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와 정의로운 전환

by 센터 posted Feb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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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형 목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기독교인들의 성서 창세기 11장에는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옛날에 말이 하나뿐이던 때 사람들이 들판에 도시를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에 닿을 만한 탑을 쌓기로 했답니다. 똘똘 뭉쳐 못할 일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슬며시 걱정된 하나님이 사람들의 말을 뒤섞어 사람들을 온 땅에 흩어버렸다네요. 아휴, 그때 사람들이 탑만 높이 안 쌓았어도 우리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머리 아프게 외국어 공부를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하여간 바벨탑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도시를 세우고 탑을 쌓을 때 돌과 흙 대신 구운 벽돌과 역청을 사용했다는 겁니다. 역청은 자연 상태로 존재하는 탄화수소화합물, 그러니까 석유입니다. 바벨탑 신도시 공사 현장을 한번 상상해보세요. 도시 어귀에서 벽돌을 빚기 위해 흙을 파내면서 흙먼지가 날리고, 숲에서 나무를 베어와 장작을 패느라 종일 시끄러웠겠지요. 벽돌 가마는 뜨거운 열기와 희뿌연 연기를 뿜어내고, 역청에서 나오는 매캐한 기름 냄새로 머리가 어질어질했겠지요. 그 와중에 편히 앉아 일을 시키는 사람들과 하루종일 서서 죽어라 일만 하는 사람들이 서로 ‘말이 안 통한다’며 답답해하고 있었겠죠. 이래서야 도시와 탑을 제대로 만들 수 있었을까요?  


이처럼 사람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역청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성서에 있을 정도로, 우리 인간들은 오래전부터 석유와 석탄을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의 동력이 된 내연기관을 사용하면서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양의 석유와 석탄을 사용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이 석유와 석탄이 연소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가 지구 대기에 누적되어서 지구의 온난화, 지구적인 기후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기후 변화가 가져오는 결과가 어마어마합니다. 기후 변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모여서 세계 정부에 기후 변화에 관한 과학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연구 결과에 의하면 지금 지구의 평균기온이 1도 상승해서 환경 적응성 낮은 동식물의 멸종이 진행되고 있고, 극지방 빙하의 해빙으로 해수면이 상승하여 해안 저지대가 상습적으로 침수되고 있고, 국지적인 강수량 감소로 농경지의 사막화가 진행되어 농작물 수확이 감소하여 국제 농산물 가격이 상승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지구의 평균기온이 3도 정도 상승한다면, 툰드라뿐만 아니라 열대 우림에도 대화재가 일어나고 슈퍼 태풍과 슈퍼 허리케인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대규모의 기후 난민이 발생하게 되고, 강수량 감소로 호수, 강 등 지표수가 증발하는 곳이 늘어나 식량 확보를 위한 국지적인 분쟁이 증가하고, 말라리아 등 곤충 매개 질병이 비약적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구의 평균기온이 6도까지 상승한다면 해류 순환이 중단되어 지구의 열 순환 체계가 붕괴될 뿐만 아니라 대기 중에 메탄 성분이 방출되어 폭발을 일으키고, 오존층이 파괴되어 우주 방사선 피폭으로 동식물의 대멸종이 진행되어 지구가 금성과 같은 죽음의 별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그대로 계속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면 이번 세기 안에 지구 평균 기온이 6도 이상 상승할 것입니다. 세계 각국 정부가 2015년에 파리에서 국제기후협약을 체결하고 각국이 자발적으로 계획한 이산화탄소 감축안 대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축한다고 해도 지구의 평균기온이 3도 이상 상승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레타 툰베리를 비롯한 전 세계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이구동성으로 정부가 ‘기후 위기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온실가스의 획기적인 감축안을 만들라고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부터 10년이 온실가스 감축의 마지막 기회입니다. 아마 그다음 기회는 없을 겁니다. 지금 우리가 미래를 도둑질하는 일을 멈추고 ‘기후 정의’를 세우는 일이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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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도 기후 위기 앞에 ‘이대로 가다간 죽는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일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입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석유와 석탄 대신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햇빛과 바람과 물에서 얻을 수 있는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 각국은 위험천만한 핵에너지, 기후 위기를 촉발하는 석유와 석탄 에너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이미 독일과 같은 환경 선진국은 일찌감치 탈핵, 탈석탄의 걸음을 걸어 이제 전기 생산에서 재생 에너지 비중이 50퍼센트에 육박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세계에서 재생 에너지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미국은 애플, 아마존, 구글과 같은 세계적인 민간기업들이 기후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재생 에너지만을 사용해서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RE100(Renewable Energy 100%)’ 캠페인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고요. 우리 정부도 2030년까지 재생 에너지 비율을 20퍼센트까지 높이겠다는 계획을 마지못해 내놓고 있는데, 솔직히 기후 위기에 대응하려는 적극적인 추진 의지가 없어 보입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려는 세계의 흐름을 거슬러 새로운 석탄화력발전소를 지으려 하는 데다, 민간기업들은 해외 석탄 산업에 투자하고 있거든요. 오죽하면 해외 언론에서 한국을 ‘기후 깡패국가’라고 할까요. 


