년 홍콩, 2020년 태국, 2021년 미얀마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의 점증하는 정치적 불안정성은 노동자들의 생존과 노동권마저 위협하고 있고, 나아가 동아시아 권역 전반을 아우르는 노동자 국제연대의 절박한 필요성을 환기시키고 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맞선 항쟁과 우리의 연대를 기반으로 잃어버린 ‘노동자 국제주의’의 역사를 복원해나갈 수 있길 소망한다.

?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