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용노동청 앞 농성장에서 띄우는 편지

by 센터 posted Oct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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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환 센터 이사,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



코로나19 속에서 태풍과 장마를 이겨내고 이어온 서울고용노동청 앞 농성 투쟁이 86일 되었다. 서울노동고용청 앞에는 세 동의 천막이 있다. 첫 번째 녹색 천막, 현대기아사내하청지회 노동자들이 17년간의 불법 파견 투쟁을 이어가다 대법원으로 투쟁 거점을 이동하였다. 그 옆 노랑 천막, 일하다 죽어도 알려지지도 않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해 농성 중인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천막이다. 그리고 마지막 파랑 천막, 코로나19 재난 속에 정리해고를 당한 아시아나케이오 하청 노동자들이 154일째 농성 투쟁을 하고 있다. 


농성장 천막.jpg

서울고용노동청 앞 농성장 천막


코로나19로 모이기가 힘든 상황에서 서울고용노동청 앞 삼색 천막촌은 어느새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그리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모인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 공간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노동청 앞은 비정규 노동자들의 공간이 되었고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비정규 투쟁문화제, 기자회견, 선전전 등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 요구와 함성으로 채워졌다.


촛불항쟁을 기반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은 2017년 57일간의 서울고용노동청 앞 천막농성에 이어 추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국회 앞 노숙 단식 투쟁을 49일간 벌였지만, 노동부는 끝내 필증교부를 거부하였다. 그리고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노조할 권리를 빼앗긴 지 10여 년, 2017년 6월 전국노조 인정 투쟁을 시작한 지 1,125일, 다시 설립 신고를 한 지 428일 만인 지난 7월 17일, 노동부는 결국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의 노조 신고필증을 교부했다. 


그리고 조합원들의 기쁨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인 7월 20일 우리는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천막농성 투쟁에 돌입하였다. 어렵게 투쟁으로 쟁취한 노조필증을 삶이 벼랑 끝에 내몰려 있는 대리운전 노동자들의 희망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결의했다. 조합원들도 밤새 일하고도 달려와 비바람 맞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하루도 쉼 없이 노동부, 민주당, 국회, 노동청 앞 집회와 1인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한국 사회에는 일하다 죽어도 알려지지도 않는 250만 명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있다. 노동기본권이 배제된 채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고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처참한 삶이 코로나19로 드러났다. 정부도 더이상 모른 척할 수만은 없어 ‘전 국민 고용보험’의 첫 단추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한다고 했지만, 전속성이 높은 직종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대리운전 노동자들도 특례로 산재보험을 적용받고 있으나 전속성 기준으로 인해 20만 명 대리기사 중 겨우 3명만이 적용받고 있을 뿐이다. 정부가 구시대적인 전속성 기준을 고집한다면 대다수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고용보험에서 또다시 배제될 것이고,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고용보험 적용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행정편의를 위한 전속성 기준을 당장 폐기하고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고용·산재보험을 전면 적용해야 한다. 전속성 기준 폐지, 고용·산재보험 전면 적용!


노조필증이 교부되자 카카오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한국 사회 대표적 플랫폼 기업인 카카오는 자신들이 사용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했다. 이에 노조는 카카오에 대한 투쟁을 시작했고, 10월 15일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대규모 변호인단을 동원한 카카오를 상대로 이겼다. 그러나 이 투쟁이 얼마 동안 가야 할지 가늠할 수 없다. 대다수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아직도 노조할 권리를 보장받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설혹 노조를 인정받아도 자본은 법의 허점을 이용해 교섭을 외면하고 있다. 이미작년 부산의 대리운전업체들도 교섭을 거부하면서 무조건 대법까지 간다고 공언했는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대리운전 노동자들을 옥죄기 위한 수작에 불과하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실제로 교섭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노조법 2조를 개정해야 한다.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실제 사용자에게 책임을, 노조법 2조 개정, 전태일 3법을 쟁취하는 그날까지 우리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올해는 전태일 열사 분신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오늘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비정규직 이제그만의 ‘전태일에서 김용균으로-50일간의 행동’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기자회견 말미에 코로나19 재난 속에 생존권 위기에 내몰려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요구를 마스크에 표현하는행사를 했다. 그런데 그 마스크를 만들어준 노동자는 “34년 전 구로공단에서 일하던 저는 지금도 4대 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입니다. 비정규직을 없애기 위해싸우는 노동자들이 저에게 마스크를 제작해달라고 했을 때 기쁜 마음과 동시에 짠함과 분노가 앞섰습니다. 50년 전 전태일 열사가 죽었던 상황과 다르지 않은 현실 때문입니다.”라며 절규했다.


우리는 당당하게 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며 살 권리가 엄연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태껏 기계 취급을 받으며 업주들에게 부당한 학대를 받으면서도 바보처럼 찍소리 한번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니 우리 재단사들의 모임은 바보들의 모임이다.


전태일재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전태일 평전 읽기’에서 대리운전 노동자를 대표해 읽은 구절이다. 


지난 7월 20일,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은 “코로나19 재난을 통하여 벼랑 끝에 서 있는 우리의 처참한 삶을 확인하였다.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고 버틸 여력도 없다. 이 지경이 되도록 참고 견뎌온 우리는 바보였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바보가 되어 생계의 절박함을 뒤로하고 투쟁을 시작한다. 오늘 우리는 ‘나와 같은 그리고 나와 다른’ 250만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하여 전속성 기준 폐지, 고용보험 전면 적용, 노동기본권 보장, 노조법 2조 개정을 쟁취하기 위하여 싸워나갈 것”을 선언하고 투쟁에 돌입했다. 그리고 이제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전태일 3법 쟁취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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