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희생자들과 고 김용균은 동의어다

by 센터 posted Apr 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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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주 센터 이사,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2017년 5월, 대통령 취임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of the people, for the people, by the people 정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150년 전 남의 나라 대통령 연설이나 외우는데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끊어가며 평등과 공정을 강조하던 대통령의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고 그 문구는 기억에 오래 오래 감동으로 남을 것 같았다. 신자유주의의 광폭 행보와 수십 년간 대한민국 정부의 경제 정책을 지배해왔던 발전주의 논리에 사람들은 지쳐 있던 모양이었다. 그랬기에 재벌 개혁에 앞장서고, 민생과 일자리를 챙기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노동 친화적 약속에 우리 모두는 기대를 걸고 싶었을 것이다.

 

어느덧 새로운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은 고통에 가깝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와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로 인한 서민들의 박탈감이야 말할 것도 없다. 여러 측면에서 노동 정책이 후퇴했다. 새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론을 통해 노동 친화적 정책 기조를 표방했고 임기 첫해에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며 기세 좋게 출발했지만, 곧 최저임금은 한자리수 인상에서 멈추며 최저임금 만 원 공약은 지켜지지 못하게 되었고, 노동시간 단축 노력은 탄력근로제 확대로 원래 의미를 잃었다. 노동 친화적 정부 하에서도 쿠팡 노동자들과 집배 노동자들은 과로사했고, 비정규 노동자들은 추락으로, 끼임 사고로 사망했으며, 같은 지역에서 물류센터 화재는 12년만에 반복되었다. 세월호 사고를 닮은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송도 축구클럽 통학 차량 교통사고와 같은 사회적 참사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우리 사회에서기회는 여전히 불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지 못했고, 결과는 정의와 멀어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우리 사회가 이룬 중요한 성취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 입법 청원 운동이 이루어졌고 결국 올해 초에 국회에서 통과된 중대재해처벌법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룬 성취인 이유는 국회의원들이나 입법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에서 논의되도록 하기 위한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130여 개의 시민·노동단체가 참여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를 중심으로 전개된 국회 입법 동의 청원 서명운동에는 10만 명의 시민들이 참여하였고 이 법안은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경제단체들은 사후 처벌 위주의 산업안전 정책은 사망 사고를 줄일 수 없으니 처벌 강화 중심 입법에 반대한다면서 “사업자 역할과 책임에 걸맞은 체계적인 사전 예방 안전 관리 시스템 정착과 현장 특성에 따른 심층·전문적 산재 예방 체계 구축 및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하며 반발했다. 기업들의 눈치를 보는 국회의원들은 법안 논의에 소극적이었고, 정부 여당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대신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일하다가 죽고 다치는 일을 막는 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노동자·시민들의 의지는 강했다. 21대 정기국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논의를 시작도 하지 못한 채 종료되었으나, 매서운 추위를 마다하지 않았던 사회적 참사와 산업재해 희생자 유가족들,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되었고, 시민들의 동조 단식도 여기에 힘을 보탰다. 비상대책위원운동본부 활동가들은 법안 논의가 설마 크리스마스를 넘기기야 하겠냐며 웃었지만, 결국 해를 넘기고 지난 1월 8일 임시 국회 본회의 마지막 날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안이 통과되었다.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과정이었다. 그러나 운동본부에서 발의한 법안에서 크게 후퇴한 반쪽짜리 법안이었다. 법안 명칭에서 ‘기업’이라는 단어도 빠졌다.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5인 미만 사업장이 제외되었다는 것, 그리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이 법의 적용이 3년간 유예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98%를 차지하며, 50인 미만 사업장에 속한 노동자는 고용보험 적용 노동자들의 절반이다. 게다가 전체 산업재해자의 77%, 그리고 산재 사망자의 62%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법안이 논의될 때마다 원래 안에서 조항이 하나씩 사라진 결과였다. 내가 활동하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학계·전문가 모임에서도 법사위소위부터 본회의까지 논의와 의결에 참여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제대로 된 법을 통과시켜 달라는 청원 문자를 법안 통과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국회와 정부는 우리 사회의 사회적 참사를 막기 위한 제대로 된 처벌법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의 중대재해처벌법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현재의 중대재해처벌법은 2017년 20대 국회에서 고 노회찬 의원이 대표 발의했던 법안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이전까지 발의되었던 기업살인법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에 대한 경영 책임자 처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법안들이었다면, 현재 법안은 산업재해뿐만 아니라 시설물에서 발생하는 시민재해에 대한 경영 책임, 즉 공중 이용시설, 공중 교통시설, 제조물로 인해 시민에게 발생하는 중대재해에 대해서도 경영 책임자와 원청 처벌이 도입된 것이다. 반복되어 온 노동자들의 사망 사고와 시민재해가 같은 맥락에 있는 사건이라는 것을 우리 사회는 2014년 세월호 참사로 304명의 목숨이라는 값비싼 비용을 치르면서 깨달았다. 노동자들에게 안전하지 않은 사회는 어떤 시민에게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뼈아픈 자각이었고, 누구나 안전할 권리가 있다는 각성이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벡은 위험사회라는 개념으로 고도로 발달된 과학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물질적 풍요로움 만큼 위험 역시 급격하게 증가했고, 따라서 모든 사람이 일상적 위험에 노출되었음을 지적한다. 위험은 이미 발생한 재난이 아니라 재난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이며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는 그 무엇이다. 즉, 현대사회에서 생산되는 위험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화된 것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이윤 극대화를 위한 비용 절감으로 다단계 하청이 일상화된 한국의 고용 구조는 위험과 위험의 결과를 불평등하게 배분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세월호 희생자들이 운이 없어서 그런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는 노후 선박의 무리한 운행과 이를 허락한 선박 규제 완화가 그 조건을 만들었고, 재난을 관리하는 국가시스템의 부재로 일어난 일이다. 고 김용균이 조심하지 않아서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어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다. 안전장치 없이 비정규직에게 위험한 일을 떠넘기는 기업의 관행과 노동자의 목숨을 헐값으로 여기는 느슨한 제도 때문에 죽은 것이다. 재해는 노동자나 시민들 개인의 위법 행위나 부주의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자본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산업 구조의 특성, 기업 내 위험 관리 시스템 부재 때문이며, 개인의 안전 불감증이 아니라 기업 조직 내에 안전 불감증이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험 비용을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전가하고 그들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기업은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 이러한 강력 처벌이 재발 방지와 사회적 재난의 예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곧 세월호 참사 7주기가 돌아온다. 7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침몰 전 세월호 안 아이들 모습을 담은 동영상은 아직도 송곳처럼 가슴을 찌른다. 매년 4월, 언론 속에 담기는 세월호 생존자들의 이야기들은 우리 사회 전체의 트라우마가 된다. 그러나 세월호는 더 이상 우리 사회의 트라우마로만 남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경총을 비롯한 경제인 단체들은 이미 중대재해처벌법 보완입법안을 제출하고 경영 책임자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의미를 크게 후퇴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수많은 사회적 참사와 산업재해 희생자들의 죽음을 경험하며 인식하게 된 안전할 권리는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그리고 일터에서 죽어간 수많은 김용균들에게 살아남은 우리들이 지고 있는 빚은 갚아야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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