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시대 퇴행적 대선, 대안은 없는가?

by 센터 posted Dec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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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돈문 센터 공동대표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수익률이 역사적으로 소득증가율보다 높은 경향성을 유지해왔다는 사실을 증명했고, 앞으로도 그런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추세로 인해 국민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인 자본소득 분배율이 안정적 수준을 확보하는 가운데, 자본주의 성숙화와 함께 저성장률 단계로 접어들게 되면 자본수익률과 소득증가율의 격차가 커지면서 자본소득 분배율은 더 상승하고 소득 불평등은 더욱더 확대된다. 소유 자산은 소득 불평등의 세대 간·세대 내 누적된 결과물이기 때문에 자산 불평등은 소득 불평등보다 그 정도가 훨씬 더 심각하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가운데 미국 등 자유시장경제 모델 국가들은 자산 불평등과 소득 불평등 정도가 가장 큰 반면,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모델 국가들이 그 대척점에 서 있다. 한국은 자유시장경제 모델에 수렴하며 미국 수준의 불평등 수준에 육박하고 있는데, 소득 최상위 10% 집단의 소득점유율 등 일부 불평등 지표들에선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

 

우리 사회도 이미 저성장률 단계로 진입하여 실질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기 시작하면서 자본소득 분배율 상승과 함께 소득 불평등 수준은 더욱더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산 불평등은 소득 불평등보다 더 심각하며, 자산 불평등의 핵심은 부동산에 있다. 평생 뼈 빠지게 일해서 소득을 모아봐야 죽기 전에 집 한 채 사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으니, 청년들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외치는 것이다. 부모 잘 만난(?) 것도 실력인 세상에서 부모 잘못 만난(?) 청년들은 정유라를 따라잡기 버겁다.

 

자산·소득 불평등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심각하지만 2022년 20대 대선에선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어느 먼 나라의 정치인들이 경합하는 남의 나라 정치 행사처럼 낯설어 보인다. 5년 전 19대 대선에선 촛불항쟁의 열기 속에서 평등과 공정의 가치가 “나라 다운 나라”를 세우기 위한 기본 원칙으로 자리 잡았었는데, 이번 대선에선 평등의 가치는 실종된 듯하다. 19대 대선 핵심의제였던 소득주도성장과 비정규직도 20대 대선에선 자취를 감췄다.

 

그나마 20대 대선을 달구는 정책 관련 의제가 부동산 문제다. 부동산 정책이 문재인 정부 정책 실패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되고 있는데, 부동산 정책 실패는 시민들을 분노케 했고 정권교체론이 20대 대선 구도를 결정짓게 했다. 토지보유세 강화가 부동산 투기를 유발하는 불로소득 취득 동기를 억압하기 위한 최우선 정책수단이라는 데 대해 광범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를 반대하는 기획재정부와 부동산 투기세력의 손을 들어줬다. 문재인 정부는 30여 차례에 걸쳐 토지보유세 강화가 빠진 부동산 대책들을 발표하며 소란을 떨었지만, 수도권 아파트값 폭등을 잡을 수 없었다.

 

비정규직 문제가 20대 대선에서 실종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성공 때문이 아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부동산 문제보다 더 심각한데,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 또 하나의 대표적 정책 영역이다. 비정규직/정규직 임금 격차는 2010년부터 축소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추세는 이명박근혜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도 지속했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절대적 규모는 이명박근혜 정부 시기보다 더 가파르게 증가했고, 비정규직의 상대적 비율은 이명박근혜 정부 시기의 하락 추세가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지속되는 듯했지만, 다시 반전하며 상승하기 시작했다.

 

측정오차를 고려하면 전체 피고용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은 55% 정도로 추정되는데, 과도한 비정규직 규모는 우리 노동시장의 고질적 문제다. 경제·산업 구조의 디지털전환은 노동시장의 일자리 양극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비정규직의 규모 감축과 노동 조건 개선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 디지털전환 효과는 플랫폼 노동의 급격한 확산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플랫폼 사업은 사용자의 책임·의무 실종 속에서 비정규직을 양산하며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거의 모든 경제부문에서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20대 대선은 ‘노동 없는 대선’으로 진행되고 있다. 양대 정당 후보들이 어쩌다 노동 의제를 언급하는 것은 120시간 노동제 도입,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 폐기, 최저임금제 폐지 등 노동시장 유연화 의지를 표명할 때다. 이와 같은 반노동적 조치들이 시행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시장 유연화의 일차적 피해자가 되고 노동 조건 양극화는 더욱더 심화될 것이다. 이윤주도성장론은 지난 70여 년 동안 줄곧 경제성장을 위해 노동의 희생을 강요해 왔는데 20대 대선에선 ‘공정 성장’이란 이름으로 19대 대선 소득주도성장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공정’은 자산·소득의 불평등 배분을 전제로 한 기회의 평등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트럼프 미국의 미식축구식 승자독식 공정성이다. 그들의 평등 없는 공정은 능력주의의 외피를 입고 있으나 기실 “가진 놈이 더 많이 갖게” 하는 박근혜-최순실 시대 정유라의 공정성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평등과 공정”의 19대 촛불 대선에 견줘보면 “평등 없는 공정”의 20대 대선은 분명한 퇴행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퇴보를 반영하는 것이며, 문재인 정부 실패의 참혹한 후과다. 가장 암울한 전망이 가장 과학적인 예측이 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운동은 희망을 얘기해야 한다.

 

민주노동운동은 대선 의제화를 넘어 대선 이후 한국사회의 진보를 위한 전망을 열어야 한다. 불평등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평등사회 실현을 위한 전략을 수립·실천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민주노총이 불평등체제 청산을 주창하며 불평등체제를 타파하기 위한 투쟁 의지를 천명하는 것은 적절한 전략적 개입이다.

 

민주노총은 전태일 3법 쟁취 투쟁에 이어 한국노총과 함께 근로기준법 5인 미만 사업장 전면 적용과 사업 이전 시 고용 승계 보장 등의 입법화를 요구하고 있다. 관련 법안들은 이미 발의되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입법화 절차를 밟고 있는데, 입법안들이 제대로 통과된다면 문재인 정부 시기 친노동 입법화의 가장 큰 성과가 될 것이다.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동조합법 제2조 근로자 개념 정의 확대, 의무가입 대상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즉각 가입을 통한 명실상부한 전국민고용보험제 수립, 의료·돌봄 서비스의 공공성 강화와 일자리 창출 과제들도 사회적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어 있다. 이 과제들까지 새 정권 출범 전후에 추진되어 성과를 낼 수 있다면 비정규직, 여성, 청년 등 노동시장 취약집단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개선은 물론 비정규직 주체 형성과 노동계급 계급형성에도 큰 진전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5년 전 촛불민중이 외쳤던 “평등과 공정”의 가치를 실현하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불평등과의 전쟁으로 촛불항쟁을 재점화해야 한다. 촛불항쟁이 적폐 정권을 청산했지만 촛불정부를 자임하며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촛불항쟁 주체들을 배제한 채 기득권세력에 포위되어 소득주도성장 전략과 함께 사회·경제 개혁 공약들을 폐기했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다시 한번 주체 형성과 전략적 개입의 중요성을 통감하게 한다.

 

불평등과의 전쟁이 승리하고 불가역적 사회진보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해체된 촛불민중동맹을 발전적으로 복원해야 한다. 그 중심에 비정규직 주체 형성과 노동계급 계급형성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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