그런데 에너지 전환은 단지 에너지 생산원을 석유와 석탄에서 재생 에너지로 바꾸는 일만이 아닙니다. 몽골의 고비사막에 태양광발전기와 풍력발전기를 가득 세우면 아시아 지역 전체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고 합니다. 와 대단하지요. 그런데 몽골에서 만든 전기를 어떻게 우리나라로 가져올 수 있을까요? 어마어마한 송전탑과 송전선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송전 과정에서 환경 파괴도 엄청날 테죠. 아마 송전선이 지나는 곳곳에서 밀양 할매들처럼 송전탑에 쇠사슬로 몸을 묶고 마을과 생명을 지키는 싸움도 일어날 테지요. 가장 좋은 것은 내가 필요한 에너지는 내가 만들어서 사용하는 겁니다. 그동안 거대 독점기업이 핵발전소,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만들어낸 에너지를 먼 곳에서 끌어와 사용했다면, 이제 우리 지역에서 우리가 세운 지역 회사에서 재생 에너지를 필요한 만큼 만들어서 사용하는 거죠. 게다가 지역 에너지 기업이 훨씬 더 좋은, 더 안전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낸다니 일석이조인 셈이지요.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생산, 소비 시스템 전반을, 나아가서는 산업 구조 전체를 바꾸는 일입니다. 


결국 기후 위기 문제의 본질은 우리가 그동안 마음대로 사용했던 에너지가 마음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만큼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한계를 정하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가 재생 에너지로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만큼만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기후 위기는 우리에게 대량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산업으로부터 에너지를 덜 사용하는 산업으로의 전환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에 따라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자리도, 일의 형태도 많이 바뀌겠지요. 좋든 싫든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 노동운동가 토니 마조치Tony Mazzocchi는 일찌감치 1980년대 후반에 에너지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산업 재편 속에서 노동 현장과 노동자가 희생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 이루어지도록 노동자를 위한 새로운 일자리를 위한 직무 훈련을 제안하기도 했죠.


그러니 에너지 전환은 사실 ‘문명의 전환’이기도 합니다. 제법 오래전부터 생태학자들은 무한한 성장은 존재하지 않으며 지구의 한계, 성장의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개념이 ‘지속가능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입니다. 우리가 발전을 추구할 때 미래 세대의 자산을 빼앗지 않으면서도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에너지를 더 사용할 수 있지만 덜 쓰면서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인식과 삶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발전과 성장이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미래 세대와 현재 세대를 이야기할 때 세대는 인간들만을 뜻하는 것일까요? 지구에는 인간보다 더 많은 생물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지요. 그동안은 인간이 지구를 지배한다고 생각하며 자연을 마음대로 사용했다면 이제 인간과 자연의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후 위기로부터 벗어나 새롭게 이루고자 하는 문명이 이전과는 다른 정의롭고 평화로운 문명이 되려면 인간만의 지구가 아니라 온 생명의 지구를 위한 문명을 만들어야죠. 새롭게 만든다기보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생명들의 촘촘한 연대를 회복하는 ‘오래된 미래’를 만드는 것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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